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강국, 기술독립이 만든다] <프로폴리스①> 정부‧제약업계 모두 “몰랐다”…무관심에 수장된 ‘세계 최고 기술’

2019-08-09 07:47

국산 플로폴리스가 국내 제약업게의 무관심과 정부의 홍보부족 등으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한 양봉업자가 채집된 벌집을 들어보이는 모습,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가격경쟁력을 갖춘 ‘프로폴리스’가 빛을 보지 못한 것은 국내 제약업계의 무관심과 정부의 적극적인 기술-기업 매칭, 홍보부족 등이 한몫했다.

지금까지 정부는 국유 특허의 사업화보다 건수에만 무게를 뒀다. 정부가 양적 성과에만 치중하다 보니 민간은 우수한 특허를 알 길이 없었고, 결국 ‘외국산이 국산보다 더 좋다’는 인식까지 갖게 됐다.

전문가들은 프로폴리스처럼 ‘잠든 특허’를 발굴하고, 나아가 사업화가 가능한 질 높은 특허를 늘리기 위해서는 ‘특허 지원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조언한다.

◆우수 기술 만들어 놓고도 사장(死藏)시킨 정부

2016년 국내에서 개발된 프로폴리스 추출 기술은 제약업계의 외면과 정부의 방관으로 사장된 대표 사례다. 현재 국내 상위 10대 제약사는 모두 프로폴리스 제품을 출시했지만, 해당 기술을 적용한 제품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제품 출시 전후, 국내에 관련 기술을 보유했는지조차 확인하지 않고 외국산을 수입한 곳도 있다.

정부 차원에서 이를 적극 홍보하려는 움직임도 굼뜬 것으로 나타났다. 프로폴리스는 양봉산물(꿀에서 얻은 물질)을 연구개발한 핵심 성과 중 하나다. 그런데 농림축산식품부의 올해 양봉 자조금 예산은 1억8000만원으로 지난해보다 18.2% 감축됐다. 이 예산은 △소비 홍보 △유통구조 개선 △수급‧가격안정을 위한 사업 지원 등에 사용되는 예산이다. 양봉산물 정보제공사업 예산은 지난해와 같은 1억원으로 꾸려졌다. 정보제공사업은 기업에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사업이 아닌, 현장체험비용 등을 말한다. 프로폴리스‧로열젤리같이 부가가치가 높은 기술을 기업과 연결해 성과를 확장하겠다는 내용의 사업은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관련 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제약사와 정부의 미흡한 성과 홍보 정책에 아쉬움을 토로한다.

김응석 국제미용항노화학회 회장은 “우리나라의 사계절은 식물에게 극한의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생성되는 자기방어 물질들이 진액으로 나오는 데 도움이 된다”며 “실제로 일부 연구에서 다른 나라와의 프로폴리스 내 항산화능력 비교 실험에서 국내산이 더 좋았다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사계절이 뚜렷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국내 양봉산물이 더 우수하다는 얘기다.

프로폴리스에 대한 촘촘한 연구 데이터의 주문도 있다. 김 회장은 "다양한 환경에 따른 변동과 여러 나라의 각 지역별·시기별 생산물을 비교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오히려 국내 프로폴리스의 지역별·시기별 특성에 대한 지속적 연구를 통해 양질의 제품 생산과 임상적 데이터를 보다 체계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원인은 ‘홍보 부족’··· 정부 “우수 특허 발굴‧홍보 확대”

특허청에 따르면, 국유특허 건수는 2014년 4355건에서 지난해 6873건으로 4년 만에 57.8%나 증가했다.

그러나 기업에 이전돼 사업화로 이어지는 활용률은 지난해 21.8%에 불과하다. 특허 10건 중 8건이 활용되지 못한 채 잠자고 있는 셈이다. 국유특허는 국가공무원이 직무수행 과정에서 발명한 특허 등을 국가가 승계한 것을 말한다.

정부는 사업화가 충분히 가능한 '숨은 진주'를 찾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특허청‧농촌진흥청 등 9개 유관기관이 모인 국유특허정책협의회는 중소기업이 국유특허를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지난해 10월 ‘국유특허 활용 혁신방안’을 수립해 추진 중이다. 혁신방안에는 국유특허 사업화 규제 완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

김학도 중소벤처기업부 차관은 “(국유특허를)중소기업에 무상으로 넘겨주고 나아가 민간영역까지 확산될 수 있도록 많이 챙기고 있다”며 “특허청과 협업해 국가나 공공기관이 갖고 있는 특허를 적극적으로 이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허 이전 건에 대한 홍보지원은)현장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앞으로 보완해서 지속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박원주 특허청장은 “그동안 국유특허 보유건수는 국립연구기관의 적극적인 R&D 투자와 맞물려 증가했으나 국유특허 활용률은 기업 및 대학‧공공연에 비해 적은 편”이라며 “낮은 대리인 비용과 부실한 특허명세서로 인한 저조한 특허품질, 전용실시를 저해하는 엄격한 통상실시 원칙의 현행 제도, 연구원 대상의 전문적인 교육 부재로 인한 낮은 인식 등이 원인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박 청장은 “국유특허 활용률을 제고하기 위해 관계부처와 국유특허 활용 혁신방안을 마련했다”며 “이를 통해 우수 특허를 창출하고 사업화 연계를 촉진해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에 특허청이 앞장서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오병석 농림축산식품부 차관보는 “최근에는 상생을 위한 자발적인 기업 참여가 트렌드”라며 “우리나라 선진 농업기술에 대한 홍보와 기업-농가 상생 발전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구실 특허 줄이려면··· “연구자 인센티브-기업 세제혜택 필요”

'연구를 위한 연구', 일명 '연구실 특허'는 사업화로 이어지지 못하는 잠자는 국유특허를 양산한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에서 연구원에게 인정되는 성과는 출원‧등록까지다. 자신의 연구 성과가 사업화된다고 해도 연구원에게 돌아가는 실익은 없다. 특허 건수는 늘어나는데 사업화가 더딘 이유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는 “특허는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며 “질 높은 특허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연구 초기부터 기업과 연계하고 공유하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미래 먹거리와 관련된 특허는 국가와 민간이 함께 연구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며 “사업화에 성공하면 연구자에게도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 간 특허를 이전해줄 때 과세특례 세제지원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며 “대기업이 사용하지 않는 특허를 중소기업이 활용할 때 세제혜택을 주고, 이를 활용하기 위해 특허를 취득한 중소기업도 별도의 세제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