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 파탄잘리의 요가수트라] 무표(無表)
2018-12-31 04:00
파탄잘리의 요가수트라
무표
‘학교’라는 단어와 ‘나는 학교에 간다’라는 문장 안에서 ‘학교’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독립된 개념으로 존재하는 ‘학교’는 이 단어의 모양과 음성이 지닌 최소 의미가 있다. 이 최소 의미는 학교를 다른 단어들, 예를 들어 학생이란 단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지탱하는 자신만의 특징들이다. 이 단어는 문장에서의 위치에 따라 구체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 학교 뒤에 복수를 의미하는 접사 ‘들’이 첨가하면 하나의 학교가 아니라 두 채 이상의 '학교들'이 된다.
‘나는 학교에 간다’에 등장하는 학교는 ‘나’라는 주체가 몸을 움직여 실제로 진입하는 건물이다. 나는 다리를 통해 학교라는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이 전체 문장이 의미가 있는 문장이 되기 위해서는 학교라는 단어는 ‘나는’ 이란 주어 다음에 위치하고 뒤에 방향을 나타내는 전치사 ‘-에’가 접미해야 하며 ‘간다’는 동사 앞에 위치해야 한다.
사전 항목으로서 학교는 다양한 용례가 가능한 최소한의 단위로 존재한다. 구조주의 언어학자들은 학교라는 개체를 ‘표시되지 않았다’는 ‘무표(無表·unmarked)'라고 부르고, 문장 안에서의 ‘학교’를 ‘유표(有表·marked)'라고 부른다. 무표로서 학교는 자신만의 일련의 의미를 지니지만, 문장 안에서 의미를 지녀 ‘유표’가 될 때, 구체적인 의미를 전달한다. 일상의 대화에서 상용되는 학교라는 유표단어는 사전에 등장하는 학교라는 무표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무표로서의 학교는 학교라는 단어가 이용되고 통용되는 다양한 소통을 위한 원천이다.
'요가수트라' I.45
파탄잘리는 '요가수트라' I.45에서 감각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인간의 미묘한 본성을 다루고 있다. 현재의 자신을 온전히 파악하기 위해서 요가수련자는 의식의 원천을 찾아 더듬기 시작한다. 그(녀)는 그 의식의 ‘처음’에 도달하기 위해 수련한다. 처음이란 이전에 존재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파악하기 위한 구조와 그 구조를 설명한 문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처음은 시간과 공간 안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은 인간으로서는 당혹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요가수련자가 다양한 의식의 줄기와 뿌리를 과학적이며 정교하게 걸러내 어떤 것에 도달한다. 깨달음이란 현상적인 의식의 근원을 찾는 과정이다. 깨달음은 겉에서 속으로, 현상에서 본질로, 복수에서 단수로, 복잡에서 단순으로 추려내는 추상의 결과다.
‘미묘’라고 번역된 산스크리트 단어 ‘숙스마(sūkṣma)'는 노자가 '도덕경' 1장에서 말한 ‘이름 붙일 수 없는 그 무엇이 하늘과 땅의 시원,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은 온갖 것의 어머니’라는 문장에 등장한다.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것이 존재하도록 만든 원칙이 존재한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현상(現象)과는 다른 눈으로 볼 수 없지만 현상을 존재하게 만드는 실상(實相)의 세계가 있다. 노자는 그것을 ‘현지우현 중묘지문(玄之又玄 衆妙之門)'이라고 표현하였다. “가물가물하고 또 가물가물하여, 모든 미묘한 것들의 이해하는 관문”이라고 말한다.
노자가 말한 삼라만상을 이해하는 관문을 파탄잘리는 ‘알링가(aliṅga)'라는 단어를 통해 표현한다. ‘알링가’를 직역하자면 ‘아무것도 표시되지 않는 것’, 다시 말해 ‘무표’란 의미다. ‘알링가’는 아직 드러나지 않고 형태를 가지지 않은 상태를 총칭하는 단어다. 인간이 눈으로 확인하는 만물들 그것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원천·원자재·원자를 통해 구성된다. 형태 이전의 상태는 인간의 이성이나 계산을 넘어선 어떤 것이다. 알링가는 우주가 형성되어야겠다고 맨처음 생각한 의지이며, 후에 등장한 형태들의 원형이다.
