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온에서 ‘얼음’ 탄생…표준과학연, 압력으로 얼음제어 기술 개발

2019-05-30 12:00

​# 상온이나 심지어 물이 끓는 고온에서 얼음이 얼 수 있을까? ‘따뜻한 얼음’은 일반적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현상이지만, 액체가 고체로 변화하는 응고 현상은 온도뿐만 아니라 압력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조건만 맞춘다면 가능한 일이다. 다만 그 조건이 대기압의 1만 배 이상인 기가파스칼(GPa) 정도의 초고압이라 실현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여겨져 왔다.
 

동적 고압을 형성하기 위한 다이아몬드 앤빌셀을 확대한 모습.[사진= 표준과학연구원]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이 초고압의 극한 환경을 구현, 상온에서 얼음을 만들고 형상을 제어하는 데 성공했다. 바이오·식품·의료, 항공우주 등 다양한 산업에 적극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표준과학연구원은 KRISS 융합물성측정센터 극한연구팀이 자체 기술로 물을 1만 기압 이상 압축하여 얼음을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고 30일 발표했다. 또한 압력 조건을 제어해 3차원의 얼음의 2차원 변화를 관찰하고 얼음의 형태 변화 메커니즘을 규명했다.

이번 기술은 온도에 구애받지 않고 얼음의 크기나 형태 및 성장하는 속도를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데 의의를 가진다.

특히 얼음결정을 온도가 아닌 압력으로 제어하는 경우 기존 얼음이 가졌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실제 육류의 경우 고압에서 냉동시키면 뾰족하지 않은 다른 형태의 얼음결정이 생겨 육질을 보호할 수 있다.

비행기에 생기는 얼음은 기체 결함과 추락까지도 유발할 수 있다. 눈이 오는 날은 물론 영하 40 ℃까지 떨어지는 고도 1만 m 상공에서는 비행기 날개에 결빙이 일어난다. 얼음결정이 비정상적으로 성장하면 날개 모양에 변화를 일으키고 양력을 떨어뜨린다. 그만큼 얼음결정의 성장속도와 형태 제어는 비행기 안전과 운행 효율에 큰 영향을 미친다.

KRISS 연구팀의 이윤희, 이수형, 이근우 책임연구원은 초당 대기압의 500만 배까지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실시간 동적 다이아몬드 앤빌셀(anvil cell)’ 장치를 개발, 고압에서의 얼음 성장에 적용했다. 그 결과 상온에서 물을 압축해 고압얼음을 형성하고, 동적인 압력 조작을 통해 3차원 팔면체 얼음을 2차원 날개 모양으로 변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기술은 초고압 환경을 구현하는 다이아몬드 앤빌셀에 구동제어, 분자 진동 측정기술 등을 동기화해 물질의 압력, 부피, 영상, 분자 구조 정보까지 동시 측정할 수 있는 독자적인 기술이다.

KRISS 이윤희 책임연구원은 “고압 냉동기술을 활용하면 식품의 맛과 신선도를 유지하는 새로운 형태의 얼음결정과 냉동공정을 만들 수 있다”며 “이번 기술을 현재 신선식품의 물류에 사용하는 콜드체인(cold chain) 시스템에 적용하면 식품의 상품성이 더욱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KRISS 이근우 책임연구원은 “이번 기술은 다양한 결정구조에 활용할 수 있어 응용분야가 무궁무진하다”며 “초고압과 같은 극한 환경에서는 새로운 물질의 특성을 발견할 수 있어 한계에 부딪힌 과학기술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연구 성과는 세계 3대 학술지인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 Proceedings of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IF 9.661)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