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이사장이 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삶

2019-08-14 00:00



1991년8월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학순(1924~1997) 할머니가 위안부 생존자 중 최초로 기자회견을 통해 그 피해사실을 공개증언 했다.

김 할머니의 증언 이후 전국의 생존자들이 잇따라 피해사실을 알렸고, 이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인권문제로서 국제사회에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이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등 민간단체들이 2012년 12월 타이완에서 열린 ‘제1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매년 8월14일을 ’세계 위안부 기림일‘로 정했다.

세계 여성 단체들은 2013년부터 매년 8월14일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다양한 캠페인과 연대집회를 열며 유엔 등 국제기구를 설득하기 위한 연대 활동도 강화하고 있다.

이번 인터뷰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힘쓰고 있는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대표의 이야기이다.

얼마전 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현재 생존자가 20명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빠른 시일 내에 일본의 공식적인 사과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사진= 윤미향 이사장 제공/ 윤미향 이사장]


Q. 대표님께서 처음 위안부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제가 일본군성노예제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1980년대, 한국에 만연하던 ‘성매매관관’(기생관광) 문제로부터 시작했어요.

‘외화획득’의 도구로 여성에 대한 성폭력 문화가 이용되던 한국의 현실에 분노했고, 관심갖고 기생관광 반대운동에 참여하다가 1990년 11월 16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설립해 활동을 시작했어요. 

이후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의 기자회견 소식은 직접 뛰어든 계기가 됐습니다. 1992년 1월부터는 정대협에 간사로 활동에 적극 뛰어들게 됐습니다.

Q, 위안부 할머니들께서 트라우마들이 있을텐데 이런 것들에 대한 우려는 없었나요?

A. 피해의식, 대인기피증 등 일본군 ‘위안부’로 인한 트라우마는 대부분의 피해자들에게 다 나타났습니다. 몸에 흉터, 문신 등 외상을 갖고 귀향한 여성들도 있었습니다.

어떤 여성들은 위안소에서 얻은 ‘매독’이라는 아주 극심한 성병질환도 갖고 있었죠. 이런 외상과 피해자들의 정신적 후유증들은 한국사회와 일상의 관계를 형성하는 데 걸림돌이 됐고, 한국사회의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로 인해 정대협 활동가들에 대해서도 신뢰를 갖기 어려웠습니다.

당연히 피해자들의 이런 트라우마는 우리 활동에 큰 어려움으로 작동해 그동안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불거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는 개인의 책임이나 개인탓이 아니었기에, 우리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공동의 책임이기에 우리가 함께 극복해내고, 피해자들이 한국사회에 갖게 된 불신과 대인기피증 등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인권웅호 활동들, 심리적 치유활동들, 경제적지원활동 등을 함께 진행하게 만드는 시작이 됐습니다.


Q. 故 김복동 할머니를 비롯해 많은 할머니들과 인권운동가 국민들의 노력 끝에 위안부 문제가 세상에 알려진지 29년이 됐는데 29년간의 여정은 어땠나요?

A. 활동 초기에 아직 피해자의 목소리가 적을 때는 ‘그런 우리의 부끄러운 문제, 수치스러운 문제를 왜 자랑스럽게 떠들어내냐’는 공격도 받았습니다.

우리의 목소리가 커졌을 때에는 ‘다른 정치적 목적이 있어서 위안부 문제를 이용하면서 반일감정을 조장한다’는 공격도 받았고, 박근혜 정권때에는 북한의 조종을 받고 일하는 ‘종북주의’라는 공격도 받으며 지금까지 활동을 해 왔습니다.

하지만 어떤 공격에도 피해자들과 우리는 목소리를 계속 냈고, 이 문제를 한일간의 정치적인 아젠다가 아닌, 보편적인 여성인권 이슈로, 평화의 문제로 아시아 여성들과 함께 연대하고, 세계 여성인권운동가들과 함께 연대하면서 지난 29년 동안 활동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 왔습니다.

여전히 아베정부는 한발자욱도 변화하지 않고 ‘강제연행 입증증거 없음’ 등 범죄를 부정하고 일본정부의 책임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사회는 피해자들을 향해 ‘부끄러운 문제’ ‘수치스러운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소수가 됐고, 국제사회가 함께 연대하면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이 세계 무력분쟁지역 성폭력 생존자들의 인권회복의 기준을 세우고, 사례를 제공해 왔습니다. 힘겨웠지만 보람이 더 컸던 29년이었습니다.

Q. 이러한 여정을 통해 가장 달라졌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무엇인가요?

A. 가장 중요한 변화는 역시 생존자들과 우리였다고 생각해요.

생존자들이 처음에는 한국사회의 가부장제적인 인식과 문화로 침묵했어요. 하지만 점점 피해의식을 갖고 있던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고, 운동의 주체로 참여해 자신들이 입은 피해를 해결하는 인권운동가로 변했습니다.

다시는 그러한 피해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평화운동가로 활동을 하시게 되면서 피해의식도 극복되고, 그런 당사자들의 활동 모습은 한국사회를 변화하게 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로 인해 다른 무력분쟁지역 성폭력 생존자들이 한국의 피해자들을 통해 희망과 용기를 갖게 됐어요. 

한국의 피해자들의 운동이 세계의 전시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는데 #with_you가 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변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Q.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 아이치현문화예술센터에서 진행 중인 ‘표현의 부자유, 그 후’ 전시장에서 전시가 사흘만에 중단되는 일이 있었는데 대표님께서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께 이러한 일들로 인해 우려하는 점들은 없으신가요?

