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 건설산업 혁신의 본질과 가치
2019-05-01 09:00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혁신성장은 우리 시대의 화두다. 첨단산업도 혁신이 필요하지만 건설산업과 같은 전통산업은 그 필요성이 더 크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건설투자 비중이 15%를 넘고, 200만명이 넘게 종사하고 있는 우리 건설산업은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결정적인 파급효과를 미친다.
글로벌 컨설팅기관들은 건설산업 같은 거대 전통산업을 혁신하게 되면 새롭게 얻을 수 있는 부가가치가 엄청나게 크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맥킨지에 따르면 글로벌 건설시장의 규모는 약 10조 달러다. 그런데 건설산업의 지난 20년간 연평균 생산성 증가율은 1%에 불과했다. 반면에 세계경제의 생산성은 2.8%, 제조업은 3.6%나 증가했다. 만약에 건설산업의 생산성 증가율이 세계경제 수준만큼만 된다면 연간 1조6000만 달러의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하다. 연간 1조6000만 달러라는 수치는 전 세계 인프라 소요액의 절반에 해당하고 글로벌 GDP의 2%에 달한다. 맥킨지는 규제개혁, 정부조달제도 혁신, 현장실행 개선, 새로운 디지털 기술의 활용, 인력 양성 등을 통해서 글로벌 건설산업의 생산성을 48∼60%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가차원의 건설산업 혁신전략도 많다. 영국은 2013년에 발표한 '건설 2025'를 통해 총생애주기비용을 33% 줄이고, 공사기간은 50% 단축하며, 온실가스 배출을 50%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2010년부터 해마다 2∼3%씩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건설생산성 로드맵을 실천하고 있다. 그 방안으로는 현장시공을 줄이고 공장제작 및 조립방식을 활성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일본도 아이콘스트럭션(i-Construction)이란 이름으로 2025년까지 정보통신기술(ICT)의 적극적인 활용을 통해 건설현장의 생산성을 20% 높이겠다는 혁신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개별 건설업체 차원, 정부 차원, 글로벌 차원에서 광범위하게 건설산업 혁신이 추진되고 있다. 그렇다면 건설산업 혁신의 본질이나 가치는 무엇일까? 대부분 더 싸게, 더 빨리, 더 나은 품질의 환경친화적인 시설물을 공급하겠다는 목표와 비전을 제시했다. 우리는 어떤가?
만약 우리나라의 대형 건설업체나 스타트업이 혁신을 통해 미국의 벡텔이나 카테라처럼 공사비를 절감하고, 공사기간을 단축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면 아마도 건설업계로부터 돌팔매질을 당할 것 같다. 오랫동안 건설업계는 주택업계만 제외하고, 저수익과 적자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적정공사비 확보가 다른 무엇보다 더 큰 숙원과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혁신'이란 이름이 붙은 우리 정부의 건설정책도 정작 그 내용은 외국에서 말하는 혁신의 본질이나 가치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한편에서는 스마트 건설기술의 도입과 활용을 주장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부실업체 퇴출이나 하도급 구조 및 불공정 관행 개선을 혁신방안으로 함께 버무려 놓고 있다.
만약 건설산업 혁신의 본질이나 가치는 도외시한 채 적폐 청산에만 치중한다면, 우리 건설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갈수록 하락하게 될 것이다. 적폐 청산과 혁신은 투트랙으로 달리 접근했으면 한다. 건설산업 혁신의 본질과 가치를 살릴 수 있는 정책이 앞으로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