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A 정보원 김정남, 한·중·일 정보기관과도 접촉"-WSJ

2019-06-12 14:17
"북한 정보 건넨 대가로 가족 안전·돈 원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생전에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주요국 정보기관과 접촉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김정남은 북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대신 돈과 가족의 안전을 보장받길 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 전 김정남이 미국 중앙정보국(CIA) 정보원이었다고 보도한 WSJ는 이날 미국 전직 관료들을 인용해 김정남이 다른 나라 정보기관과도 접촉했다고 전했다.

김정남과 한국 정보기관의 만남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김정남이 한국뿐 아니라 일본, 중국 기관과도 만났다고 귀띔했다. 자신이 위험에 처할 경우 가족을 보호하고 돈을 벌기 위해 이들 정보기관과의 관계를 구축하려 했다는 설명이다.

이 소식통은 또 김정남이 자신이 정보원이라는 사실을 감추려는 시도로 보이는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 김정남이 몇 가지 정보를 제공할 때 가짜 정보를 포함시킴으로써 한국 정보기관이 다른 정보원을 찾도록 해 자신의 개입을 숨기려 했다는 것이다.

다만 WSJ는 다른 복수의 소식통이 김정남의 정보력에 의문을 제기했다고 전했다. 김정남이 북한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속속들이 알지 못했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정남은 장성택 처형 후 북한 고위급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남은 외국 정부에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돈이라는 중요한 혜택을 제공받았을 것이라고 신문은 지적했다. 김정남은 2011년 김정일 사망 후 재정 지원이 끊겼지만 명품과 고급와인을 좋아하고 여행과 도박을 종종 즐겼으며, 중국 베이징에 연인과 제2의 가족을 두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과 그의 이복형 김정남(왼쪽) [사진=AP·연합뉴스]


한편 WSJ는 전날 김정남이 CIA 정보원으로서 CIA 요원들과 여러 차례 만났다고 보도했다. 김정남이 2017년 2월 말레이시아를 찾은 이유 중 하나는 CIA와 접촉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남은 당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맹독성 화학무기인 VX 신경작용제에 노출돼 살해됐다.

김정남이 CIA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주장은 앞서 일본 매체를 통해서도 제기됐다. 애나 파이필드 워싱턴포스트 베이징 지국장이 최근 출간한 김정은 평전 ‘마지막 계승자'에도 비슷한 내용이 실렸다. 파이필드는 이 책에서 김정남이 CIA 정보원이라는 사실을 안 김정은이 김정남 살해 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김정남 살해 배후설을 부인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을 만나, 김정남이 CIA의 정보원이었다는 보도와 관련해 "내 임기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할 것"이라며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그런 일'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외신들은 미국 정보기관이 김 위원장의 친인척을 정보원으로 고용하도록 두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풀이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으로부터 "아름다운 친서"를 받았다고 알리는 자리에서 나온 말인 만큼 두 정상의 신뢰를 강조하기 위한 유화적 메시지로 보이지만, 미국 언론들은 대통령이 자국 정보기관 대신 적성국의 편을 들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가 2016년 미국 대선에 개입했다는 CIA와 연방수사국(FBI)의 수사 결과를 부정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