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춘래불사춘’은 사실 슬픈 이야기입니다

2019-01-27 14:21

[사진 = 현상철 기자]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앞에는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라는 첫귀가 있다. ‘오랑캐 땅에는 풀과 꽃이 없다’는 뜻이다. 풀과 꽃이 없으니, 봄이 와도 온 것 같지 않은 건 당연하다. 당나라 시인 동방규가 중국 고대 4대 미녀 중 한명인 왕소군(王昭君)을 두고 쓴 시 소군원(昭君怨)에 나온다.

왕소군은 당시 한나라의 화친정책으로 흉노 왕에게 강제로 시집을 가야만 했다. 미모 때문에 한나라 원제가 깜짝 놀라 왕소군을 보내기로 결정한 신하를 죽이고 재산까지 몰수했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과 결혼한 흉노왕이 죽은 후에도 본국에 돌아오지 못했다. 오히려 왕의 본처 자식이자 다음 후계자인 ‘배 다른 아들’과 또 한 번 결혼해야 했던 불운한 여성으로 기억된다.

풀과 꽃이 없는 북방에 있어서 봄을 볼 수 없고, 중원의 따뜻한 봄도 느낄 수 없다는 안타까움을 표현한 게 ‘춘래불사춘’이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立春)은 올해 설 바로 전날(2월 4일)이다. 국민은 이번 명절 때 봄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을까.

정부와 정치권은 올해 설 민생 근심을 덜어준다며 작년보다 6조원 늘린 35조2000억원짜리 대책을 내놨다. 설 대책 최초로 예비비와 특별교부세를 활용하고, 상품권도 많이 팔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 대출을 많이 해주고, 노인일자리를 당겨 공급한다고 한다. 설 명절 때 소비여력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시작된 고용한파 속에 있는 청년들과 경제허리인 40대가, 최저임금 때문에 곡소리를 내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서울에서 내 집 한 채를 마련하고 싶다는 꿈을 이제 막 이룬 부모세대가, 쥐꼬리 월급에 질 낮은 일을 하면서 세뱃돈을 겨우 마련한 노인들이 설 때 한자리에 앉아 봄이 왔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풀과 꽃이 나지 않는 춥고 마른 땅에 물을 뿌린다고 싹이 돋지 않는다.

작년보다 돈을 얼마나 더 많이 투입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적든 많든 상관없다. 근본적인 문제를 꿰뚫지 못하는 헛발질이 아쉬울 뿐이다. 지금 ‘시선’을 서민경제에 두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왕소군이 살던, 당시 한나라의 화친정책은 잊혀졌다. 오직 화친정책의 희생양이 된 불운한 한 여성을 안타까워한 글귀만 기억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