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선택한 베트남 축구에 내가 가진 축구 인생의 모든 지식과 철학 그리고 열정을 쏟아붓겠다." 지난해 10월 베트남 축구 A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박항서 감독의 취임 소감이다. 당시 베트남 축구팬들은 유럽 출신이 아닌 아시아 출신 감독이 베트남 축구 사령탑을 맡는 것이 못마땅했다. 하지만, 박 감독이 베트남 땅을 밟은 지 10개월 만에 베트남 축구는 강해졌다.

27일 열린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8강전에서 베트남은 시리아를 1대0으로 격파했다. 연장전까지 가는 진땀 승부였다. 베트남 축구는 최초로 아시안게임 4강에 올랐다.

베트남 국민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박항서 매직'이라며 열광했다. 박 감독은 자신의 철학과 열정을 모두 담아서 베트남에 '승리'라는 짜릿한 맛을 안겨줬다. 베트남은 그를 '국민 영웅'이라 부르며 보답했다.

박 감독은 선수들의 식단도 단백질 위주로 관리하며 신경 썼다. 축구 전략은 가감 없이 알려줬다. 시합이 안 풀릴 때는 용병술로 해법을 찾았다. 패배하면 박 감독은 선수를 향해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왜 고개를 숙이고 있느냐"며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그가 베트남에서 국민적 사랑을 받는 건 성과 때문만은 아니다. 박 감독이 발 마사지 기계를 들고 베트남 선수의 발을 마사지해 주는 영상이 인터넷에 공개돼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현지어도, 영어도 부족한 박 감독은 선수들과 감정을 나누고 비전을 공유하는 방법을 스킨십에서 찾았다.

온 몸을 던져 4강에 진출한 선수들을 향해 박 감독은 "오늘 또 우리가 한 걸음 딛는데 성공했다. 베트남 정신으로 무장한 선수들이 너무 자랑스럽다. 여기에 감독을 하고 있다는 게 영광스럽다"고 외쳤다.

베트남의 국부 호찌민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 프랑스 해운회사의 수습 요리사로 취직해 배를 타고 전 세계를 떠돌았다. 이 시기 호찌민은 말 그대로 배 밑을 박박 기며 밑바닥 인생을 살았다. 호찌민은 베트남에 돌아와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웠다. 그는 "나를 이끈 것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애국심이었다"고 말했을 정도로 베트남을 위한 길이라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베트남 국민은 이런 호찌민의 일생을 존경한다. 박 감독은 선수들을 향해 베트남을 배신하지 말라고 외쳤다. 선수들은 물론 베트남 국민의 가슴은 뭉클했고 자부심도 생겼을 것이 분명하다.

한국도 베트남처럼 식민지와 분단이라는 비슷한 역사를 가졌다. 그래서 박 감독의 이야기가 더 진정성 있게 들렸을지 모른다. 29일 한국과 베트남은 4강 맞대결을 펼친다. 승패 상관 없이 시합이 끝나면 한국과 베트남 국민 모두 주저 없이 박 감독을 명장이라 부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