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영상톡]"따라 쓰기로 명필의 길로 간다?"..국립한글박물관 '명필을 꿈꾸다' '청인의 임서' 전
2018-11-06 10:09
-10월 5일~내년 1월 20일 중국 산둥박물관과 교류특별전
-박영국 관장 "한·중 문화예술교류가 문화 발전에 기여할 것"
-박영국 관장 "한·중 문화예술교류가 문화 발전에 기여할 것"
명필(名筆)은 매우 잘 쓴 글씨를 말하고, 명필가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글씨 쓰기 연습을 해야 한다. 이러한 연습 중에서 잘 쓴 서체를 따라 쓰는 것을 임서(臨書)라고 한다. 한국과 중국의 임서 작품을 모아 명필로 가는 길을 제시한 전시가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열렸다. 특히 이번 전시는 중국 최초의 박물관인 산둥박물관과의 문화교류협력에 의한 첫 번째 교류전이 같이 열려 의미가 크다.
서울 용산에 있는 국립한글박물관은 17세기 이후 한·중 서예의 공부 방법을 주제로, 중국 산둥박물관 소장품을 소개하는 기획특별전 '청인의 임서'와 국립한글박물관의 '명필을 꿈꾸다'를 5일부터 내년 1월 20일까지 개최한다.
'청인의 임서'는 지난 5월에 중국 산둥박물관에서 열렸던 전시를 옮겨온 것으로 청나라 사람들이 그 이전의 명필들의 글씨를 배우는 과정을 전시로 풀어놨다.
'명필을 꿈꾸다'는 조선시대 서예가인 추사 김정희를 전후로 해서 서예를 배워가는 과정과 한글 글씨를 서예로 풀어가는 과정에 대한 전시이다.
한글박물관과 중국 산둥박물관은 2017년 8월 '문화교류협력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상호 교류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이번 전시는 한글박물관이 개관한지 만 4돌 만에 처음으로 여는 교류특별전이고, 서예 전시로는 지난해 '한·중·일 서체 특별전' 이후 두 번째이다.
박영국 국립한글박물관장은 5일 기자간담회에서 "한글박물관에서 서예를 다루는 이유는 한글 서체와 한글 글꼴에 대해서 특별하게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전시를 하기 때문이다" 며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도 서예를 다루는 전시를 계속해 나갈 예정이다"고 전했다.
박 관장은 끝으로 "이번 전시를 통해서 한글박물관과 중국 산둥박물관 간에 우정과 협력이 이어지고 한·중 문화예술교류가 활발해져서 새로운 문화 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청인의 임서' 전은 청나라 대표적인 서예가 왕탁의 '왕휘지 득심첩 임서'와 강여장의 '왕희지 공죽장첩 임서' 등 1급 유물(국보급)과 2급 유물(보물급)이 각 1점을 포함한 임서 작품 23건 30점을 전시했다.
'명필을 꿈꾸다'전은 추사 김정희를 전후로 한 조선후기 서예가들의 주요 임서 작품, 조선왕실의 한글 궁체 자료 그리고 20세기 붓글씨 연습자료 등 120건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임서 작품뿐만 아니라 원작품의 이미지를 같이 전시해 원작품과 임서한 작품을 비교해 볼 수 있고, 임서의 과정이 모방으로 시작해서 창조에 이르는 '명필의 길'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이날 오후에 열린 개막식에서는 중국 산둥박물관 장영창 박사와 원광대 여태명 교수의 서예 시연이 있었다.
▶첩학과 비학을 보여준 '청인의 임서'
'청인의 임서' 전은 크게 '청나라 초기: 전통 첩학의 계승과 비학의 기원', '청나라 중기:첩학의 전성기와 비학의 발전', '청나라 말기:비첩겸용' 등 세 시기로 나눠 전시했다.
비석의 탁본을 배첩(서화를 감상·보관하기 위하여 적당한 형태로 꾸미는 것)한 것을 첩이라고 하고 첩을 연구하는 학문을 첩학이라고 한다.
반면 비학은 탁본이 아닌 실제 비석에 있는 글씨를 연구하고 연마하는 학문을 말한다.
첩학과 비학은 둘 다 비석에 있는 글씨를 기본으로 하지만, 복사본을 연구하는 첩학은 글씨가 아름답고 우아한 게 특징이고, 비석의 글씨 자체를 연구하는 비학은 딱딱하고 단조로운 글씨체를 가진다.
