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경 시인 별세에 출판계서도 추모사 행렬…출판사들이 꼽은 고인의 한 구절

2018-10-04 15:29
향년 54세로 암투병 중 별세…장례는 현지서 수목장으로 치러져

독일로 건너가 꾸준히 시를 쓴 허수경 시인이 지난 3일 오후 7시 50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54세. 사진은 지난 2011년 12월 13일 신작 장편소설 '박하'의 출간에 맞춰 방한한 서 작가 모습. [사진=연합뉴스]


허수경 시인이 3일 향년 54세의 나이로 독일에서 별세한 가운데, 출판계에서도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출판사 난다의 김민정 대표는 4일 "허수경 시인이 한국시간 어제(3일) 저녁 7시 50분에 돌아가셨다"고 전했다.

허수경 시인은 1987년 '실천문학'에 '땡볕' 등 5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이후 1988년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를 시작으로 1992년 '혼자 가는 먼 집', 2001년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2005년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2011년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2016년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등 왕성하게 시집을 발표해 왔다. 지난 8월에도 산문집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를 펴냈다.

고인은 1992년 독일로 떠난 뒤 27년간 이국에서 모국어로 시를 써 왔다. 허수경 시인의 장례는 현지에서 수목장으로 치러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허수경 시인의 별세가 알려지면서, 출판사들 또한 잇따라 고인의 작품의 한 구절을 꼽으며 추모사를 공개했다. 출판사 창비는 허수경 시인의 '어느날 애인들은'을 인용해 "별이 된 故 허수경 시인을 추모합니다"라고 밝혔다.

나에게 편지를 썼으나 나는 편지를 받아보지 못하고 내 영혼은 우는 아이 같은 나를 달랜다 그때 나는 갑자기 나이가 들어 지나간 시간이 어린 무우잎처럼 아리다 그때 내가 기억하고 있던 모든 별들은 기억을 빠져나가 제 별자리로 올라가고 하늘은 천천히 별자리를 돌린다 어느날 애인들은 나에게 편지를 썼으나 나는 편지를 받지 못하고 거리에서 쓰러지고 바람이 불어오는 사이에 귀를 들이민다 그리고

문학과지성사 또한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에 실린 시인의 말을 가져와 "우리는 허수경이 시로서 이야기한 오래된 일과, 그것이 무엇으로 남아 현재의 시간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묻고 또 물으며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추모했다.

영원히 역에 서 있을 것 같은 나날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기차는 왔고 / 나는 역을 떠났다 // 다음 역을 향하여

문학동네는 블로그를 통해 허수경 시인의 '수수께끼'의 일부분을 공개했다. 출판사는 "독일에서 암투병 중에도 모국어로 글을 쓰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허수경 시인이 3일 밤 별세했습니다. 편히 쉬세요, 선생님"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차비 있어? / 차비는 없었지 / 이별은? / 이별만 있었네

출판사 아시아는 "서늘한 바람이 부르는 가을 새벽, 허수경 시인의 별세 소식을 듣고 허수경 시인의 시선집을 꺼내보았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추모사와 함께 고인의 '시인 노트'를 인용했다.

시를 쓰던 순간은 어쩌면 그렇게 다른 이가 잊어버리고 간 십자가를 바라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 간절한 한 사람의 시간을 붙들고 있는 것, 그 시간을 공감하는 것, 그것은 시를 쓰는 마음이라는 생각을 나는 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