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획] 국제유가 100달러 시대 올까? 이란 리스크에 불안한 원유 시장
2018-07-05 12:28
시장 전문가들, 연내 100달러 돌파 전망 잇따라 내놔
미국의 제재 부활로 이란발 리스크 확대 영향
국제유가 상승에 가스·니켈 등 원자재 시장도 들썩
미국의 제재 부활로 이란발 리스크 확대 영향
국제유가 상승에 가스·니켈 등 원자재 시장도 들썩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국제유가 변동 요인으로 지목된 것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요즘 국제 원유 시장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미국이 주요 산유국 중 하나인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복원하겠다는 뜻을 본격화하면서 변동성이 더욱 커진 탓이다. 현재 시장에서는 이란발 리스크로 인해 빠르면 연내 '국제유가 100달러 시대'를 맞을 수도 있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 "연내 배럴당 100달러 돌파 가능"...이란 변수로 떠올라
CNBC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원자재 투자 회사인 어게인캐피털의 존 킬더프는 이란산 원유의 수출길이 막힐 경우 오는 4분기 기준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85∼100달러, 최고 105달러까지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국제유가의 기준이 되는 브렌트유는 같은 기간 배럴당 110∼115달러 수준에서 가격이 형성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시장 전문가들이 이런 전망을 내놓은 배경에는 공통 분모가 있다. 이란이다. 이란은 하루 평균 380만 배럴 규모의 원유를 생산하는 세계 3위 산유국이다. 원유 수출량 점유율은 세계 수요의 약 2% 수준을 차지한다. 핵 프로그램 개발을 빌미로 서방 국가의 경제 제재를 받아 한때 원유 생산에 타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2015년 7월 미국과 주요 5개국(영국·프랑스·독일·중국·러시아)이 이란 핵협정(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에 합의하면서 산유량을 경제 제재 이전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했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지난 6월 말부터다. 블룸버그통신 등 다수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국들에 대해 11월 4일까지 이란산 원유 수입을 전면 중단해달라고 촉구했다. 독단적인 이란 핵협정 파기 이후 본격적으로 이란 제재에 돌입한다는 신호탄을 날린 것이다. 미국은 그동안 이란이 원유 수출을 통한 자금으로 핵 개발과 테러 조직 지원 등에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따라서 이번 방침은 이란의 주요 수입원인 원유 수출을 차단해 자금 유입 기회를 원천 봉쇄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후 국제유가는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7월 3일 기준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8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 대비 0.3% 상승한 74.14달러에 마감했다. 2014년 11월 이후 처음으로 장중 75달러를 웃돌기도 했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9월물 브렌트유도 배럴당 0.5% 높은 77.70달러 수준에서 움직이는 등 80달러대를 목전에 두고 있다.
◆ 이란 '블랙스완' 되나...OPEC 산유량 증산 결정에도 우려 증폭
올해 안에 국제유가가 100달러를 넘길 수 있다는 주장은 연초부터 나왔다. 부패 정권에 대한 반정부 시위가 장기화되는 등 이란의 지정학적 위험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란은 주요 산유국의 산유량 감산 합의에서 예외 국가로 인정받아 산유량 증산에 의지를 보였다. 원유 보급 능력에 따라 시장 수급 조절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 이유다.
실제로 올해 첫 거래가 이뤄진 지난 1월 2일 국제유가는 이란의 지정학적 위기에 따라 '심리적 저항선'인 배럴당 60달러를 넘어서며 강세로 출발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 오일프라이스닷컴 등에 따르면 스웨덴 SEB은행의 비아르네 셸드로프 수석 상품 애널리스트는 “이란이 원유 생산을 중단한다면 국제유가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브렌트유는 배럴당 100달러 이상 급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란 산유량의 파급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분석이다.
