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의 ‘한진칼’ 주주권 행사 예고에 우려 커지는 재계

2019-01-16 16:07
유사사례 이어지면 '연금 사회주의' 기조로… "위헌 소지도"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16일 오전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올해 첫 국민연금 기금운용회의를 마치고 나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최윤신 기자]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한진칼과 대한항공에 대해 주주권을 행사하기로 결정하면서 재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총수 일가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에 기대어 국민연금의 경영개입 사례가 만들어질 경우 곧 후속 유사사례로 이어져 ‘연금 사회주의’ 기조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 이와 함께 민간기업에 대한 경영권 참여가 국민연금의 본래 목적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16일 국민연금은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올해 첫 기금운용회의를 열고 한진칼과 대한항공에 대한 주주건을 행사하기로 결정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장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일부에선 해당기업 경영진과 대화의 과정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를 통해 다양한 방안을 점검해야 한다는 데 전반적인 의견이 모였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한진그룹은 물론 재계 전반이 긴장하고 있다. 한진칼을 시작으로 국민연금이 다른 기업에까지 무차별적인 경영간섭에 나설 경우 자칫 연금 사회주의 기조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한진그룹이다. 당장 오는 3월 있을 대한항공의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이 불발될 가능성도 있다. 또 사모펀드인 KCGI가 2대 주주로 있는 한진칼은 국민연금이 가세할 경우 감사직을 놓고 표대결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이어진다. 기관투자자 및 소액주주에게 영향력이 큰 국민연금이 KCGI와 뜻을 같이할 경우 대한항공으로서는 표대결에서 밀릴 공산이 커진다.

박 장관은 “국민연금이 사모펀드인 KCGI와 연대를 하기는 사실상 어렵다”면서 “의견에 영향을 받을 순 있지만 독립적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현재의 상황에서 주주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KCGI 쪽으로 표를 몰아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한진그룹뿐만 아니라 재계 전반이 이번 국민연금의 결정에 대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날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주주권 행사 안건에 대해 위원들 중 한국경영자총연합회와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계가 추천한 인사들은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이들은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소득보장이라는 근본취지에 맞게 운영돼야 하기 때문에 과도한 경영권 개입이 민간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는 만큼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뜻에서 반대 의견을 냈다”고 설명했다.

위원 추천권이 없는 전국경제인연합회도 마찬가지다. 

전경련 관계자는 “한진그룹 오너일가의 잘못에 대해선 법적 처벌이 이뤄져야 하는 것이고, 주주권 행사의 문제는 별개의 사안으로 봐야 한다”며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해 경영에 개입한다고 해서 무조건 성과가 좋아지리란 법은 없기 때문에 이번 결정이 국민의 노후자금을 책임져야 하는 본래의 목적과 일치한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역시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이 결여된 국민연금의 경영 참여는 문제가 크다고 입을 모았다.

황인학 한국기업법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이 도입한 스튜어드십 코드는 공적연금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국민연금의 최고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이 복지부 장관이고 당연직 위원 4명이 주요 부처 차관인 상황에서 독립성 확보 방안 없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활용한다면 국민연금의 정치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국민연금의 경영 참여는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민연금법 제102조 2항에서 국민연금이 최대수익을 획득하도록 운영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사회적 가치를 위해 손실을 야기할 수 있는 개입을 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