[시론] IMF의 교훈, 반면교사 삼아야
2019-08-20 05:00
국내에 진출한 일본계 은행이 한국 기업의 수출입 신용장에 대한 보증을 제한한다든지, 일본계 금융사가 즐비한 2금융권에서 대출금을 회수해 서민 타격을 불가피하다는 등 적잖은 불안감에 휩싸이고 있다.
하지만 이는 기우일 뿐이다. 우리나라의 경제가 일본의 금융보복에 휘청일 만큼 약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우리 경제는 탄탄한 외환 보유고를 자랑한다. IMF 외환위기 당시 39억4000만 달러에 불과하던 외환 보유액은 올 7월말 현재 4031억1000만 달러로 세계 9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외환위기 시절과 달리 우리 경제의 금융 펀더멘털이 탄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이 설사 금융 보복이라는 최악의 카드를 내민다 하더라도 1997년과 같은 대혼란은 없을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캐나다, 스위스와 같은 주요 기축 통화국과 통화스와프가 체결된 것도 또다른 안전장치다. 스위스와는 106억 달러 규모이며, 캐나다와는 사전한도는 물론이고 만기도 없다.
이외에도 중국, 인도네시아, 호주 등과 총 1328억 달러 상당의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해 외화 부족 등 유사시에도 충분히 외화를 수혈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만일 일본 정부가 계속되는 보복 조치를 가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일본계 금융사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다. 일본계 은행과 저축은행·대부업체의 일본인 대주주 입장에서 정부 시책에 맞춰 한국시장을 압박할 방법은 신규대출을 안 해주고 만기 연장을 거부하는 것인데 이는 영업을 포기하는 자해행위나 마찬가지다. 회사를 파는 것도 쉽지 않다. 저축은행의 경우 대주주 적격성 심사와 적기 시정조치 등의 견제장치를 감안한다면 헐값 매각조차 어려울 수밖에 없다.
또 우리나라 국가 전체 신용 등급이나 금융회사들의 신용등급은 일본보다 2단계나 높기 때문에, 자금 회수가 이뤄지더라도 얼마든지 다른 나라에서 자금을 대체할 여력이 있다.
실제 최근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로 유지했고 등급 전망도 ‘안정적’ 그대로 평가했다. 중국은 우리보다 한 단계 낮은 ‘A+’, 일본은 두 단계 낮은 ‘A’ 등급이다.
결국 일본이 금융보복을 단행한다 하더라도 한국에는 제대로 타격도 가하지 못한 채,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행위일 뿐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렇다고 마냥 안심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지난 1분기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수출 둔화가 장기화되는 등 저성장 늪에 빠져있다. 일각에서는 2020년대 중반 제로금리 시대를 예상하는 등 한국 경제의 정체는 당분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최근 국회 운영위에 나와 “20년 전 IMF 외환위기 상황과 금융 펀더멘털이 다르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은 매우 매우 낮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철저한 대비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약화된 만큼 일본의 금융보복이 악영향을 끼칠 확률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나 마찬가지다.
김소영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도 “일본의 경제 보복이 당장 금융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진 않을 것 같다. 금융당국이 (일본의 경제 보복 시에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지만 자신할 여건은 아니라고 본다. 실제로 일본계 자금이 대량 유출된다면 당장 위기는 아니더라도 한국 경제가 불안해지는 것은 맞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저금리와 미중 무역전쟁 등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한국의 정부가 가장 신경을 써야 할 분야가 경제다. 어떻게든 경제가 흔들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20여년전과 비교해 펀더멘털이 강해졌다 하더라도, 조금이라도 우리 경제를 불안하게 할 수 있는 요소는 원천봉쇄해야 한다. 자만감에 빠져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경제는 언제 어디서 조금씩 틈이 생길지 모른다. IMF 외환위기는 일본계 자금 이탈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