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인문학]이외수·전영자부부의 졸혼 읽기…고령화사회 삶의 선택? 말장난?

2019-04-23 11:06

1976년 11월 이외수-전영자 커플의 결혼사진. 43년 전의 일이다. [사진 = KBS2 방송캡처]

 

[결혼 무렵의 이외수(왼쪽)와 전영자.]

출발이 가난했던 이외수-전영자 부부, [사진=KBS2 방송캡처]



 
작년 배우 백일섭(75)에 이어 작가 이외수(73)가 결혼 43년 만에 '졸혼(卒婚)'을 밝혔다. 부인 전영자(67)가 이 사실을 먼저 공표했다. 전영자는 미스코리아 강원 출신이며, 두 사람은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다. 전영자는 "작년 말 뇌졸중으로 쓰러져 한 달간 입원을 했는데, 그때 더 늙기 전에 집을 나와 뭔가 다른 것을 해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병원에서 퇴원한 뒤 그녀는 남편이 있는 화천에 가지 않고 춘천 병원 근처에 집을 얻었다. 따로 살기로 한 것이다. 혼자 법원을 찾아 이혼 서류를 제출했다. 이외수는 이혼을 원치 않았고 나중에 졸혼을 제안했다. 두 사람은 변호사를 대동하고 졸혼에 합의한다. 두 사람은 부부싸움이 잦았고, 몇 차례 이혼 고비를 넘었다. 하지만 전영자는 남편에 대해서 "내 인생의 스승이 이외수이며 존경하는 마음은 변함없다"고 했다.

졸혼은 무엇인가. 법적 용어가 아닌 이 말은 이혼처럼 혼인관계의 청산이 아니고, 별거하며 상대방의 삶에 관여하지 않으며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형식이라 할 수 있다. 이혼과 졸혼의 핵심적인 차이는, 이혼이 대개 부부간의 감정 파탄을 전제하는 반면 졸혼은 부부의 상호존중감이 유지되는 상태라는 점이다. 특히 졸혼을 선언하는 이들은 두 사람 간에 관계감정이 정상적으로 유지되고 있으며 부부간의 사랑이 여전함을 강조하는 경우도 많다. 서로의 삶을 존중하는 태도에서 졸혼을 택했다는 논리다.
 

[스기야마 유미코]

2004년 일본작가 스기야마 유미코는 '졸혼을 권함'이라는 책을 써서 시대적인 공명을 불러일으켰다. 일본어로는 쏘스콘이라 한다. 쏘스콘은 우리나라로 건너와 일종의 '졸혼 붐'을 만든다. 백년해로의 부부관이 강한 나라, 말년의 기처(棄妻)가 죄악처럼 여겨지는 사회에서 이런 현상이 가능해진 까닭은 여성의 사회활동이 늘어나는 추세와 자식들을 출가시키고 난 다음의 여생이 너무 많이 남는 고령화사회의 급격한 진행 때문이다.

졸혼은 이 나라 '결혼제도'의 유효기간에 대해 심문한다. 부부간의 의무감이나 책임감 같은 도덕률이 사회양상의 변모에 여전히 적합한가. 결혼이 '평생'을 담보로 하는 결합행위가 아니라, 적당한 기간이 있는 잠정적 결합일 수는 없는가. 학교의 졸업이 가능한 까닭은 정규과정의 '기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듯, 결혼 또한 기간을 '이수'하면 결혼 상대방과의 충분한 합의와 공감 과정을 통해 졸혼을 할 수 있다는 입장들이 늘어난 셈이다. 노인의 삶이 '인생의 잔여분'처럼 여겨졌던 전시대적 사고를 넘어, 그 노경(老境) 또한 주체성을 지니고 스스로 즐길 수 있는 삶의 가치있는 부분이라고 여기는 태도 또한 확산됐다.

 

[사진=이외수 작가 인스타그램]



졸혼이 축복인지, 인간관계의 삭막함과 가족의식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인지, 아직은 진단하기 어렵다. 이외수 졸혼 기사에 달린 격한 찬반 댓글이 그것을 말해준다. 한쪽에서는 새로운 관계학(學)의 탄생이라고 말하지만, 다른 쪽에선 '말장난'이거나 '위자료 회피 수단'에 불과하다고 폄하한다. 노년의 생계 문제가 완전하게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졸혼을 수용하는 일은 고령자와 가족의 불안을 가중시킬 수도 있다. 늘어난 인생의 나머지를 이전과 같이 비교적 안정적인 방식으로 살 것인가, 새롭고 다르게 살 것인가. 많은 이들이 이미 가슴속에 담고 있는 질문을, 이외수 부부가 환기시킨 셈이다.

                                         이상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