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선의 검보 이야기⑦] ‘동양의 삐에로’ 축(丑)

2019-06-15 09:00
각색항당 중 어릿광대 역할…정형성·골계미 특징
송나라 시대 창시 추정…각종 파(派)로 분화·계승

검보(臉譜)는 중국 경극에 등장하는 배우의 얼굴 분장 중 하나로 크게 소면(素面) 분장과 도면(塗面) 분장으로 나뉜다.

소면 분장은 주로 남자 주인공인 생(生)역과 여자 주인공인 단(旦)역에 사용되며, 얼굴에 살색과 분홍색 분을 먼저 살짝 바르고 검은색으로 눈과 눈썹을 그리는 분장법이다.

도면 분장은 주로 호걸이나 악당인 정(淨)역과 어릿광대인 축(丑)역에 사용되며, 극 중 역할에 따라 색과 도안을 그려 넣는 색채 화장을 말한다.

검보는 바로 모든 정역과 축역의 도면 분장에 대한 통칭이다. 검보라는 명칭은 대략 청나라 시대 말엽에 생겨났으며, 본격적으로 문헌에 보이기 시작한 것은 중화민국 초기부터다.

오늘날 검보는 일반대중들에게 경극 얼굴 분장의 대명사로 널리 인식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공연예술을 대표하는 시각 이미지로 자리를 잡았다.

해당 지역의 문화적 축적물인 검보를 통해 중국의 문화적 코드와 패러다임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희극배우는 우스운 말이나 행동을 해서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사람이다. 이 배역은 시각적으로도 웃음을 자아내는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기도 한다. 서양에는 삐에로(피에로·pierrot)가 있다면, 중국에는 축(丑)이 있다.

중국 전통극에는 극 역할에 따라 배역이 나뉜다. 이를 각색항당(脚色行當)이라고 하며, 남자 주인공인 생(生), 여자 주인공인 단(旦), 호걸이나 악당인 정(淨), 어릿광대인 축(丑) 네 종류가 있다.

축 역에는 크게 서생과 같은 문인 역할을 하는 문축(文丑)과 무술을 하는 무인 역할을 하는 무축(武丑)으로 나뉜다. 이 역은 각색항당 중 정 역과 함께 검보를 사용해서 분장하는데, 극에서 한눈에 희극배우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상징적인 검보를 사용한다. 축 검보는 코를 중심으로 얼굴 가운데 부분을 하얗게 칠한다.
 

(위) 경극 문축(왼쪽)·경극 무축. (아래) 경극 장간 문축검(왼쪽)·경극 하후영 무축검. [사진=(위)바이두 캡처, (아래)도서출판 학고방 제공]


삼국희에 등장하는 인물 중 대표적인 축 역으로 장간과 하후영을 들 수 있다. 장간은 적벽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경극 ‘군영회(群英會)’에서 조조의 책사로, 문축 검보로 분장한다. 그는 적벽대전에서 주유를 회유하러 파견됐지만, 오히려 주유의 함정에 빠지는 어리석은 인물로 등장한다.

하후영은 유방과 항우의 이야기를 다룬 경극 ‘추한신(追韓信)’에서 유방의 수하 장수로, 무축 검보로 분장한다. 하후영은 말을 관리하고 모는 태복 자격으로, 유방을 도와 항우를 물리치는 인물로 등장한다.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경극 맹덕록 소축검, 경극 숭공도 노축검, 경극 주능아 쟁형무축검, 경극 백승 상형무축검. [사진=바이두 캡처]


축 검보는 해당 인물의 신분, 나이, 성격, 행동에 따라 다양한 모양으로 그린다. 경극 ‘어비정(禦碑亭)’에서 어리석은 젊은 아들 맹덕록(孟德祿)은 소축검(小丑臉)을 사용하고, 경극 ‘여기해(女起解)’에서 죄인을 호송하는 늙은 관리 숭공도(崇公道)는 노축검(老丑臉)을 사용한다.

수호희 경극 ‘생진강(生辰綱)’에 등장하는 양산박 호한 백승(白勝)은 대낮의 쥐라는 뜻의 백일서(白日鼠)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어, 쥐 형상을 그린 상형무축검(象形武丑臉)을 사용한다. 경극 ‘향마전(響馬傳)’에 등장하는 주능아(朱能兒)는 연 모양을 그린 쟁형무축검(箏形武丑臉)을 사용한다. 이처럼 축 검보는 정형성과 골계미를 주요 특징으로 한다.

축 검보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확실하지는 않다. 다만 문헌상에서 축 역이라는 말은 송대(宋代) 남희(南戱)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했고, 얼굴 중앙에 하얗게 분장한 배우의 모습은 송대 잡극(雜劇)을 공연하는 그림에서 처음 보인다. 이후 점차 발달하다가 청나라 시기에 절정을 이룬다.
 

송대 잡극 축 검보(위), 청대 동광명령십삼절. [사진=바이두 캡처]


청대 축 역으로 가장 이름을 떨친 배우는 양밍위(楊鳴玉)이다. 처음에는 곤곡(昆曲)의 생 역을 연기했으나 후에 축 역으로 바꿨다. 북경에 올라온 뒤 여러 극단의 수많은 작품에서 주로 축 역을 공연했으며, 문축과 무축 모두 매우 뛰어났다.

양밍위는 청대 동광명령십삼절(同光名伶十三節)에 축 역으로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동광명령십삼절은 동광 연간 경극의 노생(老生), 무노생(武老生), 무생(武生), 소생(小生), 청의(青衣), 화단(花旦), 노단(老旦), 축(丑) 등 각 각생항당에서 가장 탁월한 배우 13명을 뽑아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에는 정 역을 공연하는 배우들은 얼굴에 검보를 그려야 해서 제외됐다. 양밍위는 그림에서 뒷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인물로, 경극 ‘사지성(思志誠)’의 민천량(閔天亮) 역을 분장하고 있다.

근대에는 축 역 배우들이 문파를 형성해서 연기를 개발하고 발전시켰다. 샤오장화(蕭長華)는 문축을 중심으로 샤오파(蕭派)를 창시했고, 예성장(葉盛章)은 무축을 중심으로 예파(葉派)를 창시했다. 이들은 희곡 교육과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웃음을 ‘행복의 문’이라고 했다. 웃음은 인간을 행복으로 인도하는 관문이지만, 인간은 그 문을 열어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웃음은 우연을 바탕으로 한 보편성과 특수성을 지닌 코드를 동반한다. 코드는 관계에서 형성되는 것으로, ‘행복의 문’은 웃음 코드가 맞는 지점에서 활짝 열린다. 언제나 만나는 모든 이들과 서로 ‘행복의 문’을 열어 주는 행운이 가득하길 기원한다.

 

[정유선 상명대 교육대학원 중국어교육전공 교수(베이징사범대 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