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2018년판 '프랑스 혁명' 노란조끼 시위로 병든 낭만의 도시

2018-12-04 00:00

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시내 한 은행에서 작업자들이 전날 시위 도중 파손된 전면 유리창에 금속 패널을 붙이는 모습.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예술과 낭만이 가득했던 프랑스의 수도 파리가 2018년판 '프랑스혁명'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1일 샹젤리제와 개선문 등 파리 도심에서 복면을 쓴 시위대가 거리의 차량과 건물에 불을 지르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는 폭력사태로 확대됐다. 현지 경찰이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최루탄·연막탄·물대포 등을 쏘면서 예술의 도시 파리의 번화가는 아수라장이 됐다.

파리를 상징하는 랜드마크 중 하나인 개선문은 각종 낙서로 얼룩졌다. 샹젤리제 거리에는 불빛이 사라졌다. 도심 곳곳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불에 탄 자동차와 깨진 유리 파편들이 난무했다. 현지 언론은 1789년부터 1794년까지 일어난 ‘프랑스혁명’을 연상케 한다고 표현했다. 

아름다운 파리를 ‘어둠의 도시’로 변하게 만든 것은 폭력사태로 번진 ‘노란 조끼(Gilets Jaunes)’ 시위 때문이다. 시위 참가자들은 사고에 대비해 차량에 의무적으로 비치한 형광 노란조끼를 입고 나왔다. 그들은 정부의 고유가 정책에 불만을 표시하며 지난달부터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친환경 경제로의 전환이라며 지난 1년간 유류세(경유 23%, 휘발유 15%)를 인상했다. 내년 1월에는 추가 인상 계획도 나왔다. 정부는 시민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유류세 인상폭을 조정하겠다고 했지만 시민들의 분노를 다스리기엔 역부족이었다. 

파리 시민들은 유류세 인상이 물류비용, 상품가격 상승을 불러 가계 구매력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부의 지속된 긴축 재정으로 임금 정체 등 근무 조건이 급속도로 악화한 저소득층들에게 타격을 줬다는 것이다. 시위 참가자들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부자와 기업들만 배부르게 하고 있다면서, ‘부자 대통령’이라며 퇴진까지 요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소득자와 기업에 유리한 정책을 내놓고 있는 정부에 대한 분노가 유류세 인상을 계기로 폭발한 것으로 분석한다. ‘노란 조끼’의 격렬한 시위에도 벤자맹 그리보 프랑스 정부 대변인은 “우리는 현재의 노선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그 점만은 확실하다”고 강조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에 대한 반발심을 앞세워 무차별적으로 건물을 훼손하며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자신들의 눈과 귀를 막고 서민들의 아우성을 못 본 척하는 프랑스 정부의 행동은 18세기 말 사치와 권력 유지에 급급했던 프랑스 왕국과 귀족들을 떠올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