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영상톡]"우연이 만든 조각 같지 않은 조각"..윤희 개인전 리안갤러리 서울

2018-10-01 20:09
-'in/attendu'(이나땅뒤) 전 9월12일~10월25일까지
-금속 조각 9점과 회화 5점 등 총 14점의 신작


'조각 같지 않은 조각'이 있을 수 있을까? 윤희(68) 작가는 금속 조각을 고정적 형태로 만드는 것이 아닌, 예기지 못한 우연의 효과로 만든다. 
조각 형태에 따른 주형(鑄型)을 만들고 그곳에 쇳물을 흘려 보내 굳히는 일반적인 제작 공법이 이닌 그가 개발한 특별한 방식이다.
주형은 완벽한 형태를 갖춘 것이 아닌 기본적인 반구, 혹은 구 형태를 하고 있다. 그곳에 쇳물을 부어 넣고 겹겹이 흐르게 하거나, 주형을 굴려서 완벽한 구가 아닌 한쪽이 뻥 뚫린 형태를 만들어 낸다.

[윤희 작가가 리안갤러리 서울 전시장에서 작품 'Sphérique'(구형)을 설명하고 있다.]


프랑스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윤희 작가의 개인전 'in/attendu'(이나땅뒤)가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9월 12일부터 10월 25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 한국에서 만든 금속 조각 9점과 회화 5점 등 총 14점의 신작을 선보인다.

전시 제목인 'in/attendu(이나땅뒤)' 프랑스어로 '예기치 못한, 뜻밖의'라는 뜻의 형용사이자 '우발적 사건'을 의미하는 명사이다.

전시를 기획한 성신영 큐레이터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작가의 작품을 보고 '기대됨과 우연성' 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는 작가의 예술 세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단어를 떠올렸다" 며 "'기다린, 기대된'의 의미인 'attendu'(아땅뒤)에 부정의 접두사 'in'을 더한 형태"라고 설명했다.

[윤희 작가가 리안갤러리 서울 전시장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작가는 '기대됨과 우연성'이라는 다소 반대 요소를 포용하기 위해 정확하게 목적을 정해서 계획대로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것이 나오도록 상황을 조성한다.

윤희 작가는 "예술이라는 것이 정확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체로서의 존재감을 그리고 감동을 주고 상상력을 자극한다" 며 "너무나 완벽하게 자신이 계획한 데로 하는 작품을 보면 숨통이 막힌다. 제 나름대로 우연성을 조형 언어에 포함을 시키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리안갤러리 서울에 전시된 윤희 작가의 'disque conique'(원형 디스크)]


전시 조각 작품은 크게 'inattendu'(뜻밖의)와 'disque conique'(원형 디스크)처럼 사발 형태 작품과 'Sphérique'(구형) 시리즈의 구형 형태 작품이 있다.

사발 형태 작품은 쇳물을 여러 겹으로 뿌린 다음에 얇게 쌓아 올린 작품으로 가까이서 보면 마치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것처럼 생동감이 느껴진다.

[리안갤러리 서울에 전시된 윤희 작가의 'inattendu'(뜻밖의)]


구형 형태 작품은 쇳물을 구형 틀에 부은 다음에 굴려서 만든 작품으로 굴리는 방식과 방향에 따라서 여기저기 성긴 구멍이 뚫리는 등 다양한 형태를 이룬다.
멀리서 보면 마치 우주에 떠도는 이름 모를 행성처럼 보인다.

[리안갤러리 서울에 전시된 윤희 작가의 'Sphérique'(구형)]


작가는 쇳물 작업을 할 때에도 우연성을 얻기 위해서 기술자들과 다양한 시도를 한다.

윤 작가는 "프랑스와 한국에서 제가 하는 방법을 들은 주물공장 기술자들은 처음에는 절대로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했다" 며 "그런데 조금 익숙해지면 기술자들이 욕심이 생겨 의도적인 테크닉을 부리기 시작한다. 그러면 의도가 들어가면서 작품의 신선함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리안갤러리 서울에 전시된 윤희 작가의 'Sphérique'(구형)]


완전하게 계획해서 형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의도 개입과 거기에 우연과 사고까지 합해져서 작품이 나온다

"틀에다 쇳물을 부으면서 틀을 돌린다. 어떨 때는 빠르게 어떨 때는 천천히 그리고 금속 용액은 점도와 합금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게 던지는 순간에 온도가 약간 떨어지면서 찰라적으로 시뻘건 모양으로 새겨진다. 모양 드러날 때 놀람과 어떨 때는 희열까지도 느낄 수 있고 그런 작업을 즉흥적으로 해야 한다."

[리안갤러리 서울에 전시된 윤희 작가의 'Projeté triptyque'(분출된 세폭화)]


조각 작품과 함께 전시된 회화 작품도 독특하다.
물감을 칠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거나 미는 방식으로 자유분방한 형태를 만들어 낸다.

"요즘에 하는 드로잉은 제가 주물공장에서 금속을 뿌리는 작업을 하기 때문인지 그거와 비슷한 작업을 하게 된다. 주물과 마찬가지로 처음에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가를 정해서 하면 거기서 (형태가) 드러난다. 정확하게 무엇을 그리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드러나는 거에 따라서 즉흥적으로 작품을 계속해 나간다."

[리안갤러리 서울에 전시된 윤희 작가의 'à la volée'(날아오름에)]


번쩍거리는 물감이 싫어서 자신만의 안료를 개발하고 누군가에게 작업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아무도 없는 방에서 비밀스럽게 작업하는 윤희 작가. 의도와 우연적 결과를 절충시킨 그만의 특별한 작품을 만나 보자.

윤희 작가는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80년대에 프랑스로 건너가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과 프랑스에서 24번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부산시립미술관, 프랑스 되세브르 와롱성, 발 드 브레티니쉬르오르주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