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中 뱅커들이 지방으로 간 까닭은

2018-09-17 13:27
은행 출신 고위직 증가세, 디레버리징 중책
지방채 매입 외 자금 지원한 금융기관 철퇴
국유기업 부채, 조기경보·중점감독 기준마련

최근 중국의 전도유망한 은행가 2명이 지방정부 고위직으로 적을 옮겼다.

이들이 맡은 임무는 해당 지방정부 내에 과도하게 쌓인 부채를 합리적 수준으로 조정해 금융리스크를 완화하는 것이다.

돈을 빌려주는 일에서 돈을 못 빌리도록 감시하는 일로 본업이 바뀐 셈이다. 반면 지방정부 부채 증가에 일조한 은행가들은 곤욕을 치르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방정부 및 국유기업의 부채 감축을 핵심 국정 과제로 설정하면서 흔히 목격할 수 있게 된 광경이다.

국유기업의 돈줄을 옥죄는 새로운 제도도 시행된다. 부채가 전년보다 5% 이상 늘면 옐로카드를 꺼내들고, 10% 이상 증가하면 각종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

미·중 무역 갈등으로 경기 침체가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지방정부·국유기업 관련 리스크를 그대로 떠안고 갈 수는 없다는 강력한 의지가 읽힌다.

무역전쟁과 '부채와의 전쟁'을 동시에 수행 중인 중국 정부의 노력이 눈물겹다.
 

[그래픽=이재호 기자]


◆디레버리징 전문가 영입이 트렌드

17일 중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류창(劉强) 중국은행 부행장과 리윈쩌(李雲澤) 공상은행 부행장이 각각 산둥성과 쓰촨성 정부의 고위직을 맡게 됐다.

구체적인 보직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조만간 부성장으로 임명될 것으로 예상된다.

둘 다 치링허우(70後·1970년 이후 출생자) 세대로 비교적 젊은 편이다. 류창 전 부행장은 농업은행 상하이분행장을 거쳐 2016년 8월부터 중국은행 부행장으로 재직해 왔다.

산둥성은 지난해 2월 궈수칭(郭樹淸) 전 성장이 은행감독관리위원회(은감회) 주석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 금융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상황이었다.

은감회 주석에 이어 새로 출범한 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은보감회)의 첫 주석까지 맡은 궈수칭 역시 건설은행 회장 등을 역임한 금융 전문가였다.

류창이 산둥성 부성장에 임명되면 금융 분야 업무를 총괄할 것으로 예상된다.

리윈쩌 전 부행장은 지난 7월 인민은행 부행장이 된 주허신(朱鶴新) 전 쓰촨성 부성장의 후임이다.

리윈쩌는 건설은행과 공상은행 등 대형 국유은행에서 경력을 쌓았고, 주허신도 중국은행 부행장을 지낸 은행가 출신이다.

최근 중국에서는 은행에 오래 몸담았던 금융 전문가가 지방정부 부시장 및 부성장으로 기용되는 게 일종의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조작으로 홍역을 치렀던 톈진시는 올해 초 캉이(康義) 전 농업은행 부행장을 부시장으로 영입했다.

비슷한 시기에 임명된 인융(殷勇) 베이징 부시장과 어우양웨이민(歐陽衛民) 광둥성 부성장도 '금융통'으로 분류된다.

인융은 중앙외환업무센터 주임과 인민은행 부행장 등을 거쳤고, 어유양웨이민도 1991~2013년 인민은행에서 근무하다가 광저우시 부시장을 맡으며 지방 행정가로 변신했다.

이 밖에 류구이핑(劉桂平) 충칭시 부시장과 왕장(王江) 장쑤성 부성장, 주충주(朱從玖) 저장성 부성장, 딩샹췬(丁向群) 광시좡족자치구 부주석도 장기간 은행가로 활동했다.

이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디레버리징(부채 감축)이다.

지난 5월 말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재경위원회는 지방정부 부채 총액이 40조 위안(약 6532조원)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전국 일반공공예산의 2배를 웃도는 규모다.

