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버나드 쇼 묘비명의 '우물쭈물'은 오역이었다
2018-08-02 19:38
재미는 있지만, 원문의 강조점은 그게 아니었다?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어."
일상에서 뱉은 말이라면, 흔한 표현이겠지만 이 말이 죽은 이의 묘비명에 적혀 있다면 인상적인 파격이라 할 수 있죠. 그것도 평생 익살과 언어재치로 시대를 풍미했던 노벨상 작가였다면, 그 말은 '명언집'에 오를 만해집니다. 아일랜드 작가 버나드 쇼(1856-1950)의 묘비명은, 죽음 앞에 무력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이 보여준 천연덕스런 익살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죠.
하지만 원문을 곰곰이 뜯어보면, 번역이 살짝 '오버'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이 말 중에서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가 '우물쭈물 하다가'로 번역될 수 있는지가 문제입니다. stayed around는 '지상(地上)을 떠나지 못하고 어슬렁거리다가' 정도의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쇼는 95세까지 살았기에, 저런 표현이 어울린다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뒷문장의 의미를 받쳐줍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는 뒷말에, 앞의 '우물쭈물 하다가'가 붙으면, 죽음에 대한 준비가 없어서 후회하는 모양새가 됩니다. 스스로를 자책하는 유머라고 생각한 거죠.
하지만 쇼의 뜻은 그게 아닌듯 합니다. 앞의 말은 단순히 '내가 충분히 오래 이 지상에 어슬렁거렸지만'이란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즉, '용케도 죽음을 피해가며 오래 살긴 했지만'이란 정도의 말입니다. I knew(......)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은 이런 것(죽음을 가리키는 말)이 올 줄 알았다는 뜻이죠. 지금껏 죽음이 나를 비켜가긴 했지만, 언젠가는 내게도 일어날줄을 알고 있었어,라는 기분의 말입니다. 쇼가 유머로 삼은 것은, 죽음을 마치 하찮는 녀석을 대하듯, something like this(이따위 것)로 표현한 것입니다. 요절하든 장수하든 어쨌든 죽음은 불쑥 찾아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얘깁니다.
'내가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죽음을 각오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또다른 오역을 하는 이도 있더군요. 여하튼, 쇼의 말은 인생을 우물쭈물 산 것이 포인트가 아니며 그 결론으로 '이럴 줄 알았다'는 후회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래 살긴 했지만 나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거야 알고 있었지. 이 말입니다. 교훈으로 삼을 명언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ㅋ
이상국 아주닷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