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가 세상만사 결정, 민주주의 위배 아닌가

2019-04-17 18:10

김낭기 고문[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낙태죄 위헌 결정으로 위상 다시 한번 과시
현 정부 들어 재판관 8명 교체--'코드 사법' 우려



“연방대법원에서 가장 중요한 숫자는 ‘5’이다. 5표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대법관을 지낸 윌리엄 브레넌이 평소 재판 연구관들에게 즐겨 하던 말이라고 한다. 미국 연방대법관은 9명이다. 이 가운데 5명만 동의하면 의회가 만든 법이든, 대통령이 내린 행정명령이든, 주(州) 대법원이 내린 판결이든, 수사 기관들이 사용한 수사 방법이든 무엇이든 위헌 결정을 내려 무효화할 수 있다. 때로는 합헌 결정을 내려 국가적 논란을 일거에 끝내기도 한다. 그래서 ‘5’라는 숫자는 연방대법원을 넘어 미국 사회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숫자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 우리의 헌법재판소이다. 우리도 헌법재판관은 9명이지만, 위헌 결정을 내리려면 6명 이상이 동의해야 한다. 우리 헌법재판소에서 가장 중요한 숫자는 ‘6’인 셈이다. 이 6이라는 숫자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헌법재판소를 넘어 우리 사회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숫자가 돼가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위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11일 나온 낙태죄 위헌 선언도 헌재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의 하나이다. 헌재는 재판관 7명의 의견으로 형법의 낙태죄 처벌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국회가 내년 12월 31일까지 이 조항을 고치지 않으면 낙태죄는 2021년 1월 1일부터 무효가 된다.

1953년 도입된 지 66년 만에 낙태죄를 폐지한 곳이 국회가 아니라 헌법재판소라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우리는 법의 제정이나 개정, 폐지는 국회의 고유 권한이라고 초등학교 때부터 배웠다. 국회는 국민이 선거를 통해 권력을 위임한, 그래서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이라고 배웠다. 이게 민주주의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 국회가 아니라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무효를 선언한 것이다. 낙태죄뿐이 아니다. 간통죄를 폐지한 곳도,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린 곳도,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으로 파면한 곳도 헌법재판소이다. 국회의 날치기 통과, 동성동본 혼인 금지, 공무원 시험 나이 제한, 호주제, 자녀는 무조건 아버지의 성(姓)과 본(本)을 따라야 한다는 부성( 父姓)주의에도 위헌 또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하나같이 국민 개개인과 사회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들이다.

◆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국회 제정 법률 위헌 결정

이쯤되면 대한민국은 국회가 아니라 헌법재판소가 통치하는 나라라고 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의 법학계, 법조계에선 ‘사법 통치(juristocracy)’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다. 여기서 사법이란 헌법재판을 전담하는 기관을 말한다. 그 기관이 미국처럼 연방대법원일 수도 있고 우리처럼 대법원과는 별도의 기관인 헌법재판소일 수도 있다. 독일, 이탈리아도 우리와 같은 헌법재판소를 두고 있다. 사법 통치는 위헌 여부 심사를 하는 헌법재판기관이 국회를 대신해 국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에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결정을 내리는 현상을 말한다. 헌법재판기관이 그 사회가 따라야 할 규범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사법 통치라고 하는 것이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헌법재판기관을 둔 나라는 미국과 서유럽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헌법재판기관에 의한 사법 통치는 전세계적인 현상이 됐다. ‘사법 권력의 지구적 팽창’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헌법재판 제도를 둔 나라가 100여개국에 달한다. 아프리카의 모잠비크(1990년)와 잠비아(1995년), 아시아의 몽골(1992년)과 네팔(1990년), 공산 독재국가였던 러시아(1993년)까지 헌법재판제도를 도입했다. 옛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헌법재판관은 국민이 선출한 사람들이 아니다. 국회의원만이 국민이 선출한 국민 대표자이다. 그래서 국회와 비교해 헌법재판소를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고 한다. 민주주의에서 국회든 대통령이든 권력 선출의 원리는 다수결주의이다. 다수의 지지를 받아야 당선된다.  민주주의 사회는 이렇게 선거로 드러난 다수파가 지배하는 사회이다. 다수결주의는 민주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가치이자 작동 원리인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국회가 만든 법을 무효라고 선언하는 것은 이 다수결주의에 정면으로 어긋난다.

바로 여기서 중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다수에 의해 선출된’ 권력인 국회가 만든 법을 무효라고 선언하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미국과 서유럽에선 오래 전부터  학계의 주요 연구 대상이다. 흔히 헌법재판의 ‘반(反) 다수결주의적 난제(countermajoritarian difficulty)’라고 불린다. 이에 대해 많은 연구 결과들이 공통적으로 내놓은 대답은 두 가지다. 하나는 ‘다수파 권력 견제론’이다. 또 하나는 ‘숙의 민주주의론’이다. 

◆다수파 권력 견제-숙의 민주주의 실현이 헌재 존립 기반

다수파 권력 견제론은 헌법재판소가 민주주의를 다수의 독재나 횡포로부터 보호한다는 관점이다. 다수결 만능주의가 되면 소수파는 자기들의 이익과 욕구를 대변할 통로를 갖지 못하게 된다. 그 결과 소수파의 이익과 욕구는 다수파의 이익과 욕구 속에 묻히게 된다. 헌법재판은 국회 입법 기능을 감시함으로써 사회가 다수파의 독재나 횡포, 이른바 '민주주의의 과잉'에 빠질 위험을 막는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헌법재판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키고  살린다는 게 다수파 권력 견제론의 핵심이다.