A. 민주주의 상황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문화예술 운동에 대한 탄압임에 명백하지요.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해자가 ‘돈’과 ‘권력’을 앞세워 피해자의 목소리를 억압하는 반인권적인 폭거라고 단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세기만에 침묵을 깨터려 내가 피해자라고 말을 했고, 30여년 동안 세계를 돌며, 길 위에서 외쳐왔습니다. 그동안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문화예술가들이 문화예술활동으로 위드유 해왔습니다.

피해자들의 30년동안의 끈질 투쟁으로 이루어진 성과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피해자들의 30여년의 여정을 지우려고 하는 일본정부의 행태는 ‘역사지우기’ 이며, 이것은 세계의 평화와 인권 운동에 대한 탄압이고, 그동안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노력해 온 국제사회에 대한 도전이라고 봅니다.

일본정부는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응답해서 범죄 인정과 공식 사죄, 법적 배상을 실시해야 하며, 자유로운 문화예술활동을 보장해야 합니다.
 

[사진= 윤미향 이사장 제공/ 윤미향 이사장]


Q. 일본과의 경제전쟁에 이어 일본 정부가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한 상황에서 이사장님께서 이러한 상황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청산되지 않은 역사가 새로운 ‘전쟁’과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위험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늦었지만 지금 이 상황을 교훈으로 삼아 한일간의 과거역사를 정의롭게 청산해 내는 작업들을 시작해야 합니다.

또다시 현안문제 때문에 과거 역사를 임시방편으로 무마하거나 일본과 거래하려고 하면 위험하다고 봅니다.  일제 강점기동안 피해를 입은 강제노동,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 등의 인권문제는 ‘돈’으로도 그 어떤 수단으로도 거래되어서는 안되는 인류의 가치를 바로 세우는 문제입니다.

Q. 생존해 계신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20명밖에 남지 않은 현재 상황에서 정부와 개인들은 어떠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A. 피해자들의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지요.

지난 2018년 1월 7일, 외교부장관이 발표했던 ‘피해자중심주의에 입각한 해결’을 위해 한국정부는 국제외교정책을 수립, 수행해야 합니다.

시민사회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지요. 무엇보다도 미래세대들이 이 문제를 ‘분노’와 ‘증오’가 아닌 ‘인권’과 ‘평화’관점에서 제대로 인식할 수 있도록 교육과 기림, 연대활동을 통해 일본군성노예제 문제를 기억하고, 피해자들의 활동을 계승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Q. 8월15일 광복절을 하루 앞둔 8월 14일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인데 어떠한 날인가요?

A.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는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임을 밝혔습니다.

그 날의 그 용기있는 가해자를 향한 목소리, 세상을 향한 고백은 한반도와 아시아 각지에 침묵하고 있던 피해자들에게 목소리를 내게 하는 위드유가 됐습니다.

한국 여성인권운동 뿐 아니라 세계 여성인권운동사에 당사자의 목소리, 당사자의 주체적인 활동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확인시켜 줬습니다. 이런 의미를 기억하기 위해 2012년 12월, 대만에서 열렸던 제11차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 참석한 아시아피해자들과 여성들은 8월 14일을 “세계일본군‘위안부’기림일‘”로 선정했습니다.

그래서 올해 8월 14일이 제7차 세계일본군’위안부‘기림일로 지키게 되며, 특별히 올해는 1992년 1월 8일 시작한 수요시위가 1400차가 되는 날이어서 그 의미가 더 크다고 생각됩니다.

Q. 대표님께서 추구하는 평화의 가치는 무엇인가요?

A. 그 어떤 다름도 차별이 아닌, 존중받고 평등한 세상, 전쟁과 무력분쟁의 위협이 제거된 상태, 아픔을 겪은 사람이 자신의 또 다른 아픔을 겪는 사람을 위해 연대하고 나 혼자의 평화가 아니나 ‘함께 평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위안부 문제 외에 풀어나가려 하는 문제들 중에 어떤 것들이 있나요?

A.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은 결국 현재 계속되고 있는 전시 성폭력 피해의 재발을 막는 노력이고, 우리 안의 폭력을 제거하고 평화로운 세상이 되도록 변화시키는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비기금을 통한 세계 무력분쟁지역 성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연대하며, 베트남의 미국전쟁에서 한국군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었던 여성들의 인권회복 또한 우리가 해야 할 과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Q. 앞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해나가고 싶은 것들이 있다면 무엇이 있나요?

A.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피해자들의 복지, 인권회복을 위해 곁에서 돌봐드리고, 돌아가신 후에도 당신들을 잊지 않고, 당신들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활동할 것을 약속드리고 싶어요.

우간다의 내전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이 사는 마을에 ‘김복동센터’를 건립해 김복동 추모관과 일본군‘위안부’ 역사관을 만들 예정입니다.

우간다내전 성폭력 피해자들의 역사관도 만들어 지역은 다르지만, 이 땅의 전쟁이 여성들과 아이들에게 얼마나 잔인한 성폭력 범죄를 만들어내는지 미래세대들에게 교육하고 기억하게 하고자 합니다.

동시에 성폭력으로 태어나는 아이들도 교육받을 권리가 있기에 센터에 학교와 경작지를 만들어 아이들이 교육을 받도록 하고, 농업활동을 통해 스스로 자활할 수 있도록 도우려고 합니다. 이를 통해 우간다의 미래세대들이 ‘김복동’을 이야기하는 날을 바라고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인권과 평등을 힘쓰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A. 지난 30년 동안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들의 뿌린 희망의 씨앗을 우리가 함께 추수하고 더 많은 곳에 씨앗을 뿌리면 좋겠습니다. 한국사회의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을 통해 세계 수많은 여성들과 아이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함께 동행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