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보훈의 중소기업 다녀요] 대기업 강조하는 사회

2018-08-14 06:00

성장기업부 신보훈 기자.


30년 가까이 가구를 생산해온 한 중소기업 임원을 만나 딱한 사정을 전해 들었다. 조달청에 가구를 납품하던 이 업체는 작년 말 공장에 갑자기 불이 나 수억원의 피해를 봤고, 계약한 물량을 맞추기 위해 공정의 일부를 다른 업체에 맡겼다. 중소기업중앙회는 관련 사실을 적발해 직접생산확인을 취소했고, 조달청과 맺은 계약은 해지됐다. 판로지원법에 따르면 업체가 직접생산의무를 위반할 경우 조달청은 계약을 해지하도록 돼 있다. 수천만원을 들여 소송을 진행 중이지만, 승소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 임원은 "사실상 폐업 수순을 밟고 있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장면 하나. 최근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났다.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부적절한 만남 아니냐'는 소리가 나왔으나 대규모 투자와 채용 계획이라는 훈훈한 결과물을 이끌어 냈다. 경제지표가 하락세이고, 청년 취업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효율적이고, 실용적인 만남이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청년들이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억 소리 나는 연봉과 복지제도, 사회적 인식 등 ‘눈에 보이는 차이’가 떠오른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입사 초기 연봉 차이는 1000만원, 20년 이상 근속자는 4000만원에 육박한다. 삼성, 현대, SK에 다니는 청년들은 “대기업 다녀요”라는 말 한마디로 주변의 부러움을 살 수 있지만, 인지도가 낮은 기업의 직장인들은 “중소기업 다니네”라는 편견 안에 규정된다.

다른 한편에서, 청년들은 십수 년에 걸쳐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눈에 보이지 않는 차이’를 경험해 왔다. 중소기업이 법을 어기면 사회질서를 위해 공명정대한 처분이 이뤄지지만, 대기업에는 또다시 기회가 주어져 왔다. 경제상황이 나빠지면 정부는 결국 대기업을 찾았다. 대기업은 국가의 협상 파트너였지만, 중소기업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 존재일 뿐이었다.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잇달아 대기업 투자 계획을 이끌어낸 정부 행보는 아이러니하게도 청년들에게 대기업이 대세라고 강조하고 있다. 수백억원의 예산을 들여 중소기업 취업 장려금을 만들고, 복지제도를 개선해도 청년들은 알고 있다. “이 사회에서는 대기업에 가야 하는구나.”

예산 몇 푼 쏟아 붓는다고 바꿀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한 번의 실수로 폐업 문턱에 서는 중소기업과 끝없이 기회가 주어지는 대기업의 ‘보이지 않는 차이’가 문제의 본질이다. 대한민국 기업수의 99%, 종사자의 88%는 중소기업에서 나온다. '청년들의 높은 눈높이' 문제가 아닌 조금 더 근본적인 시각에서 취업난을 바라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