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젖은 ‘뚝심의 9년’…강성훈, 작은 거인으로 우뚝 선 ‘158전 159기’

2019-05-13 14:55
PGA 투어 AT&T 바이런 넬슨서 ‘23언더파’ 생애 첫 우승
2011년 데뷔 후 8년 만에 159번째 대회서 정상 밟아
한국 선수로는 6번째 PGA 투어 우승자 대열 합류
‘휴스턴 악몽’ 떨친 15번홀 버디 퍼트…최경주 조언도 큰 도움


158전 159기.

꿈의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생애 첫 우승. 스물넷의 나이에 미국 무대로 건너가 서른둘에 기어코 정상을 밟았다. 한우물만 9년째 판 강성훈(32)이 이룬 뚝심의 결과였다.

PGA 투어 9년차 강성훈이 159번째 대회 만에 감격적인 생애 첫 우승을 달성했다. 강성훈은 13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의 트리니티 포리스트 골프클럽(파71)에서 열린 AT&T 바이런 넬슨에서 최종합계 23언더파 261타로 우승했다. 우승상금 142만2000 달러(약 16억7000만원)를 받아 두둑한 돈방석에도 앉았다.
 

생애 첫 우승을 직감한 버디를 잡은 뒤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강성훈. [AP·연합뉴스]

◆‘휴스턴 악몽’ 떨친 15번홀 클러치 퍼트

2년 전 강성훈은 첫 우승 기회를 잡았다. 2017년 셸 휴스턴 오픈 마지막 날 리키 파울러(미국)에 3타 앞선 단독 선두로 출발했다. 우승이 눈앞에 아른거려서일까. 그린 위에서 쩔쩔맸다. 퍼터가 말을 듣지 않았다. 5m 이내 버디 퍼트를 수차례 놓쳤다. 결국 강성훈은 러셀 헨리(미국)에게 역전을 당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서른살을 맞은 그해 뼈아픈 성적으로 남은 대회다.

두 번의 실수는 없었다. 강성훈에게 다시 우승 기회가 찾아왔다. 2년 전과 상황도 비슷했다. 3라운드까지 3타 차 단독 선두를 질주한 강성훈은 우승 가능성을 부풀렸다. 이번엔 달랐다. 그린 위에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8~10번, 14~16번 홀에서 두 차례나 3연속 버디를 낚는 등 버디를 7개나 잡아냈다. 특히 멧 에브리와 공동 선두였던 15번 홀(파4)이 결정적이었다. 강성훈은 까다로운 내리막 약 7m 버디 퍼트를 성공하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에브리는 이 홀에서 보기를 적어냈다. 강성훈이 에브리를 2타 차로 따돌리며 사실상 우승에 쐐기를 박은 클러치 퍼트였다.

이 대회 우승의 밑거름은 2라운드였다. ‘보기 프리’의 완벽한 경기로 버디만 10개를 잡아 코스 레코드 타이기록인 61타를 적어냈다. 이후 악천후로 일몰 중단돼 마지막 날 27개 홀을 돌면서도 강성훈의 우승을 향한 집념은 흐트러질 겨를이 없었다. 강성훈은 이 대회 우승으로 2020~2021시즌 PGA 투어 카드와 내년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마스터스 출전권도 획득했다.

또 2017년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김시우 이후 3년 만에 정상에 오른 강성훈은 최경주(8승), 양용은(2승), 배상문(2승), 노승열(1승), 김시우(2승)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여섯번째로 PGA 투어 정상에 오른 선수가 됐다.
 

가족과 함께 감격의 우승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강성훈. [AP·연합뉴스]


◆뚝심으로 버텨낸 ‘작은 거인’

13년 전인 2006년, 강성훈은 한국 남자골프의 기대주였다.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롯데 스카이힐 오픈에서 아마추어 신분으로 첫 정상을 밟은 뒤 도하 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고 프로로 전향했다. 이후 2008년 신인상(명출상)에 이어 2013년 한국오픈 우승과 함께 상금왕도 차지하는 등 코리안투어 통산 4승을 수확했다.

강성훈의 발길은 어려서부터 꿈이었던 미국 무대로 향해 있었다. 2011년 PGA 투어에 데뷔한 그는 그해 3위 성적을 내며 우승을 예고했다. 하지만 첫 우승이 나오기까지 9년의 시간이 그를 괴롭혔다. 2012년에는 30개 대회에서 무려 22차례나 컷 탈락했다. 투어 카드를 잃은 그는 3년간 2부 투어를 전전했다. 포기는 없었다. 2016년 다시 PGA 투어에 입성해 정상을 향해 재도전했다. 지난해엔 드롭 위치로 속임수를 썼다는 비난까지 받는 설움을 당했다. 무명의 수모를 이겨낸 강성훈은 마침내 투어 정상에 우뚝 섰다. 뚝심으로 버텨낸 키 172㎝의 ‘작은 거인’이었다.

◆“아버지, 제가 해냈어요!”

“제가 해냈어요!”

우승 직후 트로피 세리머니 때 휴대폰을 꺼내든 강성훈이 한국에 계신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던진 한 마디다. 철없던 15살 어린 시절 미국으로 골프 유학을 보내 지금의 강성훈을 만든 아버지에게 가장 감격적인 순간, 감사의 인사를 건넨 순간이었다.

우승의 감동 현장에는 아내와 지난해 태어난 아들이 그의 곁을 내내 지켰다. 대회 기간 30분 거리의 집에서 머무른 것도 우승의 원동력이었다. 강성훈은 “내 침대에서 자고, 아내와 아이, 친구들이 있어서 많은 응원을 받은 덕분에 우승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경기 중에는 캐디가 특급 도우미였다. 긴장을 풀기 위해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다. 그는 “마지막에는 정말 정신력 싸움이었다. 후반 9개 홀에서는 정말 정신적으로 피곤했다”면서 “캐디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계속해 달라고 했고 덕분에 많이 웃으면서 골프를 잠시 잊을 수 있었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맏형’ 최경주의 한 마디도 그를 깨웠다. 최종일에 앞서 최경주는 “너의 경기를 하려고 노력하라. 아무것도 바꾸지 마라. 너무 공격적으로 하려고 하지 마라. 다른 선수가 무엇을 하는지 보지 마라”고 조언하며 후배의 우승 조력자로 나섰다. 강성훈은 “최경주 선배가 토요일에 많은 조언을 해준 것이 정말 큰 도움이 됐다”고 되돌아봤다. 이어 그는 “훌륭한 선수들 사이에서 우승을 하게 된 것은 나의 수준을 한 단계 올린 의미 있는 일”이라며 “더욱더 노력하는 자세로 나의 레벨을 올리겠다”고 다짐했다.

강성훈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갈비다. 대회 진행자가 ‘가족과 우승 기념파티를 하면서 갈비를 얼마나 먹을 것인가’라고 물을 정도로 소문이 나 있다. 생애 가장 맛있는 갈비를 먹을 시간을 앞둔 그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아니다. 내일 아침 6시에 트레이너를 보기로 했다. 갈비를 먹는 대신 곧바로 운동을 시작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