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평화미사'가 더 특별했던 이유…교황청 국무원장, 깜짝 한국어로 미사 시작

2018-10-18 06:39
교황청 '한반도평화 미사' 경본, 한국어·이탈리아어 공동제작

교황청 피에트로 파롤린 국무원장(추기경)이 17일 오후 (현지시간)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한반도 평화를 위한 특별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파롤린 국무원장이 직접 미사를 집전하는 것은 매우 드문 사례다.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참석한 가운데 17일 오후(현지시간) 교황청 성베드로대성당에서 피에트로 파롤린 교황청 국무원장이 집전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사'는 미사 성격에 맞게 특별한 요소들이 더해져 의미가 컸다.

피에트로 파롤린 국무원장(추기경)은 "문재인 대통령님, 김정숙 여사님 환영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축복을 전합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합니다."라고 미사 시작을 '깜짝' 한국어로 알려 큰 놀라움과 감동을 줬다.

이날 미사는 문 대통령의 교황청 공식방문을 계기로 오직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를 지닌 특별 미사로 열렸다. 교황청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한 나라의 평화를 위해 미사가 열리는 것은 교황청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교황청 국무총리 격인 국무원장이 이날 미사를 집전한 것도 극히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청와대는 이번 미사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미사 경본이 바티칸 대축일 수준의 경본으로, 한국어와 이탈리아어를 병기해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바티칸 출판사의 적극적인 협조 덕에 가능했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미사 경본의 표지에 실린 성화는 1999년 이후 가톨릭 성화 전문 작가로 활동하는 심순화 가타리나 화백의 '평화'로  2006년 교황 베네딕토 16세에게 봉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심 화백은 "우리 민족의 마음속에 화해와 일치를 이루는 평화의 춤을 함께 출 날을 고대하며 성모님께 이 그림을 바친다"고 전했다.
 

교황청 피에트로 파롤린 국무원장(추기경)이 17일 오후 (현지시간)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한반도 평화를 위한 특별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파롤린 국무원장이 직접 미사를 집전하는 것은 매우 드문 사례다. [사진=연합뉴스]



아이보리 색 제의를 걸친 파롤린 추기경과 미사를 공동 집전한 한국 사제들 130명이 제대에 차례로 도착하며 미사의 막이 올랐다.

성가인 '기쁨과 평화 넘치는 곳', '평화를 주옵소서'를 시작으로 막을 올렸고, 시작예식, 말씀전례, 3부로 나뉜 성찬전례, 마침예식 순으로 진행됐다.

평화를 주제로 한 파롤린 원장의 강론은 성당에 모인 사람들 대다수가 한국인임을 배려해 현지에서 유학 중인 장이태 신부(로마유학사제단협의회 회장)가 대독했다.

강론은 부활 이후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나타나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인사한 예수님의 이야기를 담은 요한복음을 매개로 해 이야기를 풀어갔다.

이날 강론은 "이 저녁,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온 세상을 위한 평화의 선물을 간청하고자 합니다. 특별히 오랫동안의 긴장과 분열을 겪은 한반도에도 평화라는 단어가 충만히 울려 퍼지도록 기도로 간구합시다"라는 구절로 시작해 좌중을 숙연하게 했다.

이어진 보편지향 기도에서는 한반도의 평화를 향한 염원이 구체적으로 표출됐다.

대표 기도자가 "평화의 주님, 여러 가지 이유로 서로 맞서고 있는 이들에게 용서와 화해의 의지를 심어 주시어, 그들이 세상의 안녕과 정의 실현을 위하여 욕심을 버리고, 참된 평화의 길로 나아가도록 이끌어주소서"라고 말하자, 좌중은 "주님, 저희를 주님께 이끌어주소서"라고 화답했다.

'분단으로 인해 아픔을 겪는 이들을 위한 기도'도 울림을 줬다.

기도자는 "세계 곳곳에서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이유로 갈라진 민족들을 굽어보시어, 그들이 갈라짐으로 인한 아픔들을 이겨내고 일치를 향한 발걸음을 힘차게 내디딜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간청했다.

성찬 전례와 마침 예식으로 미사를 마무리하며 "한반도의 평화를 빕니다"라고 다시 한 번 또렷한 한국어로 한반도 평화를 염원한 파롤린 추기경은 주교 시노드 기간 틈틈이 한국어 문장을 연습한 것으로 전해졌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문 대통령(세례명 디모테오)과 김 여사(세례명 골롬바)는 성찬의 전례 때 제대 앞으로 나아가 성체를 모시고 기도를 올렸다.
 

교황청을 공식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오후 (현지시간)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를 위한 특별미사'에서 성체를 모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사에는 특별한 참석자들도 눈에 띄었다.

로마에서 자동차로 2시간 30분 거리의 아씨시에 있는 프란치스코 전교 수녀회 수녀 6명도 참석했다. 소프라노 조수미씨와 칼리스타 깅리치 주교황청 미국대사, 박용만 몰타 기사단 한국 대표, 정의철 한인신학원 원장, 최종현 주이탈리아대사와 유혜란 주밀라노 총영사를 비롯해 로마·밀라노 한인회 간부 및 민주평통자문위원, 김경석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도 참석했다.

이날 미사는 지난 3일 개막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주교 시노드) 참석차 교황청에 머물고 있는 유흥식, 조규만, 정순택 주교 등 한국 주교 3명과 로마에서 유학 중인 젊은 성직자 등 한국 사제 130명이 공동 집전했다.

성가대는 로마 근교의 음악원에 유학하는 음악도가 주축이 된 로마 한인성당 성가대가 맡아 의미를 더했다. 1980년대 주한 교황청 대사를 역임한 프란체스코 몬테리시 추기경도 자리를 함께 해 떠나온 지 한참 된 한반도의 평화를 함께 빌었다.

이날 미사와 문 대통령의 연설은 생중계됐다.

문 대통령은 미사를 마친 뒤 파롤린 국무원장과 만찬을 함께했다.

문 대통령은 현지시간 18일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단독 면담하며, 이 자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북 초청 의사를 전달한다. 문 대통령은 교황과 만남 직후 파롤린 국무원장과의 회담을 끝으로 교황청 방문 일정을 끝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