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헬기' 수리온은 어쩌다 '살인 헬기'가 됐을까?
2018-07-24 08:15
해병대 마린온 헬기 사고로 순직한 김정일 대령(45), 노동환 중령(36), 김진화 상사(26), 김세영 중사(21), 박재우 병장(20)이 23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이들은 지난 17일 포항공항에서 정비를 마치고 시험비행에 나섰다가 변을 당했다.
마린온에 함께 탔던 김용순 상사는 생존했으나 위독한 상태다. 참으로 허무한 사고였다. 이륙한 지 몇 초도 되지 않아 메인로터(주회전날개)가 떨어져 나갔다. 날개를 잃은 마린온은 10m 상공에서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이윽고 맹렬한 불길이 기체를 휘감았다.
숯덩이로 변해 돌아온 남편과 아들을 보며 유족들은 오열했다. 청와대는 사고 다음 날 마린온의 원형 헬기인 수리온의 성능은 세계 최정상급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예견된 추락이라는 전문가들의 반박이 이어졌다.
◇ 처음부터 무리하게 추진된 한국형 헬기 사업
문제의 발단은 문민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0~1970년대 도입된 UH-1H, 500MD, AH-1S 코브라 공격헬기를 대체하기 위해 KMH(한국형다목적헬기) 사업이 1995년 추진됐다. 정부의 야심 찬 계획은 외환위기로 빛을 보지 못했다.
정부의 기대와 달리 KMH 사업은 환영받지 못했다. 기술적인 어려움과 엄청난 사업비용 문제로 언론의 뭇매를 맞았다. 비난 여론도 계속해서 높아졌다. KMH 사업은 다시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표류했다.
이 사이에 정권은 참여정부로 바뀌었다. KMH 사업 논란은 정치적 쟁점으로 비화했다. 그러다 2003년 말 감사원의 특별감사가 진행됐다. 감사원이 내놓은 결론은 타당성 재검토였다. 얄궂은 시간은 또 정처 없이 흘러갔다.
2004년 12월 더는 노후 헬기 교체사업을 미룰 수 없는 시점에 이르자 정부는 우선 기동헬기만 만들기로 했다. 사업명도 KHP(한국형 헬기) 사업으로 변경했다. 사업이 축소되면서 예산도 15조원에서 5조원으로 줄었다.
책정된 예산 중 연구개발비는 1조3000억원에 불과했다. 개발 기간도 6년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과거 500MD나 UH-60 등을 면허 생산한 게 고작인 우리나라에서 적은 비용과 짧은 개발 기간으로 국산 헬기를 만들어내겠다는 계획 자체가 무리였다.
헬기제작 기술을 수십년간 축적한 유럽과 미국 등에서도 신형 헬기를 완성하려면 10년 이상의 개발 기간과 3~5조원의 개발비가 투입되는 까닭이다. 이런 탓에 선진국에서도 여러 국가나 기업이 공동으로 개발하는 사례가 많다.
◇ ‘일단 하고 보자’… 땜질식으로 진행된 사업
시행착오를 겪을 시간도 비용도 모두 부족했다. 이에 따라 KHP 사업은 국산화율 목표를 기존 70%에서 50%로 낮추고 개발 방식도 독자개발에서 외국업체가 제안한 원형 기체를 토대로 국산화하는 식으로 수정됐다.
1년여의 우여곡절 끝에 단종된 H215short 쿠거(Cougar)를 제시한 유로콥터(現 에어버스 헬리콥터)가 협력업체로 선정됐다. 2005년 말 드디어 KHP 사업이 시작됐다. 당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국방과학연구소(ADD), 한국항공우주연구소(KARI) 3개 기관이 사업을 주도했다.
개발 과정도 순탄치가 않았다. 2만파운드급 쿠거를 1만7000파운드급으로 축소 설계하는 형태로 제작하면서 이런저런 문제가 불거졌다. 엔진 2개가 기체 상부에 있어 전고가 높고 기체 폭이 좁아 KHP 사업단은 폭을 2m에서 2.2m로 넓히려고 했다.
