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휘 스페셜칼럼] ​ 기로에 선 미중 무역전쟁

2019-05-13 14:53

[이왕휘 교수l]



미국과 중국의 무역협상 최종 타결을 앞두고 교착 상태에 빠졌다. 5월 4일 “아주 역사적인 거래가 거의 끝나가고 있다”고 발언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일 트위터에 중국이 그동안 협상에서 합의한 내용을 번복하면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 수입품에 대한 관세율을 10일부터 10%에서 25%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하였다. 9일 워싱턴에서 시작된 11차 협상이 끝나기도 전에,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예고대로 관세를 인상하는 동시에 나머지 3,250 달러 규모의 수입품에 대해서도 25% 관세 부과를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2019년 양회 정부업무보고에서‘중국제조 2025’를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을 정도로 조심스러웠던 중국 정부는 보복관세를 불사하겠다고 즉각 반발하였다. 또한 협상 직후 류허 부총리가 원칙 문제에 대해서는 절대로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하였다.


불과 몇 일전에만 해도 순조롭게 타결될 것으로 예상되었던 협상이 왜 결렬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을까? 이번 협상만 놓고 보면, 일차적 책임은 중국의 태도 변화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류허 부총리에 따르면, 이번 협상의 쟁점은 미국의 관세 철폐 시점, 중국의 미국 상품 구매 규모, 그리고 합의문의 일부 문구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를 통해 공개한 쟁점이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4월 29일-5월 1일 베이징에서 열린 10차 고위급 회담에서 중국은 기존에 합의한 내용을 번복하고 재협상을 요구했다. 지적재산권 침해, 강제적인 기술이전 및 정부보조금 제공 등의 금지를 명확하게 보장하기 위해 국무원(행정부)이 아니라 전국인민대표자회의(입법부)를 통해 국내법을 개정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중국이 거부한 것이다. 약 150쪽 분량의 합의문 초안을 점검하는 최종단계에서 재협상 요구는 협상을 지연시키거나 결렬하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또한 미국은 류허 부총리가 11차 협상에서는 국가주석의 특별대표라는 직함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으며, 일정이 하루 지연되었다는 사실에도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막후에 있었던 시진핑 주석이 직접 거부를 지시했기 때문에, 협상의 여지가 근본적으로 축소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은 중국이 해석의 여지를 남겨 놓기 위해 합의안의 중국어 번역본을 제출하지 않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그러나 11차례 협상 전체를 평가해 보면, 중국의 태도 변화는 미국의 입장 변화에서 기인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무역적자 해소뿐만 아니라 디지털보호주의 또는 기술민족주의를 내세우면서 무역전쟁을 패권경쟁의 전초전으로 비화시켜 버렸다. 2017년 4월 마라라고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100일 행동계획은 통상문제에 한정되었던 반면, 2018년부터 미국은 국가안보라는 명분으로 중국의 대미 투자를 제한하고 중국의 국내법 개정까지 요구하였다.

몇 주 후 베이징에서 열리게 될 후속 협상에 극적인 타결이 가능할까? 중국이 즉각적으로 관세보복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양국 정상이 참석하는 다음 달 G20 정상회담 전까지 합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현재로서는 낙관적 기대보다는 비관적 전망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무역전쟁이 패권경쟁의 전초전으로 전환되면서 협상 결과가 국내정치에 미치는 영향력이 더 커져,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모두 체면을 세울 수 있는 타협의 여지가 확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서 미중 대치 국면의 지속은 경제적으로는 물론 정치적으로도 나쁘지 않다. 현재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높고 실업률이 낮기 때문에 보복관세의 충격을 상당 기간 견딜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동시에 무역전쟁이 격화된 이후 고조된 반중 정서는 러시아 스캔들 이후 가중되고 있는 대통령 탄핵 위험을 완화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다. 자유무역을 신봉해온 공화당 의원들은 물론 대통령 탄핵을 압박하는 민주당 의원들까지 대중 압박을 초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또한 무역전쟁의 최대 피해자인 농민들 사이에도 아직까지 트럼프 대통령 지지도가 낮아지는 징후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시진핑 주석의 입장에서도 미국과 빨리 타협을 해할 이유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무역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예상보다 적다는 사실도 중국 정부가 강력하게 반발할 수 있는 여지를 확대해주고 있다. 미국의 보복관세 여파에도 불구하고 무역량이 1-4월에 4.3% 증가하였으며, 올해 1/4분기 GDP 성장률이 작년 4/4분기와 같은 6.4%를 유지하였다.

또한 중국은 국제정세가 미국에게 불리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G7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일대일로 구상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던 이탈리아 총리를 비롯한 37개국 정상, 안토니오 구테흐스 UN사무총장,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을 포함한 92개 국제기구, 150개국 고위급 대표단 등 6,000여 명이 참가한 제2차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을 통해 중국은 미국의 봉쇄 전략 속에서도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과시하였다.

미국이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제5세대(5G) 이동통신산업에서 중국 봉쇄 전략에도 심각한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화웨이 장비를 전면적으로 배제하라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요구를 주요 동맹국들이 거부하고 있다.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드스트림(Nord Stream) 2 프로젝트를 계속 추진하는 독일은 화웨이 장비를 배제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천명하였다. 미국이 주도하는 앵글로색슨 정보협력기구인 '파이브 아이스'(Five Eyes)에 참여한 국가들 중에서는 호주만 화웨이를 전면 배제하는데 찬성하였다. 전통적 우방인 영국은 기간시설에만 화웨이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절충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캐나다와 뉴질랜드는 최종 결정을 하지 않고 있다.

마지막으로 미국이 요구한대로 법률을 고칠 경우 제2의 난징조약(아편전쟁이 끝난 1842년 체결된 불평등 조약)이나 제2의 플라자 합의(1985년 미국의 압박에 일본이 엔화의 평가절상을 허용)라는 비판이 나올 것이다. 이런 비판은 아편전쟁 이후 100년 동안 ‘치욕의 시대’ 극복을 목표로 하는 시진핑 주석의 ‘중국의 꿈’(中国梦)을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다.

이미 무역전쟁이 패권경쟁의 전초전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앞으로 양국이 이전과 같은 관계를 회복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선거 참모였던 스티브 배넌이 강조하고 있듯이, 이번 기회에 중국을 굴복시키지 못할 경우 미국은 향후 패권경쟁에서 수세에 몰리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가지고 있다. 중국 역시 이번 무역전쟁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 이후에도 대중 봉쇄전략이 지속될 경우를 대비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내수 부양정책을 통해 현재 약 4%인 GDP 대비 대미 수출 비율을 더 축소한다면, 중국은 미국 통상압력에 훨씬 덜 위험에 노출될 것이다. 그 전까지 대치 국면이 지속된다면, 향후 협상의 현실적인 목표는 종전에서 휴전으로 격하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