주요 전시 유물로는 청나라 때 서예가인 왕탁이 왕휘지의 '득신첩'을 따라쓴 '왕탁의 왕휘지 득신첩 임서'(1급 유물), 강여장이 왕희지의 '공죽장첩'을 따라 쓴 '강여장의 왕희지 공죽장첩 임서'(2급 유물), 왕탁의 왕헌지 경조첩 임서, 공계속이 미불의 '기위태시첩'을 따라 쓴 작품, 나언성이 안진경의 '다보탑비'를 따라 쓴 글씨, 한나라 시대의 비석을 장조익이 따라 쓴 글씨, 왕희지의 '제종첩'을 기준조가 따라 쓴 글씨 등이 있다.
▶한문의 임서가 한글로 이어진 '명필을 꿈꾸다'
'명필을 꿈꾸다' 전은 조맹부의 송설체와 왕희지의 서법을 임서한 작품을 모은 '1부 17~18세기 서예가들의 임서', 추사 김정희를 중심으로 임서 작품을 모은 '2부 19~20세기 서예가들의 임서', 한글 서체 임서를 모은 '3부 조선 왕실의 임서 문화와 근현대 한글 서예 교육'으로 구성됐다.
왕희지는 한·중 서예사에서 자신만의 서체를 완성한 '서성'으로 추앙되고 있는 인물이다. 그의 글씨는 아들인 왕헌지, 조맹부 등으로 이어져 중국 서맥의 기틀을 다졌다. 조맹부를 계승한 조선의 서예가들은 명필이 되기 위하여 왕희지 글씨를 임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왕희지 임서로는 '악의론'을 오준이 따라 쓴 글씨와 '난정서'를 이재항과 김태석이 따라 쓴 글씨가 전시됐다.
특히 왕희지의 대표작인 '난정서'는 당시 선비들이 서예를 잘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많이 따라 쓴 글씨 집이다.
회소의 '자서첩' 일부를 박태유가 따라 쓴 글씨, 주나라 석고문을 오세창이 따라 쓴 글씨 등도 함께 전시됐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서예가인 추사 김정희의 임서로는 8쪽 병풍이 눈에 띈다.
김정희가 68세 때 '곽유도비'의 일부만 뽑아 임서한 글씨이다. 김정희가 말련까지도 글씨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많은 지를 알려주며, 김정희 예서 연구의 기준이 되는 자료다.
임서뿐만 아니라 글자의 윤곽선을 베끼는 '쌍구법' 작품도 전시됐다.
임서가 모범이 될만한 글씨를 찾아 익히고 자신의 서법을 구축해 가는 과정이라면 모서는 글씨 위에 투명한 종이를 깔고 그 위에 글씨의 윤곽선을 따라 그리는 방법이다. 모서는 초보자가 문자의 형태를 익히기 적절한 학습법이며 쌍구라고 불렸다.
오세창이 쌍구법으로 따라 쓴 글씨는 얇은 붓으로 글씨의 윤곽선만 그린 것으로 보인다.
김정희의 '백파율사지'를 쌍구법으로 모사한 글씨도 전시됐다. 이 역시 글씨의 윤곽선만 가느다란 선으로 그려져 있다.
한글 서체의 임서는 제왕(帝王)의 첩(妾)과 시녀인 비빈의 글씨 쓰기를 전문적으로 돕는 서사 상궁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서사 상궁은 비빈의 편지를 대필해 주거나 한글 소설을 필사했다.
전시된 '서사 궁인의 글씨 연습자료'는 글씨를 바로 옆에 그대로 따라 쓰면서 연습한 흔적이 보인다.
이러한 서사 상궁 중에서 서기 이씨와 서희순의 작품이 전시됐다.
서기 이씨는 조대비로 알려진 신정왕후의 서사 상궁으로, 한글 궁체를 잘 써 '국문이 생긴 이후 제일가는 명필'로 불렸다. 전시장에는 신정왕후 조씨가 생질인 윤용구의 부인 연안 김씨에게 보낸 안부 편지를 서기 이씨가 대필한 작품이 전시됐다.
서희순은 철종과 고종 때의 서사 상궁으로, 고종 때는 제조 상궁을 지냈으며 고종비 명성황후의 서간을 대필했다. 그의 글씨는 정형적이면서도 활달한 필치가 특징이다.
이밖에 미군정기 초등용 글씨 연습 교본(1949), 1차 교육과정기 초등용 글씨 연습 교본(1955), 2차 교육과정기 글씨 연습 교본(1970) 등이 전시됐다.
전시장 마지막에는 쌍방향 설치 작품인 '디지털 체험'과 한자 및 한글 서체를 따라 쓰는 '아날로그 체험'을 배치해 관람객의 이해와 흥미도를 높였다.
'디지털 체험'에서는 스크린에 비친 한자에 손을 가까이 가져가면 한자의 뜻과 필획을 알려준다. '아날로그 체험'에서는 실제 교과서에 실린 글씨를 붓으로 임서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