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창원 와이드인터뷰]대한민국 '가치'를 지키는 것이 진짜 보수
2018-07-09 15:13
내년 '임정100년'의 국가대전환을 꿈꾸는 여당의원…나는 민주 속의 '보수'다
# 가짜보수가 사라진 자리에 누가?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왜 보수가 맥없이 무너졌을까. 지금도 그 진앙(震央)에서 헤어나지 못한 야당이 내분을 거듭하고 있는데, 한 여당 의원이 뼈있는 일갈을 했다.
그들이 과연 대한민국의 '가치'를 지켜왔는가. 역사의 정통성을 보수(保守)해 왔는가, 아니면 자신이나 패당(牌黨)을 보수하느라 바빴는가. 그런 자문부터 하지 않으면 , 역사적 모순의 존재인 가짜보수 정당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가짜보수가 사라진 자리에, 현재의 여당인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진보진영이 핵분열을 하여, 건강한 진보-보수 구도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게 누구의 말일까. 더불어민주당 표창원(表蒼園, 52세, 용인)의원이다. 지난 7월 6일 인터뷰 자리에서였다. 표 의원의 말은, 공황상태인 야당을 공격하기 위해서 한 말이 아니었다. 정치가 국가와 역사의 가치를 지키는 본원적인 일을 해왔느냐는 반성적인 질문 끝에 나온 말이었다.
이날 인터뷰는, 대한민국 독립운동사를 제대로 자리매김하는 활동을 부지런히 해온 그의 근황을 듣기 위한 자리였다. 의원회관에서 마주 앉은 표 의원은, 주제가 주제인 만큼 살짝 긴장한 표정이었다. 사람을 꿰뚫어보는 듯한 프로파일러 출신의 날카로운 호안(虎眼)이, 마주 앉은 기자도 함께 긴장시켰다.
표 의원은 올들어 울산, 광주, 대구, 제주 등 항일유적지 4곳을 순방하며 토크콘서트를 해왔다. 항일운동은 대개 만주나 서울 같은 곳에서 펼쳐졌을 것 같은데, 의외로 남쪽 지방부터 들렀는지라 그 점부터 물었다.
"내년은 임시정부 100주년인데, 전국민이 모두 스스로의 기념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지역콘서트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지역마다 항일 자취가 없는 곳이 없다는 걸 알게 됐죠. 36년 강점통치 동안 저항이 없었던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문제는, 이런 것들이 보존도 잘 되어 있지 않고,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았다는 점입니다."
# 항일은 전국 곳곳에 있었다, '깨달음의 콘서트'
인상적인 곳을 물었더니, 모두가 인상적이었다며 순방의 세세한 기억들을 풀어놓는다.
"제주는 일제가 태평양전쟁의 마지막 전투장으로 생각했던 곳이었어요. 자연동굴은 물론이고 인공동굴까지 조성해서 중국을 공격할 가미가제 폭격기를 배치하려 했고, 또 해양절경 속에 인공동굴 같은 걸 만들어 전투선박을 숨겨놨어요. 그런 공사를 하느라 제주도민을 동원해 노역을 시켰죠. 섬뜩하더군요. 1945년 8월 원폭투하가 없었더라면, 제주가 일제의 병기고(兵器庫)가 될 뻔 했어요. 또 제주해녀들의 3·1운동과 항일 유적지도 인상적이었어요. 거기에 4·3유적까지 있으니, 한국 현대사가 압축된 현장이었죠."
이어서 대구, 울산, 광주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졌다. 대구 동성로는 젊은이 거리로 유명하지만 사실은 3·1운동 현장이었다. 포정동에 하나은행 건물(당시 조선은행 대구지점)이 있는데 의열단 장진홍 열사가 폭탄공격을 했던 장소인 것을 아는 이가 별로 없다. 이 사건으로 저항시인 이육사와 그 형제들이 옥살이를 하게 됐다는 것도 말이다. 또 국내 최대 독립유공자 묘역인 신암선열공원 또한 인상적이었다.