특히 최근 미국 정부가 이란 제재 재개를 공식화하고 있는 만큼 이란이 원유 시장의 '블랙스완'이 될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기존에는 이란의 원유 수출량 중 120만 배럴을 통제하는 수준에 그쳤지만 새로운 제재 상황에서는 어떤 변동이 생길지 불투명한 상태다. 일단 미국 정부는 그간 제재 예외 대상이었던 여객기 공급 등에 대해서는 오는 8월 6일부터, 석유 수출 등 나머지 부분에 대한 제재는 11월 5일께 제재를 단행한다는 방침이다.
이란 리스크가 높아지면서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 주요 산유국의 산유량 증산 방침도 유가 안정에 도움을 주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주요 산유국들은 유가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산유량을 하루 100만 배럴 증산하기로 합의했다. 유가 반등을 목적으로 하루 180만 배럴 감산하는 데 처음 합의한 지 1년 7개월여 만이다.
최근 유가 상승으로 미국, 인도, 중국 등 주요 원유 소비국의 불만이 커진 데다 글로벌 원유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증산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의 이란 제재로 이란 원유의 공급량이 절반으로 감소하면 글로벌 공급 부족을 초래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의 원자재조사 부문 책임자인 프란시스코 블란슈는 "미 국무부의 (이란산 원유 통제) 메시지가 조금이라도 통한다면 국제유가가 20~25% 오를 가능성이 있다"며 "사우디아라비아에 증산을 요청하는 등 대안을 마련한다고 해도 미국이 이란산 원유 수출을 제로 수준으로 통제한다면 가격 폭등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고 CNBC는 전했다.
◆ "국제유가 상승, 경제성장률 걸림돌"...원자재 시장 영향 주목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5월 공개한 글로벌 경제 전망 보고서를 통해 올해부터 내년까지 2년간 현재의 견조한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보이나 국제유가와 무역전쟁이 경제 성장률 하방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 블룸버그통신 등이 전했다. 지난 1년간 큰 폭으로 상승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로 급등할 수 있다는 전망 속에 심각한 물가 상승 압력과 가계의 성장을 견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유가가 강세를 보이면서 가스오일과 천연가스, 니켈, 구리 등 원자재 가격도 변동성이 높아질 전망이다. 비즈니스 인사이더 등 외신에 따르면 3일 가스오일은 t당 666.60달러로 전날 대비 1.56% 올랐다. 천연가스도 전날보다 0.27% 상승한 1MMBtu당 2.87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니켈은 t당 1만4620달러에 마감하면서 전날 대비 0.31%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니켈은 전기차 배터리의 필수 재료다. 전기차 수요가 높아지면서 니켈 몸값도 덩달아 높아졌지만 미국의 수입차 관세 부과 등 무역 전쟁 우려가 상승폭을 제한한 것으로 보인다. 그외 납은 t당 2405달러로 전날보다 0.29%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안전자산 중 하나인 금도 달러 약세의 영향에 가격이 고공행진하고 있다. 4일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1253.50달러에 거래를 마친 8월 인도분 금값은 현재 1256.70달러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 다만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구리 가격은 전날보다 0.16% 빠진 t당 6580.5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블룸버그통신은 "구리 가격이 최고치를 경신했던 6월 7일에 비해 11% 급락했다"며 "수요 하락과 공급 불균형 등의 요인으로 변곡점을 맞았다"고 해석했다.
한편 이란 통제 카드로 원유 시장의 불안감을 부추긴 장본인인 트럼프 대통령은 오히려 당당한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 트위터를 통해 "OPEC이 석유 가격을 끌어 올리고 있다"며 "지금 가격을 낮추라"고 강조했다. 일주일 새 벌써 두 번째 나온 압박 메시지로, 유가 상승의 책임을 OPEC으로 전가하려는 제스처라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의 관세 폭탄으로 시작된 글로벌 통상 갈등이 글로벌 경제 성장의 변수로 떠오른 가운데 국제유가 변동성에 대한 우려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