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의 시샘]훙커우공원 풀밟기 - 윤봉길

2019-04-22 17:36

[김구와 윤봉길의 시계]




슬프고 슬픈 풀꽃이여
내년에 봄빛 이르거든 왕손과 더불어 오세
푸르고 푸른 풀꽃이여
내년에 봄빛 이르거든 고려강산에도 다녀가오
정겨운 풀꽃이여 올해 4월29일에
폭탄 던진 한 소리로 맹세하세
                          
윤봉길은 충남 예산군 덕산 목바리마을 사람으로 시인이었다. 오치서숙이란 서당에서 치른 시짓기 대회에서 장원을 하기도 했다. 거사 하루전인 4월 28일 의거 장소를 사전 답사하며 24세 시인이 남긴 '훙커우 공원 답청(踏靑, 풀밟기)'이란 시다.

1932년 4월 29일 오전 10시. 윤봉길은 불쑥 자신의 시계를 꺼내며 말했다. "이건 6원을 주고 산 것입니다. 선생님 시계는 2원짜리이니 저에게 주십시오." "어찌 좋은 시계를 날 주는가?" 백범 김구가 손을 내젓자, 윤봉길은 웃으며 말한다. "제 시계는 이제 한 시간밖에 소용이 없습니다." 두 사람은 눈을 서로 마주 본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윤봉길이 건넨 시계를 백범이 받고 자신의 것을 내준다. 자신의 죽음을 작정한 사람이 그 뒤 세상에 남을 사람에게 건네는 '자신의 시간'. 이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윤봉길은 4월 26일 임시정부의 한인애국단에 가입한다. 자신이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행할 일이 개인테러가 아니라 국가의 행위인 군인전투로 규정되고자 함이었다. 가입선서식을 마친 뒤 거사에 쓰기 위해 시계를 샀다. 윤봉길은 백범의 낡은 시계를 보면서, 이 나라의 남은 체통을 꾸려가는 그의 남루가 안타깝게 느껴졌을까. 시계를 바꾸자는 그 제안은, 그가 눈 감은 뒤에 여전히 흐를 시간에 대한 간절한 열망을 담은 것인지도 모른다. 김구는 저격으로 맞이한 임종의 순간까지 윤봉길 시계를 품고 있었다.
 
저 시는 '내일'과 '내년'을 말하고 있다. 그에게 그 시간은 무엇이었을까. 나라를 위해 내일 죽을 청년이 바라보았던 풀꽃은 어떤 희망이었을까. 훙커우공원 풀꽃에게 말한 그 시간들의 빛과 꿈을, 우리는 제대로 받아 살고 있는가.

                                       이빈섬 (시인·이상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