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찬 칼럼] 한중 FTA 지방경제협력의 동상이몽
2019-05-11 06:00
지난주 중국 지방정부 상무국 공무원 대상 ‘한중 FTA 회고 및 지방경제협력의 문제점 및 방향’이라는 주제로 원어특강을 하기 위해 광둥성 후이저우시를 방문했다. 100여 명의 산둥 옌타이, 장쑤성 옌청 및 광둥성 후이저우시 상무국 공무원 및 중한산업단지 관계자, 현지 기업인들이 참석했다. 한중 FTA 틀 안에서 지방경제협력 강화를 위한 대안을 모색하고, 문제점을 공유하기 위해서이다. 2시간 내내 진행된 강의와 질의응답 시간을 통해 한중 FTA 지방경제협력의 동상이몽을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한국기업 투자유치에만 관심이 있을 뿐 한중 지방경제협력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했다.
한중 양국은 2015년 12월 FTA 협정문 제17장 제25조 조항에 지방경제협력과 제26조 양국 산업단지 상호설립 조항을 포함시켜 양국 지방정부가 경제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바 있다. 한국이 체결한 기타 FTA 협정문에서는 언급되지 않은 내용으로 양국 지방정부간 경제협력을 더욱 활성화하고 구체화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이었다. 한중 FTA 지방경제협력의 경우 초기에 인천경제자유구역(IFEZ)-산둥성 웨이하이를 지정하였으나, 인천경제자유구역의 공간적 및 인프라 미비 등의 제약으로 인해 시범협력사업의 범위를 인천경제자유구역에 국한시키지 않고, 인천시로 확대하여 7대 분야 총 41개 세부 시범협력사업 분야를 선정하여 웨이하이시와의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제약요인으로 인해 몇 년째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다.
양국 한중산업단지 설립 및 운영에 있어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양국 중앙정부에 의해 한국측 한중산업단지는 새만금이 단독 결정되었고 중국측 중한산업단지는 옌청, 옌타이, 후이저우가 선정되어 운영되고 있다. 새만금은 현재 3개 중한 산업단지 지정도시와 MOU 체결 등 협력 기반을 마련하였으나 실제 기업투자를 촉진시키기 위한 한중간의 구체적 협력방안은 아직 마련되지 못한 상태이다. 정기적인 교류와 전시성 행사는 진행되는데 원론적인 협력논의와 대화만 지속되는 형국이다. 한중 FTA 지방협력 도시는 아니지만 사실 한중 지방정부간 경제협력의 중요성은 92년 한중수교 이후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2018년 현재 한국의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 및 기초 지자체가 중국의 각 지방정부와 약 650여 건의 자매도시 또는 우호도시 결연을 체결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단발적인 전시성 경제통상 행사 및 교류정도에 그치고 있어 실질적인 경제협력은 거의 전무한 상태이다.
과연 무엇이 문제인 것일까? 크게 2가지 원인으로 요약된다. 첫째, 자국 도시위주로 협력의 판을 짜고 콘텐츠를 만들뿐 상대 도시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없는 이른바, ’상호신뢰 메커니즘‘이 부재하다. 양국 지방경제협력의 파트너로서 서로를 인정하고, 공동사업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해 보인다. 한국의 경우 해당 지자체장이 바뀌면 과거 진행된 협력사업은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부지기수고, 담당 공무원의 잦은 보직이동으로 전문성도 떨어진다. 중국은 한국기업 투자유치에만 매몰되어 있다 보니 해당 지자체와의 경제협력은 관심 밖이다. 서로 다른 목적과 관심만 있을 뿐 협력성과는 별로 없는 전형적인 동상이몽식 지방경제협력의 현모습이다.
둘째, 정책적•제도적 지원 시스템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 업무추진의 불협화음으로 인해 더 이상 진전이 없다. 양국정부가 힘들게 만들어 놓은 지방협력토대가 공염불(空念佛)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한중 FTA 협정문에서 지정된 지방경제협력도시 및 한중산업단지의 경우 중앙정부 차원에서 정책적 지원이 뒤따르지 않으면 허울만 지정도시이지 기존 일반적인 한중 지방경제협력과 별반 다르지 않는 단발성 조항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한중 FTA 지방경제협력을 위해서 Why, What, How의 3단계 원칙에 따라 접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왜(Why) 한중 지방경제협력을 강화해야 하는가? 그것은 지방정부간 경제협력 강화를 통해 한중 양국정부협력의 토대를 만들고, 이를 통해 지방정부에 경제적 효용을 가져올 수 있어야 한다. 무엇(What)을 통해 협력을 강화해야 하는 것인가? 양국 기업의 협력과 교류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정부가 비즈니스 협력 플랫폼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양국 모두 기업유치에만 신경을 쓰지 기업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왜 상대 도시에 투자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필요성과 당위성을 주지 못하고 있다. 어떤 협력(How)을 해야 하는가? 상호인증 및 간편 물류통관시스템 구축, 원산지 증명서 간소화 등의 한중 FTA의 무역 편리화, 무역 간소화의 틀 속에서 세부적인 협력 사업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단방향의 기업투자유치를 위한 협력 사업이 아닌 쌍방향의 상호연계형 한중산업단지(Twin-Park) 구축을 통한 상호 윈윈의 기업투자유치 활동이 진행되어야 한다. 필자는 그 동안 한중 FTA 지방협력도시 및 한중산업단지로 지정된 지역의 여러 차례 답사 및 시장조사를 통해 도출된 한중 FTA 지방경제협력을 위한 구체적인 공동사업 및 문제점을 제안한 바 있다. 한중 지방경제협력을 내실화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이해와 요구에 부합하는 구체적인 공동사업과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한중관계는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의 패권전쟁에 따른 향후 사드사태와 같은 불확실성이 지속될 수밖에 없고, 이런 동아시아의 패러독스 상황에서 한중관계의 균형점을 찾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방경제협력은 중앙정부 차원의 협력과 비교해 국가의 핵심이익 관련 민감한 이슈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율적이고 유연한 입장을 취할 수 있기 때문에 한중관계를 회복하고 내실화하는데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중앙정부는 지방정부가 가지고 있는 경제적•전략적 가치와 역할을 최적화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하고, 지방정부는 그에 맞는 적극적인 기업 친화적 마인드셋을 통해 중국과의 지방협력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지금의 한중 FTA 지방협력이 동상이몽(同床異夢)으로 끝나지 않고, 동상동몽(同床同夢)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산관학 모두 지혜를 모아야 한다.
박승찬
중국 칭화대에서 경영학 박사를 취득하고, 대한민국 주중국대사관 경제통상관 및 중소벤처기업지원센터 소장을 5년간 역임하며, 3,000여 개가 넘는 기업을 지원했다. 현재 중국경영연구소 소장과 용인대학교 중국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