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필팩, 안주하던 의약업계에 경종을 울리다

2018-07-20 06:00
아마존, 온라인 약국 필팩 10억 달러에 인수
"의약품 시장, 소비자 중심으로 변화 촉진할 듯"

[사진=필팩 홈페이지]


지난달 28일 월그린 주가가 10% 가까이 곤두박질쳤다. GE를 밀어내고 다우지수에 편입되어 거래를 시작한 지 사흘째였다. 대형 호재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급락한 것은 아마존이 온라인 약국 필팩(PillPack)을 10억 달러(약 1조1300억원)에 인수한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의약품 공급·유통 업체들의 강한 유착관계 속에서 제약시장 진출에 고전하던 아마존이 필팩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얻으며 의약품 업계에 높은 장벽을 무너뜨리는 순간이었다.

한국에서는 모든 의약품의 온라인 판매가 불법이지만 미국은 다르다. 미국에서는 두통약, 해열제와 같은 상비약뿐 아니라 당뇨병, 관절염 등 환자가 의사에게 처방 받은 조제약도 온라인으로 구입할 수 있다. 미국 전역에서 의약품 유통면허를 가진 필팩은 환자들을 위해 처방약을 가정에 배송해주는 의약품 유통업체다.

'정시·정량 배달'을 내세운 필팩은 '고객 경험'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고객이 홈페이지에 회원가입을 하고 평소 이용하는 약국 정보를 입력하면 필팩 담당자가 고객의 처방전을 양도받아 1회분씩 담아 각 가정에 배송한다. 추가 진료 없이 처방전만 다시 받아야 할 경우엔 필팩이 해당 병원에 연락해 처방전도 대신 받는다. 고객이 받는 약봉지마다 약을 복용해야 하는 날짜와 시간, 약품 목록이 상세히 적혀 있다. 처방약뿐 아니라 천식 호흡기와 같은 의료용품 및 영양제, 비타민도 배송받을 수 있다. 거동이 불편한 노년층이나 만성질환 환자들의 호응이 크다.

다만 의약품 시장에서 필팩의 존재감은 여전히 작은 점에 지나지 않는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016년 미국의 소매 처방약 시장 규모는 3286억 달러로 집계된다. 그러나 필팩의 2017년 매출은 1억 달러를 간신히 넘었다. 비교하자면 월그린의 2017년 매출은 301억 달러다. 또한 필팩 이용자는 아직 4만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포브스는 장기적으로 보면 아마존의 필팩 인수는 큰 잠재력을 가졌다면서 네 가지 이유를 들었다. △필팩이 50개 주 전체에 유통 면허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마존은 큰 비용이나 시간을 들이지 않고 미국 전역의 의약품 시장에 곧장 진입할 수 있고 △필팩 서비스 대상이 노년층에 몰려 있는 만큼 전자상거래에 익숙하지 않은 고객들을 흡수할 수 있으며 △만성질환 처방약의 특성상 꾸준한 수입이 보장되고 △의약품 유통망을 확보함으로써 아마존의 생태계를 더욱 확대할 수 있다는 게 그것이다. 

블룸버그는 아마존의 필팩 인수가 시장에 특히 큰 충격을 준 것은 안주하던 제약업계에 경종을 울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제약업계가 공고한 장벽 뒤에서 이익을 챙겨왔다면, 고객 경험을 우선하는 필팩이 아마존을 만나면서 업계에서 소비자가 중심이 되는 긍정적 변화를 촉진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드러그 채널 연구소(DCI)의 애덤 페인 CEO는 "18개월 안에 중대한 시장의 변화를 목격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아마존은 다방면에서 의약품 시장의 수익 구조에 도전을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약 컨설팅업체인 ZS어소시에이츠의 하워드 도이체 회장은 "'알렉사, 고지혈증 약 좀 보내줘'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