울산에선 장생포 지역의 두 풍경을 보고왔다. 그곳은 조선시대부터 일본인들이 많이 이주했던 곳이다. 일본인 거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사립 보성학교가 세워졌는데, 항일운동가들이 많이 배출된 역사적인 명문이다. 그런데 일본인 거리는 지자체가 시비(市費)를 들여 복원했는데, 보성학교는 터도 사라지고 일반주택들이 들어차 있다. 이게 우리 현실이라는 걸 실감했다.
광주에선 의병대장의 은거지를 찾아갔다. 산 속 깊은 곳에 숨을 헐떡이며 올라가 보니, 작은 동굴이 하나 나왔다. 들어가보니 그곳이 항일투쟁을 벌이던 곳이었는데, 갑자기 박쥐가 푸드덕 날아올랐다. 일반사람들은 여기가 등산로일 뿐이지 유적지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다. 향토사학자들도 가끔 찾아가다가 숲이 우거져 길을 잃는 실정이다. 우리가 항일유적지를 대하는 방식이 대개 이렇다는 생각에 마음이 답답하다. 이런 걸 하나하나 돌아보니, 국민 전체의 항일운동을 개관할 수 있는 눈이 생기는 건 분명하다.
# 나는 '보수'로 자라, 경찰이 된 사람
생생한 체험을 듣고나니, 인터뷰 초두에 '항일운동 투어'부터 하고난 기분이었다. 그가 왜 이렇게 항일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게 됐는지 궁금해졌다. "경찰 이력이 있는데, 경찰은 대개 보수적인 신념을 지니고 있는 게 아닌가요? 그런데 정당은 민주당을 택하셨고, 독립운동은 또 보수의 전유물처럼 여겨질 때도 있었는데, 독립운동의 역사를 찾아나선 까닭이 뭔지...혹시 성장 환경 속에 까닭이 있었는지요?"
이 질문에 성장사(成長史)가 슬며시 흘러나왔다.
"성장과정에서의 영향이라면 부모님 영향이 가장 크죠. 아버지는 북한의 지주계급이었는데 공산화 이후 탄압을 받으면서 개별적으로 월남을 했지요. 아버지는 6남매 중 장남이었어요. 감시를 피해 여섯 명이 각자 요령껏 남쪽으로 오기로 약속을 했는데, 아버지는 17세 때 집단농장에서 서기 일을 보다가 남쪽으로 왔죠. 나머지 형제자매는 아무도 못 왔죠. 남하한 뒤 군에 가려고 하니 17살짜리를 받아주는 곳이 해병대 밖에 없어서 그곳에 자원했죠. 포항 해병사령대에서 근무하다가 포항여고를 갓 졸업한 어머니를 만났다고 해요."
그때가?
"1953년, 전쟁 직후였던 것 같아요. 외가는 골수 경상도로 대대로 선주(船主) 집안이죠. 일제는 어선을 징발해 군선(軍船)으로 썼죠. 모두 빼앗기고는 차용증 하나를 달랑 받았는데, 보상도 못 받았습니다. 제가 듣고 자란 게 뭐겠습니까? 아버지에게는 자나깨나 반공(反共), 어머니에게선 죽으나사나 항일(抗日). 국민학교(초등학교) 시절엔 도산 안창호 전기(傳記)를 무척 감명깊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안창호 선생이 사람들에게 '나라를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을 때 사람들이 '나라가 없으면 어떠냐'고 반문하자, '나라 없는 사람은 부모가 없는 사람과 똑같다'고 설명해주던 장면이 선명합니다."
이런저런 정황으로 볼 때 '보수적인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겠는데요?
"어린 시절부터 보수적 민족적 국가주의적인 공기 속에서 살아왔죠. 거기에 박정희와 전두환 시기에 영남에서 초중고를 다녔으니... 그나마 다른 친구들은 학생운동을 하면서 의식화도 하고 새로운 생각을 만나기도 했지만, 저는 경찰대학을 갔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 보수라는 건, 정치적 신념이라기보다는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순수한 충정 같은 게 아닐까요?
