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루이비통마저 뛰어든 이커머스...안이한 국내 기업들

2019-06-09 21:36

[서민지 산업2부 기자]

“프랑스 명품 브랜드 이자벨마랑(ISABEL MARANT) 제품을 처음 판매했을 때, 한국 고객들이 하루 만에 모든 옷을 싹쓸이해 갔다. 믿을 수 없었다.”

세계적인 명품패션 그룹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가 아시아 최초로 온라인몰 ‘24S’ 한국어사이트를 개설한 이유다. 지난달 23일 에릭 고게 24S 최고경영자(CEO)는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젠 한국어로 쇼핑하고, 배송도 단 5일 만에 받아볼 수 있다”고 소개했다. 언어와 배송의 장벽이 있을 때도 ‘직구’에 열광하던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간편해진 24S로 달려갈 게 불보듯 뻔했다.

그날 집에 오자마자 24S를 둘러봤다. 눈이 돌아갔다. 사고 싶었지만 가격 때문에 망설였던 제품들이 많게는 정가 대비 70% 할인 판매하고 있었다. 이번 시즌 인기였던 이자벨마랑 아보니 코튼 드레스와 밀리 스웨트셔츠는 무려 40% 할인한 가격으로 유혹했다. 한국에서는 시즌 오프 상품을 얼마에 파는지 궁금했다. 이자벨마랑은 국내 기업 LF가 전개하는 브랜드다. ‘LF몰’ 및 국내 백화점 가격을 찾아봤다. 겨우 10% 할인 판매하고 있었다. 결국 24S에서 결제하는 나를 발견했다.

24S가 다녀간 지 나흘째 되는 지난달 27일. 같은 공간에서 중국 이커머스 기업 알리바바가 운영하는 ‘티몰’의 이치엔 글로벌 부대표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한국 기업을 향해 열정적으로 ‘손짓’했고, 유통의 국경이 사라져 가는 것을 실감했다. 해외 거대 유통 공룡들이 한국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최근 백화점·패션 기업을 포함한 국내 유통업 관계자들에게 대비책을 물었다. “저희도 이커머스를 강화하고 있다. 근데, 돈 있는 사람들이 굳이 명품을 온라인에서 사겠냐” 혹은 “결제 방식이 복잡한 직구는 이용하는 사람만 이용할 것”이라는 말이 돌아왔다. 백화점 업계 1위 롯데백화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만만했던 롯데백화점은 24S가 한국 서비스를 시작한 일주일 뒤 해외명품 편집숍 ‘탑스’의 온·오프라인 융합 매장을 열었다. 탑스에서 실물을 보고 해외 직구 상품을 모바일로 구매할 수 있는 매장이다.

국내 유통업계는 지난해 말 미국 유통업체 ‘시어스’와 장난감 판매업체 ‘토이저러스’ 파산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온라인쇼핑 거래액 100조원 시대. 혁신 없이 지금처럼 뒷짐 지거나 뒷북만 거듭한다면 24S·아마존·알리바바의 쇼룸으로 전락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지난달 23일 에릭 고게 24S 최고경영자(CEO)가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한국어사이트 개설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다.[사진=24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