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인프라 정책, 평균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2018-11-19 17:10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원장
작년 이맘때 정부의 2018년 예산안은 충격적이었다. 전체 예산은 429조원으로 전년 대비 7.1%나 늘었는데, SOC 예산은 17조7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20%나 줄었기 때문이다. 올해도 다르지 않다. 내년 예산안은 470조원으로 올해 대비 9.7%나 늘었지만, 유일하게 SOC 예산만 18조5000억원으로 올해보다 2.3% 줄었다.
왜 이렇게 유독 SOC 예산에 대해서만 인색할까? 그 이유는 복합적이다. 4대강 트라우마 때문에 콘크리트가 아니라 사람에 투자해야 한다는 정치철학적인 요인도 있고, 우리 인프라 수준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인프라 충분론’도 있다.
급증하는 사회복지비 지출 때문에 인프라에 투자할 돈이 없다는 ‘재원 부족론’도 있다. 대부분은 사실적인 근거가 애매모호한 주장들이다. 그런데 인프라 투자 축소를 초래한 요인 중 하나인 ‘평균의 함정’은 좀처럼 언급되지 않았다.
OECD 국가의 평균적인 인프라 투자 비중이 우리보다 낮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면 우리가 OECD 국가 평균 수준의 인프라 투자만 했을 경우 오늘날의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을까? 사실 우리가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있었던 것은 압축성장 기간 중에 인프라에 대해서도 평균을 초과하는 과감한 투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선진국 대부분이 오랫동안 인프라 투자를 게을리했던 것을 후회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들어 미국과 유럽 선진국들은 적극적으로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선진국의 평균 추이를 따르자는 주장은 그들이 후회한 길을 뒤따라가자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우리도 노후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할 때다. 스마트 시티를 비롯한 미래 인프라 투자도 확대해야 한다.
평균을 한참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의 인프라 경쟁력을 갖춘 나라들은 어떨까? 인프라 투자를 줄이기는커녕 더 늘리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에서 다년간 인프라 경쟁력 세계 1, 2위로 평가해 온 홍콩과 싱가포르를 보라. 홍콩은 지난 10월 말에 인천대교보다 3배나 긴 강주아오 대교를 개통해 마카오까지 가는 시간을 3시간 30분에서 30분으로 단축했다. 한 달 전인 9월에는 홍콩-선전-광저우를 연결하는 고속철도를 개통했다. 이제 홍콩과 마카오 및 중국 본토의 광둥성은 육로로 1시간 생활권이 되었다.
싱가포르도 작년에 GDP 대비 4.4%를 인프라에 투자했고, 2020년에는 6%로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창이 국제공항과 투아스 항만 확장공사가 진행 중이고, 말레이시아와 연결하는 고속철도 건설도 예정돼 있다. 이처럼 홍콩과 싱가포르는 도로, 고속철도, 항만, 공항 등 전통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우리 정부의 인프라 정책도 다소나마 방향 전환이 이뤄지고 있는 것 같아 반갑다. 생활 SOC 투자가 늘어났고, 전통 SOC도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다소나마 증액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노후 인프라에 대한 중앙정부의 재정지원 근거를 담은 ‘지속가능한 기반시설 관리 기본법’도 조만간 통과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움직임이 당면한 경제성장률 하락이나 고용 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단기 부양책에 불과하다면 큰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인프라의 가치와 중요성을 인식하고, 미래와 글로벌을 향한 새로운 인프라 정책을 수립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프라 정책을 담당하는 사람들부터 평균의 함정을 탈피해야 한다. 지금은 ‘평균의 종말’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