"맞아요. 그래서 정치나 이념 같은 것엔 관심이 없었죠. 국가, 민족, 애국 같은 것에 마음이 설렜는데, 이 모든 걸 관통하는 건 '정의'라는 걸 알게 됐어요. 무조건적인 애국을 지향한 건 아닙니다. 안창호나 김구선생 같은 독립운동가가 대부분 교육자이며 철학자죠. 그분들 말씀 가만히 새겨보면 탄탄한 논리적 근거가 다 있어요. 단순히 우리나라니까 지키는 게 아니라, 평화사상이나 애민사상을 바탕으로 한 애국이죠. 그 안에 정의라는 개념이 있는 거죠. 옳고 그름에 대한. 불법 강탈하면 안되고, 규정규칙 어기면 안되고, 속이며 거짓말 하면 안되고..."
# 진보정당이 나의 정치철학과 맞나 고민도
그런 '순정(純正)보수'가 바뀌게 된 계기가 있나요?
"2012년 국정원 사건이죠. 내게는 상대진영이고 늘 거리가 있었던 대상, 경찰관 시절에 방패 들고 돌맞으며 싸우며 적대했던 분들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 같습니다. 반공 애국주의로 자라면서 종북세력, 사회주의, 진보빨갱이 이런 개념으로 저분들은 이상한 사람이야, 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며 자라왔거든요. 경상도 사람으로 자라나면서, 호남분들 허위, 차별 이런 말도 많이 듣고 자랐거든요. 그런데 국정원 사건 때 경찰, 국정원, 새누리당, 정부와 같은 과거의 '우리편'이 나의 가치 철학에 어긋나는 일들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죠. 진실을 가리고 정당한 법집행과 수사를 못하게 하고...이건 아니지 않나 하는 거기서부터 시작된 거죠. 하지만 그때도 난 야당은 아니라는 생각이었어요. 민주당과 문재인이란 인물도 관심이 없었어요."
현직 여당 국회의원으로서, 소속 정당과 집권당이 낸 대통령에게 '지나간 초기감정'일 망정, 관심이 없었다고 잘라 말하는 그의 말은 그러나 레토릭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다만, 그동안 역사 속에서 지나친 색깔론과 이념몰이로 많은 분들이 희생한 것은 분명히 잘못됐다는 강한 인식이 있었어요. 그걸 바로잡고 싶었지요. 이 생각이 나를 예전의 자리에서 밀어냈다고나 할까요. 나의 결단을 시민들이 품어주고 정권교체의 꿈을 함께 꾸면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과 함께하게 된 거죠. 정치를 한다기보다는 정의를 구현한다는 생각을 더 했던 것 같습니다. 정의를 위해 정치를 이용한다고 할까요. 처음엔 내가 이쪽 편에 들어와서 너무 강한 저쪽의 오래된 세력을 혁파하고 정화하자는 생각이었는데, 놀랍게도 꿈 같은 목표가 조기달성된 겁니다. 오히려 요즘은, 진보정당과 함께하는 게 나의 가치철학과 맞나 하는 고민을 하고 있어요."
# 기득권을 챙기던 보수 행세자가 무너진 것
지난 선거에서 보수가 보수(補修)할 수 없을 만큼 무너졌다는 진단도 있는데?
"진보와 보수가 있는데 한쪽이 무너졌다고 하면, 기계적 형평의 관점으로는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글쎄요. 좀더 통시적으로 보자면, 역사 속에서 축적되어온 하나의 모순이 사라진 게 아닐까요? 보수가 과연 보수인가. 난 이런 질문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정말 대한민국의 전통, 문화, 가치,체제를 대표하는가. 그걸 지키기 위한 존재들의 상징이며 대표집단인가. 그랬다면 한국 근본이 흔들리는 거겠죠. "
보수가 진짜보수가 아니라는 뜻인 거죠.
"진보는 변화를 추구하며 현재를 혁파하기에 과거엔 비판적일 수 있고, 때로 과거를 부정하는 인식도 있을 수 있어요. 과거를 부정해버리고 우리 잘못 살아왔으니 새로운 세상을 만듭시다,라고 혁명적인 방향으로 나간다면, 대한민국 100년의 가치는 흔들려 버릴 겁니다. 그런데 속을 들여다 보면 반대인 거죠. 보수라고 주장한 사람들은 왜곡과 허위를 통해 민족의 정통성과 역사적 사실을 가려왔던 점이 있습니다. 장준하 선생 같은 분의 부르짖음을 군홧발로 짓밟은 군부독재를 합리화시키는 일을 누가 했으며, 3·1운동과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분들을 빨갱이와 종북으로 몰았던 이들이 누구냐는 겁니다. 다수의 의식으로 탄핵과 함께 구체제의 종언을 선언하면서 보수 행세를 하던 그들이 무너진 겁니다. 사람들은 말했죠. '저들은 나를 대표하지 않아.'"
