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평규 칼럼] 한·중 기술협력 공간은 많다
2018-11-14 06:00
한중 기술협력 위한 '상생모델' 만들어야
기술유출 막기 위한 정부 차원 노력도 중요
기술유출 막기 위한 정부 차원 노력도 중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5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개막한 중국과학원과 중국공정원 원사(院士)회의에서 중국 대표 통신장비업체 중싱(中兴·ZTE)에 대한 미국의 제재를 거론하며 “중국이 과학기술의 빠른 발전을 선도하는 국가로 나서야 하며, 중국의 과학 인재들이 세계 첨단기술 개발과 발전이라는 역사적 중책을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미·중 무역전쟁을 계기로 기술 확보 없는 무역흑자는 하루아침에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도 있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오히려 이번 사태가 중국에게는 선진국형 기술 선도형 산업구조의 재편이라는 선물을 안겼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사실 중국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의 수호자를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 속내를 들여다보면 중국 정부의 형태 또한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와 별반 다르지 않다. 중국은 외자 기업이나 무역에서 비관세 분야에 대한 법 적용에서 자국 보호주의를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다.
중국 반도체 산업의 경우 '중국제조 2025'를 추진하면서 중국산 반도체 자급률을 2020년까지 40%, 2025년까지 50%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보조금으로 1500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하자 미국이 강력하게 반발한 게 대표적이다.
최근 미국 법무부는 메모리칩 생산업체인 마이크론사의 지적재산권과 상업 비밀을 절취했다는 협의로 반도체 D램 생산업체인 국영기업 푸젠진화(福建晋华)와 대만과의 합작사 연화전자(联华电子)를 기소하고, 미국산 반도체 생산장비·소프트웨어·기술이전을 전면 중단시켰다.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수입하는 반도체 분야의 생산설비 비중이 약 30%에 달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중국의 반도체 굴기 계획엔 상당한 차질이 예상되고 있다.
중국 정부와 기업들은 해외업체와의 합자(작)를 추진하다가, 얼마 안 가서 파기하고, 기술만 빼가는 경우가 많았다. 세계의 기술 선진국인 미국·일본·독일·캐나다 등은 중국 자본의 유입이나 자국기업 사냥에 빗장을 걸어 잠근다. 자국 내 중국의 영향력 확대와 핵심기술 유출 우려 때문이다. 중국 정부의 기술에 대한 욕구는 강하지만 협력을 구할 수 있는 나라나 기업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중국이 선진국과 같은 견제를 받지 않고 기술을 이전 받기에 만만한 곳이 한국이다. 몇 년 전부터 중국 정부와 기업들은 한국의 기술이나 기술자들을 빼가는 데 전략적인 접근을 시도해 오고 있다. 한국의 기술자를 통해 기술을 빼내가거나, 기업간 합작을 통해 기술만 빼가고 사업을 파탄시키는 경우는 수없이 봐왔다. 최근 국감에서는 첨단기술 해외유출 사건의 70%가 중국 소행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기술 교류를 할 만한 역량을 갖춘 나라는 중국밖에 없다. 우리의 이웃에 우리의 기술을 원하는 나라가 있다는 것은 그래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정보통신(IT), 화장품 제조, 게임, 드라마 제작, 의료, 제약, 바이오, 줄기세포, DNA 분석, 환경산업, 조선, 자동차 부품제조 등 분야에서 중국보다 우수한 경쟁력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은 몰래 빼갈 게 아니라 한국과 전략적인 협력을 통해 상생의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중국은 자금과 시장, 그리고 저렴한 생산원가를 제시하고, 한국은 기술과 기술교육, 그리고 중국시장을 제외한 글로벌 마케팅을 담당하는 구조라면 서로 상생 할 수 있는 공간이 많다.
한 나라나 기업이 기술을 축적하는 데에는 엄청난 투자와 정성이 들어간다. 몰래 개별 접촉을 통해 기술을 빼내는 것은 도덕적인 문제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나중에 문제가 될 경우엔 관련 기업이나 인사가 국제법에 저촉돼 처벌받게 돼 있다. 중국이 한국의 기술을 불법으로 가로채거나 도용하는 행위는 정상적인 국가나 기업이 할 짓이 아니다.
우리 정부도 기술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전략과 실천의지를 가져야 한다. 중국 정부와는 기술의 교류와 공유, 그리고 공동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실질적인 공동협력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한·중 과학기술협력센터 같은 조직은 있지만 예산과 인력 부족으로 실질적으로 비즈니스까지 연결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많다.
중국은 정부의 입김이 강한 나라다. 한·중 간에는 정부 대 정부가 나서서 강력한 협력의 장을 만들어줘야 속도를 낼 수 있다. 정부가 과학기술 연구 역량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비즈니스로 연결되어야 실질적인 혁신 성장이 가능해지고 국가의 경쟁력도 생겨난다. 아직도 한·중간 기술협력 공간은 많다.
조평규 중국연달그룹 수석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