‘처음’
우주를 시공간에서 존재하게 하는 의지는 무엇인가? 인간이 그 시작을 이해할 수 있는가? 우주는 물질세계이기 때문에, 영원하지 않아 ‘처음과 나중’이란 시간의 지배를 받는다. 과학자들은 우주가 빅뱅으로 138억년 전에 생겼고 앞으로 내적인 에너지를 기반으로 200억년 정도는 견딜 수 있다고 추정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는 맨 처음부터 이렇게 고정되어있는 물건이 아니라, 항상 변화한다. 미국 천문학자 허블이 망원경으로 우주의 끝이 팽창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 팽창의 첫 시발점, 그것을 가정하였다.
팽창하는 우주의 맨 처음 상태를 상상할 수 있는 무한히 작은 점을 천체 물리학에서는 특이점, 영어로는 ‘싱귤래리티’라고 부른다. 싱귤래리티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과학적인 법칙이 통하지 않는다.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과 R. 펜로즈는 ‘특이점’은 우리가 아는 시간과 공간을 왜곡시키고, 물리 법칙의 원칙인 ‘인과관계’가 보장되지 않는 블랙홀과 같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주가 생성되고 소멸하는 싱귤래리티는 제로에 가까운 무한점을 통해 진행된다. 우주는 바로 싱귤래리티가 폭발하는 빅뱅이다.
빅뱅 이전은 관찰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기 때문에 형용할 수도 잴 수도 없다. 빅뱅을 통해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기 시작했기에 빅뱅 이전 상태를 공(空)이나 무(無)라고 표시한다. 그러나 우주의 시작점이 있었다는 가정이 과학적이라 할지라도 그 설명은 불완전하다. 게다가 빅뱅이 왜, 그리고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특히 빅뱅 이전의 상태에 대해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비존재’
인류는 오래 전부터 밤하늘의 별과 자연의 정교한 질서를 보면서 누군가 우주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남긴 기원 신화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내용이 ‘신들의 창조’에 관한 내용이다. 인간은 모든 문명권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신비감을 표현했다. 창조 신화는 우주와 생명의 기원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사실 객관적인 사실이라는 것도 시대에 따라서 달라지지만) 존재하는 것들이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놀라움을 표시한다. '리그베다' 10장 129절에는 신들조차 맨 처음 심연과 같은 ‘비존재’에서 어떻게 ‘존재’가 생겨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고 전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우주 안의 모든 것이 일어나는 공간을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수용체’라고 불렀다. 플라톤은 우주 창조 이야기를 담은 '티마이오스'에서 조물주 신 데미우르고스를 등장시킨다. 데미우르고스는 영원한 ‘이데아’ 세계의 원형을 흉내 낸 세계인 ‘미메마(mimēma)'를 만든다. 그러면 우주 창조 이전에 우주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플라톤은 우주 창조를 처음부터 다시 말하기 시작한다. 이 두 번째 우주 창조는 이전처럼 간단하지 않다. 이 우주 창조에는 불·물·흙·공기라는 개념조차 없다. 우리는 “하늘이 태어나기 이전”, 즉 빅뱅 이전으로 진입해야 한다. 그는 원형과 원형의 복사와는 다른 새로운 개념을 등장시킨다.
조물주와 그를 돕는 신들이 우주와 인간을 만들지만 완성하지 못한다. 무언가 부족한 것이 있다. '티마이오스' 48e-52d에 등장하는 ‘수용체’는 우리를 둘러싼 물질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광대한 어떤 것이다. 이것은 어렵고 볼 수 없는 형태지만 그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다. 이 수용체는 우주를 존재하게 하는 원초적인 힘이자 바탕이다. 매트릭스로서 수용체는 모든 것들을 일으켜 세우며 젖을 먹이는 존재이자 우주의 어머니다. 우주에서는 관찰할 수 없는 틀이지만 우주의 모든 형태를 가장 당혹스럽게 수용하며 드러낸다.
수용체는 “파괴할 수 없는 영원한 코라이며 모든 존재하는 것들을 지탱하는 자리”다. 코라는 땅도 아니고 하늘도 아닌 어떤 장소다. 코라는 감각 기관으로 감지할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꿈과 같은 어떤 것이다. 코라의 원래 의미는 고대 그리스 도시 밖에 있는 장소를 의미한다. 두 장소나 경계 사이에 있는 장소이자 광대하게 비어 있는 공간이다. 존재도 아니고 비존재도 아닌 그 중간을 이르는 용어인 코라는 무존재가 존재하도록 시간과 공간을 제공해주는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장소다. 인간 삶에 비추어보면 인생에 있어서 자신이 있어야 할 본연의 장소다. 파탄잘리가 '요가수트라' I.45에서 요가수련자가 만물을 수용하면 근원이 되는 ‘무표’로 진행하는 단계를 ‘미묘(微妙)하다’고 말한다. 이 ‘미묘’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