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르포] 손혜원 부동산 논란 한 달…“아따~사람들이 늘었당께”

2019-02-18 00:00
16일 토요일 목포 구·신도심 르포
창성장에 모인 관광객…‘하하호호’

16일 오후 찾은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에 있는 창성장 건물. [사진=장은영 기자]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무소속 손혜원 의원의 부동산 투기 논란이 발생한 지난달 15일 이후 한 달, 목포를 찾았다. 토요일인 16일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종착역인 목포역에 오전 10시 50분께 도착했다. 역에서 10여분 걸어가자 근대역사문화공간 입구가 나왔다. 목포 주민들마저 떠나버리고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던 바로 그 구도심이다.

이날은 약한 눈발이 날렸고, 날씨도 꽤 쌀쌀해 관광하기 좋은 날은 아니었다. 낮 최고기온은 영상 3도였지만, 바닷가 찬바람에 훨씬 더 춥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근대역사문화공간 일대에서는 적지 않은 관광객들을 볼 수 있었다. 여기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손 의원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가장 붐비는 곳은 단연 ‘창성장’이었다. 손 의원 조카가 공동명의로 운영하는 창성장은 적산가옥(일제 패망 후 정부에 귀속됐다 불하된 옛 일본인 집)을 리모델링한 게스트하우스다.

창성장 관계자에게 기자 신분을 밝히고 ‘손 의원 논란 이후 사람들이 많이 오느냐’고 묻자 “그냥 둘러보는 건 괜찮지만 취재에는 응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기자가 아닌 '방문객'으로서 이곳을 둘러 보는 데 별다른 제약은 없었다. 

마침 이날은 정월대보름(19일)을 앞두고 창성장에서 동네 주민들에게 떡을 나눠주고 있었다. 동네 주민뿐 아니라 관광객도 자유롭게 들어와서 건물 내부를 구경하고 떡을 먹는 등 화기애애한, 마치 '사랑방'과 같은 분위기였다.

창성장 바로 앞에서 붕어빵과 어묵 포장마차를 하고 있는 이다연씨(29)는 손 의원의 부동산 논란 이후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졌다고 귀띔했다. 그도 논란 이후 이 장소에서 장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씨는 “아침 9시부터 관광버스를 타고 오는 사람들도 있고, 사람이 많아져서 차량 안내를 하는 분도 있다”면서 “예전에는 택시 기사님도 이곳을 잘 모를 정도였는데, 이제는 창성장이라고 하면 다들 안다”고 말했다.

창성장 근처에 사람들이 몰리는 사실을 방증하듯 창성장 앞에는, 목포 시내에서도 볼 수 없었던 전단지를 나눠주는 이도 있었다.

목포문화원(등록문화재 제29호·구 호남은행) 앞에서 만난 목포 시민 김남균씨(52) 역시 “(손 의원 논란 이후) 관광객이 늘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손혜원 거리’라고 표현하던데 그건 맞지 않다”며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 가장 번성했던 곳으로 목포 주민들이 만든 것”이라고 했다.

근처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경옥씨(53)는 “논란 이후 관광객들이 많이 늘었다. 매우 감사한 일”이라며 “투기 여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동네가 살아났다. 이전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생긴 것”이라고 했다.

손 의원 논란 이후 늘어난 관광객을 안내하기 위해 임시로 설치된 목포임시관광안내소에서 관광해설사로 일하고 있는 박영안씨(73)는 “관광객이 많이 와서 참 좋다”고 말했다.

박씨는 “손 의원 투기 논란은 그분들(검찰) 판단에 맡기고, 저는 해설사로서 목포에 이런 볼거리·먹거리가 있다는 것을 홍보할 수 있어서 영광”이라며 “목포는 이제 시작이다. 보존할 것은 보존하고 개발할 것은 개발해야 한다”고 했다.

옛 일본 영사관 건물에서 운영되고 있는 근대역사관 본관에는 이날 오전 11시 20분 기준으로 138명의 관광객이 입장했다. 매표소 직원에 따르면 주말 평균 1000명 정도가 방문한다고 한다. 