유로콥터는 이를 강경하게 반대했다. 동체 형상이 기존 쿠거와 달라지면 진동특성 등이 달라져 새로운 헬리콥터를 개발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주장이었다. KHP 사업단의 요구는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대신 동체 좌우에 발판을 추가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헬기가 완전히 착지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병력이 뛰어내릴 때 부상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기체 바닥 높이를 낮춰야 한다는 군의 요구 사항에도 유로콥터는 난색을 표했다. 높이를 낮추기 위해 바닥에 있는 연료탱크를 옮기면 무게중심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비행제어 시스템과 관련 소프트웨어를 변경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개발일정과 비용 등이 발목을 잡았다. 연료탱크 용량을 줄이는 것 외에 방법이 없었다. 자연히 최대비행시간도 3시간 30분에서 2시간 50분으로 줄어들었다.
엔진과 기어박스도 문제였다. 군수보급상 편의 문제로 쿠거의 말리카 1A1 엔진이 아닌 군이 운용 중이던 UH-60의 T700-701C 엔진을 사용해야 했다. 문제는 두 엔진의 특성이 완전히 달랐다는 점이다.
T700-701C 엔진이 기어박스를 후방에 배치하는 전방출력방식이지만 말리카 1A1 엔진은 후방출력방식이었다. 출력방식을 바꾸기 위해 제너럴일렉트릭사가 T700-701C 엔진을 개조, T700-701K를 개발했다. 그러나 무게와 출력 등 두 엔진의 세부적인 특성은 고려되지 않았다.
◇ 우려가 현실로… 얼마나 많은 희생이 필요할까?
개발 시작 4년 만에 초도비행이 이뤄졌다. 개발시험 평가와 운용시험평가는 4개월 만에 끝났다. 엔진 교체와 설계 변경으로 발생한 진동과 방빙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2012년 12월부터 일선 부대에 실전 배치됐다.
세계 항공업계에서 전례가 없던 속도전이었다. 그렇게 한국형 기동헬기 수리온(KUH-1)이 탄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결함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는 헛된 희망이었다. 어쩌면 의도적인 착각이었을 것이다.
수리온은 2013년 2월부터 3년간 5차례 윈드실드(전방유리)가 파손됐고 2014년 8월 육군항공학교에서는 수리온 16호기가 메인로터 블레이드(프로펠러)와 동체 상부 전선절단기 충돌로 엔진이 정지됐다.
2015년 1월과 2월에는 육군항공학교에서 비행훈련 중이던 수리온 2대가 엔진과속 후 정지돼 비상착륙했으며 같은 해 12월에는 수리온 4호기가 같은 결함으로 추락했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모두 기체 결함 탓에 발생한 피할 수 없는 사고였다.
지난해 5월 수리온 상부 프레임에서 균열이 발견됐고 정부는 60여 대 수리온 헬기의 전수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다른 8대에서도 같은 문제가 확인돼 20일간 모든 헬기 운항이 중단됐다. 원인은 역시 기체 결함.
2달 뒤 감사원 감사결과가 나왔다. 감사원은 수리온이 결빙 성능과 낙뢰보호 기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엔진 형식인증을 거치지 않아 비행 안전성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는 등 전투용은커녕 헬기로서 비행 안전성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전력화됐다고 평가했다.
이번에 추락한 마린온도 수리온의 고질적인 문제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기체 떨림 현상이라는 기계적 문제와 빨리빨리 문화라는 사회 구조적 문제였다. 마린온은 2013년 7월 1일에 개발을 시작, 2015년 1월 19일 초도비행이 진행됐다. 개발 기간이 겨우 1년 6개월이었다.
수리온에서 제거했던 연료탱크를 추가하고 함정 착륙을 위해 블레이드를 접을 수 있도록 개조했다. 충분한 검증 절차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지난해 말 해병대에 마린온이 인도됐다. 정확한 사고원인은 앞으로 밝혀지겠으나 인재로 귀결될 것으로 보인다.
기체 결함이라면 개발 계획과 과정에 참여한 이들의 책임이다. 정비 불량이라고 해도 책임은 기술의 숙련도가 쌓일 틈도 주지 않고 성급하게 전력화를 결정한 이들의 몫이다. 이번에도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더 많은 장병의 희생을 치러야 할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