# 월드컵 때, 한국 말고 잘하는 나라 응원하라 하면 재미있나요
앞으론 어떻게 될 거 같습니까.
"지금은 잠재 시기입니다. 격변이 있을 것 같아요. 만약에 내부 혁신을 통해 그동안 보수라고 주장하는 세력 내에서 진정한 보수를 만들어낸다면 국민들의 30% 콘크리트 지지는 받아낼 것입니다.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지만 다음 총선이 그런 심판일 것입니다. 만약에 그게 안된다면, 일정기간 동안 더불어민주당 내의 계파 중에서 보수를 대표하는 계파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보수적 민주당과 진보적 민주당. 당내에서 보수적 균형을 잡아가면서 진보적 정책과 활동으로 제대로 된 진보정당을 만들어가는 과도적 기간이 있을 수도 있겠지요."
물론 아직은 다, 시나리오일 뿐이니까...그 말씀 중에서, 역사적 정의를 실천하지 않고 외면한 쪽이 권력의 줄에 서거나 기득권을 챙겨온 것이 진짜 보수냐는 물음은 와닿는 것 같습니다. 국가의 정의에 대한 소견은?
"제가 대한민국 100주년에 힘을 쏟는 이유는, 국회의원으로서 사명이기도 하지만 개인의 문제의식이 중심에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내 존재는 무엇인가.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는 다음 사회는 어떨까. '나'라는 정체성을 놓쳐버리면 의미가 있을까요? 월드컵을 응원하는데, 내 나라를 응원하지 않고, 축구 잘하는 나라를 응원한다면 그토록 깊고 사무치는 감동이 있을까요. 항일의 절박성을 100년 지난 이 시점에서 제대로 점검해보지 않는다면, 가장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는 것이 아닐까요. 아파트 집값만 올려주면 악마에게도 투표할 수 있는 나라라면, 선진국인 미국 같은 나라의 일부가 되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겠죠? 그분들이 무엇 때문에 목숨을 잃어가면서 이 나라를 지키고자 했나? 이 평범한 질문이, 국가의 정의를 말하는 근본적인 출발점이라고 생각해요."
표 의원이 벌인 100만명 서명운동은 뭘 위한 것이었습니까.
2019년 대한민국 100주년을 잘 준비하자는 겁니다. 작년 100주년 위원회 예산이 많이 삭감이 됐는데, 올해는 정말 중요한 시기니까 충분히 예산을 배정해 할 일을 제대로 하자는 서명입니다."
임정수립일 논란은 어떻게 됐나요. 4월 13일이냐 11일이냐 시끄러웠는데...
"1990년대 임정수립일을 지정하면서 참조한 게 일제경찰의 보고서였습니다. 13일로 한 것은 임정수립 사실이 보도된 날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이었죠. 작년 역사학 전문가들과 포럼과 공청회를 열어 정부에 요청을 해서 4월 11일이 받아들여졌습니다. 내년부터는 그 날짜로 변경할 겁니다. 총리도 공개적으로 약속을 했고..."
# 한국에도 에펠탑 같은 게 세워질 수 있을까
3·1운동이나 임시정부 독립운동의 기념물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는데, 에펠탑이나 자유의여신상처럼?
"아마도 100주년 위원회의 고민거리일 겁니다. 에펠탑이나 자유의여신상이 국민들 머리에 가장 잘 떠오를 상징이긴 하지만, 100년 전 상황과 지금 21세기는 다르니까...꼭 물리적 조형물이 필요한 건 아닐 수도 있죠. 2019년을 돌아볼 랜드마크 같은 '기산점'은 필요하니까, 뭔가 준비를 하고 있겠지요."
국회의원으로서 국가 정의 관점에서 항일운동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 인상깊게 남았습니다. 긴 인터뷰에 열정과 진심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국 아주닷컴 대표 (정리=서민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