근대역사문화공간 일대에서 만난 김영근씨(60)는 “아침에 이 동네 한 바퀴를 돌았는데, 기계 소리도 들린다. 사람들이 이렇게 지나다니는데 이런 게 사람 사는 것”이라며 “건물을 한층 더 올리는 게 아니라 이대로 잘 먹고 잘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놀러 왔다는 한 50대 부부는 “방송에서 하도 목포, 목포 하니깐 한번 와봤다”면서 “와서 보니 생각보다 아무것도 없는 동네다. 이 동네에 투기를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경주 ‘황리단길’처럼 잘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선내화 목포공장 터가 있는 목포시 온금동 다순구미로. [사진=장은영 기자]


뒤이어 조선내화 목포공장 터가 있는 온금동 다순구미로로 이동했다. 마주 보고 있는 카페 ‘달몬트’와 ‘카페 치노’ 사이로 들어가면 내화(耐火·높은 온도에서 녹지 않음) 벽돌을 생산하던 조선내화 공장 건물들이 나온다. 뼈대만 남은 건물들은 음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관광객은커녕 동네 주민도 마주치기 어려웠다.

1938년 일본이 전쟁에 대비해 세운 조선내화 목포공장은 1974년 이후 공장을 포항·광양으로 옮기면서 1994년 가동을 멈췄다. 목포시는 2009년 서산·온금지구 재개발 사업을 해왔으나 문화재청이 이곳을 2017년 문화재로 지정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손 의원은 공장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이곳에 고층 아파트를 지으면 유달산 경관을 해치는 것은 물론 근대 문화 유산을 잃는다고 본 것이다. 더군다나 이 동네는 인구도 줄고 있다.

목포시 인구는 올해 1월 말 기준으로 23만1890명이다. 그 가운데 서산·온금지구가 있는 유달동은 5000여명이 살고 있다. 근대역사문화공간이 있는 만호동의 주민은 3345명이다. 반면 신도심에 속하는 하당동은 1만1672명, 용해동은 1만8102명의 주민이 거주한다. 신도심 곳곳에는 아파트 건설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그렇다면 신도심 주민들은 이번 손 의원 부동산 논란을 어떻게 생각할까. 손 의원 부동산 매입으로 직접적인 영향은 없지만 목포에 사람이 늘었다는 점은 다들 높이 샀다.

목포 석현동 청호시장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고모씨(51)는 “우리 어렸을 때 신도심이 생기기 전에는 구도심이 번화가였는데 지금은 완전히 침체됐다”면서 “손 의원 덕분에 구도심에 사람이 많이 오면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건어물 가게 주인 손사규씨(70)는 “나도 (논란) 전에는 구도심에 관심이 없었는데 자꾸 뉴스에 나오니깐 가보고 싶다”면서 “목포 사람들은 손 의원에 대해 ‘잘 했다’고 한다. 목포를 이렇게 알려준 사람이 어디 있냐”고 강조했다.

또 손씨는 “투기는 아니다”며 “서울에서는 건물이 한 달에 1억씩 오르는데 여기는 10년을 둬도 1000만원 오를까 말까 한다. 투기를 하려면 서울에 하지 연고도 아닌 여기에 뭣하러 하느냐. 손 의원이 목포에 온 것은 잘한 일”이라고 했다.

떡집 주인 박하자씨(60)는 “투기인지 아닌지 알려고도 안 한다”며 “구도심이 발전되면 좋겠다. 거기에는 사람이 너무 없다. 우리 마음으로는 구도심이 발전해 관광지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씨의 남편도 온금동 출신이다. 박씨는 “남편이 거기서 살았지만 그 동네에서는 힘들어서 못 산다”고 하소연했다.

목포 하면 떠오르는 가요가 있다. 일제 치하 1935년에 목포 출신 가수 이난영이 불러 크게 히트한 '목포의 눈물'이다. ‘목포의 눈물’은 이별의 아픔과 서러움을 그렸다. 일제강점기 반짝 호황을 이루다 계속해서 침체를 거듭해온 목포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이날 이씨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삼학도의 ‘난영공원’도 들렀다. 창성장과는 불과 1.5㎞ 떨어져 있고, 걸어서는 20여분 거리다. 아무도 없는 공원, 스피커에선 끊임없이 ‘목포의 눈물’이 흘러나왔다. 조금 전 다녀온 창성장에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떠올랐다. 설움을 받던 도시 목포가 손 의원 논란 이후 활기를 되찾는 게 아닐까.

다시 역으로 돌아가기 위해 탄 택시의 50대 중년 남성 기사는 “이 도시는 진짜 죽어있었다”며 담담히 말했다.

'손혜원 파문'에 대한 사법적 판단, 정치적 논란은 머지않아 마무리될 것이다. 그와 무관하게 목포의 눈물을 웃음으로 바꾸기 위해 정치와 언론은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