숙의 민주주의론은 절차적 민주주의보다 실질적 민주주의를 더 중시하는 관점이다. 민주주의는 숙고와 토론이라는 절차를 통해 결론에 이르는 제도이다. 그러나 민주적 절차를 거쳐 내린 결론이라고 해서 인간의 존엄성이나 행복 추구권 같은 민주주의의 실질적 가치를 반드시 증진시킨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결과가 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국회의원들이 어떤 문제를 심의하고 토론할 때 당파적 이해관계나 포퓰리즘의 압력에서 벗어나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살펴야 할 중요한 점들을 시간에 쫓기지 않고 충분히 심사숙고해서 하기란 더욱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에 비해 헌법재판은 그 과정 자체가  숙의와 토론의 연속이다. 일반적으로 재판관들은 평소부터 재판 과정을 통해 숙의와 토론의 경험을 쌓고 그런 관행에 익숙해 있다. 재판관들은 정치인보다 당파적 영향이나 포퓰리즘의 압력에서도 자유로운 위치에 있다. 따라서 헌법재판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숙의와 토론 과정이고 그 결과 민주주의의 실질적 가치를 도출해내는 데도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 숙의 민주주의론의 핵심이다.

다수파 권력 견제론은 다른 말로 하면 집권 세력과 그 지지 세력 견제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느 나라나 집권 세력과 그 지지 세력은 다수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헌법재판소가 다수파 권력 견제를 제대로 할 수 있으려면 집권 세력과 그 지지 세력 견제에 충실해야 한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정권의 노선에 모든 것을 맞추는 이른바 ‘코드 사법’에서 벗어나야 한다. 헌법재판이 진정한 의미의 숙의 민주주의가 될 수 있으려면 재판관들의 자질과 능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숙의와 토론에 익숙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폭넓은 안목과 철학을 갖춰야 한다. 특정 정파적 이념의 추종자여서도 안 된다. 

◆'이념형' 진보 아닌 '실용형' 진보 돼야

헌법재판관 9명 중 8명은 문재인 정부 들어  바뀌었거나 곧 바뀐다. 진보 색채가 더욱 뚜렷해질 것이다. 문 대통령이 지명한 유남석 헌재소장부터가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 연구회’ 창립 멤버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명한 재판관 2명이 4월 18일 퇴임하고, 문 대통령이 지명한 문형배, 이미선 후보자가 재판관에 임명되면 재판관 9명 중 진보 성향 재판관은 6명 이상이 된다. 국가보안법, 최저임금제, 주 52시간 근무제, 동성애, 사형제 같은 사안에서 집권 세력과 그 지지 세력의 코드에 맞는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자칫하면 이념 편향 판결 시비로 시끄러워질 것이다.

미국 얼 워런(Earl Warren) 연방대법원장(1953~1969년)은 공화당 출신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임명했다. 얼 워런 대법원장 자신도 공화당 소속으로 캘리포니아주지사를 두 번 지냈다. 1948년 대선에서는 낙선하긴 했지만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그만큼 정통 공화당 맨이었다.

그런데 그가 대법원장이 되자 연방대법원은 공화당의 전통적 가치와는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판결을 많이 내렸다. 사회 질서 유지보다 개인의 인권을 강조하는 판결이었다. 피의자를 체포할 때 묵비권과 변호인 선임권을 알려야 한다는 ‘미란다 원칙’, 돈 없는 형사 피고인은 국선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기드온 판결’이 대표적 예이다. “공립학교에서의 흑백 분리는 분리 자체가 평등 원칙에 위배돼 위헌”이라고 판결해 그때까지 통해 오던 ‘분리하되 평등’ 원칙을 깨뜨렸다. 여성의 피임약 구입 금지는 위헌이라는 판결도 내렸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얼 워런을 대법원장에 임명하면서 “오늘날 연방대법원이 필요로 하는 가치를 대변할 인물”이라고 추켜세웠다. 그러나 얼 워런의 대법원이 진보적 판결을 잇따라 내리자 “그를 대법원장에 임명한 것은 내 인생 최대의 실수”라고 했다.

얼 워런은 공화당 정권의 보수적 가치를 추종하는 ‘코드 사법’에 안주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보적 가치를 대변했다. 그러나 그 진보는 ‘진영(陣營) 정치’라는 세력 간 대결에서 어느 한쪽 세력을 추종하는 이념형 진보가 아니었다. 일상 생활에서 개인의 인권과 존엄성이라는 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실용형 진보였다. 얼 워런이 지금도 대법원장으로 존경받는 게 이 때문이다. 다수파인 집권 세력과 그 지지 세력의 코드를 무조건 따르지 않음으로써 다수파 견제에 충실했고, 그 시대에 가장 필요한 민주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숙의와 토론을 통해  발견해 냄으로써  숙의 민주주의의 이상을 꽃피웠다. 머지않아 진보 성향 일색으로 재판관이 구성될 헌법재판소에 주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