톈진과 충칭 등은 GDP 대비 부채비율이 60%를 상회해 심각한 수준이다. 과도한 부채를 적정 수준으로 조정해 리스크를 완화하는 것이 최대 당면 과제다.

지방정부를 상대로 무리한 대출을 집행해 재정적 부담을 가중시킨 금융기관은 철퇴를 맞고 있다.

중국 재정부와 은보감회는 지난 13일 법규를 위반해 지방정부에 대출을 해준 은행 1곳과 신탁회사 7곳에 벌금 등의 징계를 내렸다.

안후이성 츠저우시의 한 국유기업에 공공사업 사업권을 담보로 잡고 부당 대출을 해준 교통은행의 경우 현지 분행장 등 3명이 문책을 당했다.

지난 3월 재정부는 은행 등 금융기관에 대해 지방채 매입 외의 방식으로 지방정부에 자금을 지원하지 못하도록 했다. 지방 국유기업을 통한 간접 대출도 막았다. 이번에 징계를 받은 금융기관은 이 같은 규제를 위반했다.

재정부는 "각 지방정부는 부채를 늘려 업적을 만들려는 관점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며 "지방정부 부채를 늘리는 행위는 강력히 조사해 평생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3년 내 국유기업 부채비율 2% 낮춘다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판공청과 국무원 판공청은 지난 13일 '국유기업 자산·부채 규제 강화에 관한 지도의견'을 연명으로 발표했다.

국유기업의 자산 대비 부채비율을 엄격하게 관리하겠다는 게 골자다. 지도의견에선 "2020년까지 국유기업 평균 부채비율을 2017년 대비 2% 낮추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지난 7월 말 기준 중국 제조업체 가운데 국유기업의 평균 부채비율은 59.4%로 민영기업보다 4% 이상 높았다. 지난해까지는 이 격차가 10% 안팎에 달했다.

롼시(欒稀) 국가금융발전실험실 특별초빙연구원은 "전체 기업 부채 중 국유기업 부채가 3분의2 정도"라며 "디레버리징은 국유기업 구조 개혁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발표된 지도의견에 따르면 지난해 부채비율을 기준선으로 삼아 올해 들어 부채가 5% 이상 증가한 국유기업에는 조기경보를 발동키로 했다. 10% 이상 증가하면 중점 관리·감독 대상이 된다.

경고를 받은 기업은 추가 자금 유치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지도의견은 "조기경보선과 관리·감독선에 든 기업은 해당 산업 현황을 감안해 부채비율을 스스로 조정해야 한다"며 "또 부채 규모와 향후 자산 운용 계획 등을 이사회에서 심의한 뒤 채권자에게 투명하게 알리고 협상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어 "자회사 부채를 철저히 관리해 모기업·자회사 간 금융리스크 전이를 막아야 한다"며 "부채비율을 일상적으로 관리하며 이윤 창출 및 자본 축적 능력을 제고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다만 산업별·업종별·회사 규모별 기준을 수립해 차등적으로 규제하기로 했다. 전력·석탄·중화학·철강·철도 등 부채비율이 심각하게 높거나 과잉공급에 시달리는 국유기업에는 규제를 엄격히 적용할 방침이다.

이에 반해 정부가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신흥 산업과 혁신·창업 기업에 대해서는 다소 유연한 규제를 적용할 계획이다. 지도의견은 "단일 기준을 적용한 탓에 (특정 기업이) 규제를 회피하거나 혹은 과도한 규제를 받는 사례를 줄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리스강(李世剛)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 경제연구소 부연구원은 "국유기업의 경우 (부채 관리에 대한) 내부 처리 기제가 완비되지 않았고 외부 규제도 적었던 게 사실"이라며 "금융기관도 국유기업에 대출을 할 때 레버리지 상황을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롼시 연구원은 "이번 지도의견 발표로 단기적으로는 레버리지 비율 하락과 채무 리스크 완화가 기대된다"며 "장기적으로도 국유기업의 경영 투명성이 높아지고 부채 규제 효과가 점진적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