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식 칼럼] 소록도를 생각하며 쿨리온섬을 걷다
2019-03-2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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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식 교수]
한달 전에 한센병 문제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과 함께 필리핀 팔라완에 있는 작은 섬 쿨리온
(Culion)에 다녀왔다. 이 섬에 있었던 한센병 요양소의 역사를 공부하고, 또 여기에 남아 있는 자료들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작업을 둘러보기 위한 것이었다. 마닐라, 부수앙가, 코론을 거치는 힘든 여정을 코발트빛 아름다운 해안풍경이 보상해 주었다.
쿨리온은 20세기 한센병의 역사에서 하와이 몰로카이 요양소, 도쿄 전생원, 소록도 갱생원, 말레이시아 숭가이 불로 요양소와 더불어 세계적으로 중요한 장소에 속한다. 19세기 후반에 필리핀에서는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전쟁이 시작되었고, 미국이 이에 개입하여 미·스페인 전쟁으로 발전했는데, 결국 1898년 12월, 파리조약이 맺어지면서 미국이 스페인에 2000만 달러를 지불하고 필리핀의 지배권을 인수하였다. 필리핀이 미국의 식민지가 된 후, 보건당국은 1901년, 당시의 세계적 추세에 따라 쿨리온을 한센병 환자 격리의 섬으로 지정하였다. 이에 따라 쿨리온은 1906년 세부에서 이송된 환자 370명을 수용하면서 한센병 요양소로 출발하였다. 1907년에는 한센병 환자 강제 격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이후 필리핀 각지에서 한센병 환자들이 이송되어 급속하게 증가했다. 그리하여 1935년에는 무려 6900여명을 수용한 세계 최대의 한센 요양소가 되었다.
쿨리온 요양소는 1980년대에 공식적으로 폐지되고 1992년 일반 마을로 전환되었다. 1998년에는 이 마을에 대한 행정권이 필리핀 보건성에서 지방자치단체로 이관되었다. 다만, 2006년에야 비로소 이 섬이 세계보건기구에 의해 ‘한센병 자유 지역’으로 선포되었다. 필리핀 유네스코위원회는 쿨리온 요양소의 문서자료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중간 단계로 2018년 5월, 아시아·태평양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하였고, 쿨리온 역사자료관은 이를 보관하는 기관으로 지정되었다.
쿨리온 마을의 가장 높은 언덕에는 가톨릭 성당이 자리하고 있고, 마을 중심인 작은 광장에는 이 마을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세 개의 기념비가 있다. 첫째는 19세기까지의 스페인 지배를 상징하는 신부, 둘째는 한센병 구제에 노력했던 레오나드 우드 총독, 셋째는 필리핀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호세 리잘의 기념비이다. 마을 주변 해안에는 동남아시아의 빈곤과 열악한 위생을 상징하는 수상가옥들이 있는데, 얼마 전에 화재로 인하여 불에 타버린 흔적이 복구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었다.
가장 유감스러운 것은 쿨리온 역사자료관에는 1906년부터 수용된 환자들의 명단을 비롯하여 각종 자료들이 그대로 남아 있지만, 소록도에는 일제강점기에 수용된 환자들의 명단을 포함하여 각종 1차 자료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 시기의 문서자료 멸실의 책임을 누구 탓으로 돌리기 어려울 만큼 소록도가 역사적 격동의 현장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역사적 유산의 보존과 활용의 측면에서 보면 너무 안타까운 것이 사실이다. 이 차이가 소록도의 세계 유산 등재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 시기의 자료만 보면, 미국의 윌슨 선교사가 운영했던 여수 애양원이 ‘국립’ 소록도보다 더 풍부하다.
쿨리온 답사를 하면서 그것이 비록 어둡고 고통스러운 경험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잘 보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말레이시아 숭가이 요양소도 세계문화유산 등재신청을 하였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한 시대의 어두움이 다음 시대를 비추는 빛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