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강국 R&D의 민낯] ② 국가 R&D 투자는 세계 최고 수준인데…예산 집행 들여다보면...

2019-07-05 00:24
R&D 성과물 유기적으로 축적하고 부처 간 전문성 격차 해소하는 모니터링 기구 필요
과기정통부 기초연구 비중 확대 필요성 제기…“실질적 이행 전략 맞춰 투자 이뤄져야”

“우리 R&D 정책에 근원적 문제가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일본의 경제보복을 계기로 국가 연구개발(R&D)의 투자 효용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세계 최고 수준의 R&D 예산을 투입하고는 있지만, 핵심 소재와 부품산업의 국산화에는 심각한 취약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관련 업계 관계자들은 ‘곪은 상처가 터졌다’는 반응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취합한 ‘2017년 연구개발 활동 조사결과’에서 2017년 우리나라 총 연구개발비는 전년 대비 9조3837억원 늘어난 78조7892억원(약 967억 달러)이다. 이는 OECD 국가 중 5위 수준이며, 국내총생산(GDP) 대비로 따져보면 OECD 국가 중 1위의 투자 규모를 자랑한다.

정부의 국가 R&D 집행규모(민간업체 제외)는 어떨까. 최근 5년간 국가R&D 집행규모는 연평균 2.9% 증가했으며, 정부 통합재정 규모에 대한 연평균 증가율(5.1%)의 약 0.6배 수준으로 나타났다.

지난해의 경우, 총 집행액 19조7759억원 가운데 5개 부처(과기정통부, 산업부, 방사청, 교육부, 중기부)가 국가R&D 예산의 78.4%(15조5088억원)를 사용했다. 이 중 과기정통부(33.8%)와 산업부(15.7%)의 비중이 가장 컸다. 과기정통부는 출연연, 기초연구를 중심으로, 산업부는 기업체, 개발연구 중심으로 각각 예산을 투입했다.

같은 기간 연구수행주체별 집행규모를 살펴보면, 대학(23.2%, 4조5871억원), 국과연 산하 출연연(18.9%, 3조7333억원), 부처 직할 출연연(18.7%, 3조7071억원), 중소기업(16.1%, 3조1840억원) 순이다. 이밖에도 대기업·정부부처·중견기업·국공립연구소 등에 25% 미만 규모로 연구 예산이 집행됐다. 지난해는 중소·중견기업 지원정책 강화, 연구자 주도 기초연구 확대 등에 맞춰 중소·중견기업과 대학의 집행액을 꾸준히 늘렸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그래픽=임이슬 기자]


올해 정부 R&D 예산은 사상 최초로 20조원을 돌파했다. 연구자 중심의 R&D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부처마다 제각각 운영 중인 연구비 관리시스템 17개를 2개로 통합하고, 연구지원시스템(20→1개)을 일원화 했다. 또한 연구자 중심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를 대폭 확대하고(2017년 대비, 4500억원 증가) 연구 생애 동안 안정적인 연구를 지원받고 연구 공백을 최소화해 우수성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생애기본연구‘ 체계도 마련했다.

정부의 연구관리 통합이 R&D 성과물을 유기적으로 축적하고 부처 간 전문성 격차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지는 꾸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특히 과기정통부가 주관하는 기초과학 분야에 꾸준한 투자와 체계적인 시스템이 확보돼야 첨단소재 기술의 국산화율도 높여나갈 수 있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그러나 정부 R&D에서 기초연구 비중은 30%대에 그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연구자 주도로 자유롭게 주제와 범위를 설정할 수 있는 연구환경 조성은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실제 정부의 2018년 ‘연구자 주도 기초연구사업’은 집행액이 1조4200억원으로 전년대비 12.3%가 증가했고, 과제 수는 1만7547개로 전년대비 6.5%가 증가했다.

R&D 전문가는 “정부가 투자 확대만 해놓고 부처별로 경쟁적으로 새로운 기획 사업을 만들어 예산을 증액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면서 “첨단 기술의 국산화율 상향 등 실질적 이행을 위한 구체적 전략에서는 미흡한 부분이 있는지 살펴봐야 할 때”라고 진단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최근 심의회의를 통해 2020년도 주요 R&D 규모를 20019년 대비 2.9% 증가한 16조9000억원으로 심의·의결했다. 특히 시스템 반도체, 미래형 자동차, 바이오헬스 등을 3대 중점산업으로 두고 투자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시스템 반도체에는 1450억원을 투입한다. 올해 예산(770억원) 대비 88.3% 늘어난 수치다. 이밖에 사회‧경제적 파급효과가 크거나, 과학난제 해결을 위한 도전형 R&D 신규사업에 예산을 적극 반영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예산 배분‧조정안은 내년 정부 예산안으로 확정해 9월 중 국회에 송부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