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날리다 만 美연준...지표에 밀린 시장 금리인상 아우성

2018-12-20 17:40
美연준, 올해 4번째 금리인상 단행…내년 인상 횟수 3→2 줄였지만
'점진적 금리인상' 기조 재확인에 무게…"시장 불안 모르쇠" 불만도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사진=신화·연합뉴스]


"경제지표가 맞고 시장은 틀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19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인상한 건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시장이 아닌, 지표에 베팅한 결과라고 풀이했다. 그가 금리인상을 둘러싼 시장의 우려보다 탄탄한 경제지표를 근거로 금리인상 기조를 재확인했다는 것이다.

연준은 이날 올해 마지막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만장일치로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인상했다. 올 들어 네 번째,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첫 금리인상을 단행한 2015년 12월 이후 아홉 번째 인상이다. 그 사이 0~0.25%에 불과했던 기준금리가 2.25~2.5%로 뛰었다.

연준의 금리인상은 이미 예상된 행보지만,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뉴욕증시 다우지수와 S&P500지수가 각각 1.5%, 나스닥지수가 2% 넘게 하락했다. 다우지수는 금리인상 결정을 앞두고 300포인트가량 오르다 352포인트 반락하며 연저점을 새로 썼다. 파월 의장의 회견 중에는 낙폭이 513포인트로 벌어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S&P500지수의 경우 연준이 금리를 인상한 날 기준으로는 1994년 2월 이후 낙폭이 가장 컸다고 지적했다. 연준은 1994년 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7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3%에서 6%로 인상했다. 이날 투매 바람이 역사적으로 손꼽히는 연준의 급격한 금리인상기 때만큼이나 격렬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연준이 금리정책에 대해 전보다 온건한 모습을 보였지만, 시장 기대에는 못 미쳤다고 지적한다. 연준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로베르토 페를리 코너스톤마크로 파트너는 블룸버그에 "연준이 9월보다 비둘기파(온건파) 성향이 강해졌지만, 시장이 반길 정도는 아니다"라며 "미국 경제지표는 연준이 타월을 던질 때라는 걸 아직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표만 보면 금리인상을 중단할 때가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완화적인 신호도 여럿 있었다. 파월 의장이 회견에서 세계 경제 성장둔화와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등에 대해 우려를 나타낸 게 대표적이다. 그는 "추가 금리인상 경로와 최종 목적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연준은 내년 금리인상 횟수를 당초 세 번에서 두 번으로 줄일 수 있다는 데도 의견을 모았다. 연준 위원들은 금리인상이 2020년에는 한 번, 이듬해에는 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봤다. 경제성장이나 위축을 일으키지 않는 장기적인 중립금리 수준도 3%에서 2.75%로 낮췄다. 0.25% 포인트씩 금리를 올리면 단 한 차례면 중립금리에 도달하게 되는 셈이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연준이 내년에 금리인상을 중단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연준은 이날 낸 성명에서 '점진적인 금리인상(further gradual increases)'이라는 기존 문구 앞에 '일부(some)'라는 말을 붙여 유연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로 0.1% 포인트 낮추고, 내년 예상치는 2.5%에서 2.3%로 하향조정했다.

그럼에도 시장에서는 연준이 금리인상 기조를 사실상 재확인했다는 판단에 더 무게를 뒀다. 파월 의장도 일련의 문제를 거론하면서도 "전망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않았다"며 통화정책이 더 이상 완화적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WSJ는 연준이 전보다 덜 공격적인 금리인상 행보를 시사했지만, 파월 의장은 시장이 원한 금리인상 중단 신호를 주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파월 의장은 경기부양을 위해 매입한 자산을 점진적으로 처분하는 양적긴축(QT)도 계획대로 추진하겠다고 했다.

블룸버그는 연준이 세계 경제의 성장둔화와 금융시장 변동성 같은 변수를 거론한 건 다음 금리인상 전에 휴지기를 가질 수 있다는 뜻이지, 금리인상이 끝나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금리인하 가능성은 아직 레이더에도 잡히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한편 파월 의장의 이날 결정은 시장 우려뿐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력에도 반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잇따라 연준의 금리인상 정책을 비판했지만, 파월 의장은 "정치적 고려는 연준의 정책 결정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블룸버그는 "연준이 옳은 일을 했다"면서 "중앙은행의 독립성 수호는 차치하더라도 이번 금리인상은 경제를 위한 바른 선택"이라고 논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