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화합과 상생, 판소리 정치
2019-03-21 14:48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드라.” 이맘때면 듣게 되는 ‘사철가’ 첫 대목이다. 요즘 국회는 봄은 왔건만 황량하다. 어렵게 문을 연 3월 국회조차 살얼음판이다. 상생과 협치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로지 상대를 짓밟아 이기겠다는 전의(戰意)만 팽팽하다. 지난 주말, 한양대학교 갈등문제연구소 전주·군산 워크숍에서 오랜만에 판소리 공연을 접했다. 공연 내내 상생을 떠올렸다. 우리 정치가 판소리 철학을 이해한다면 지금보다는 한결 성숙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공연에 앞서 젊은 소리꾼은 추임새를 가르쳤다. 얼쑤! 좋다! 지화자! 잘 한다! 그러면서 중간 중간 추임새를 당부했다. 추임새는 소리꾼이 창(唱)을 할 때 흥을 돋우는 양념이다. 신명을 불러내는 묘약이다. 우리 판소리는 소리꾼과 관객이 함께 만든다. 소리꾼만 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 관객도 함께한다. 공연 중에는 절대 침묵해야 하는 서양 공연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오히려 판소리는 시끌벅적해야 제 맛이다. 흥이 오르면 관객들은 잘한다! 얼씨구! 좋지! 하며 소리꾼을 치켜세운다. 우리 정치도 이래야 한다.
국회 원내대표 연설은 국민을 상대로 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책방향을 알리고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자리다. 여당이라면 정책을 설명하고 국민들로부터 이해를 구해야 한다. 때로는 야당을 설득해 협조를 이끌어내야 한다. 야당은 비판과 견제를 넘어 대안을 제시할 책무가 있다. 정부 정책이 옳다면 힘을 실어주되, 잘못됐다면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러나 합리적인 대안과 생산적인 토론, 건강한 견제는 실종됐다. 대신 편협한 일방통행과 무조건적인 비판, 맹목적인 비난뿐이다. 늑장 국회가 희망을 주기는커녕 걱정만 안기는 이유다.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수석 대변인”이라는 말로 불을 질렀다. 외신 보도를 인용했을 뿐이라며 피해갔지만 의도를 알기에 궁색하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대통령에 대한 의도적인 낙인찍기다. 한국당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사사건건 발목을 잡았다. 비핵화와 평화 정착에 훼방을 놓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판문점 회담 비준 동의 반대, 북미회담 성공 결의안 채택 거부까지 헤아릴 수 없다. 게다가 국민이 뽑은 지도자를 이런 식으로 욕보이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국민들 눈에는 민주당 대응도 사려 깊지 못하며 어설프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나 원내대표 연설을 중단시키고 문희상 의장에게 거칠게 항의했다. 이해찬 대표는 ‘국가원수모독죄’를 운운하며 국회 윤리위원회 제소를 강행했다. 또 이해식 대변인은 블룸버그 통신 기자 실명을 거론하며 “외신이란 외피를 쓴 매국에 가까운 행태”라고 공격했다. 88년 폐지된 ‘국가모독죄’는 민주화 결과물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했다는 이해찬 대표와 민주당 반응은 납득하기 어렵다. 협상 파트너 연설을 가로막고, 또 윤리위에 제소하면서 어떻게 협치 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판소리 정치를 기대한다. 상대 당일지라도 옳은 주장을 하면 좋다! 잘 한다! 얼씨구! 하며 추임새를 넣는 상생 정치다. 민주당 원내대표 연설에 한국당 의원들이 박수치고, 한국당 대정부 질문에 대해 민주당 의원들이 호응하는 그런 정치를 보고 싶다. 독과점에 기반한 적대 정치에 국민들은 신물이 나 있다. 시간을 허비하기엔 국제정세는 긴박하고 민생과 일자리도 다급하다. 소모적인 정쟁이 아닌 협치로 국민들에게 답할 때다. 추임새를 넣는 상생 정치가 대안이다.
“어화 세상 벗님네들. 이네 한 말 들어보소. 인생이 모두가 백년을 산다고 해도 병든 날과 잠든 날, 걱정 근심 다 제하면 단 사십도 못사는 인생.” 사철가 대목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날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국민들도 더 이상 인내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착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