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개방 과정에서 미국과 무역 정상화가 핵심
2018-06-28 06:00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최근 베트남 개혁 관련 보고서 분석
베트남은 1986년 공산당 체제는 유지하되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인정하고 해외투자를 유치, 경제성장의 물꼬를 튼 ‘도이머이’(개혁·개방) 정책을 도입했다. 1995년 미국과 국교를 정상화한 후 개혁.개방 정책을 본격적을 추진하면서 괄목할 만한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
최근 권율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과 김미림 연구원이 펴낸 ‘베트남 개혁모델이 남북경협에 주는 정책적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무엇보다도 미국과의 무역협정 체결이 베트남의 경제 발전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베트남은 1986년 개방 조치에 나섰지만 초기부터 서방의 경제제재조치로 어려움이 컸다.
1989년 베트남군의 캄보디아 철수를 계기로 주요 서방선진국의 대 베트남 진출이 본격화하면서 미국은 1990년 8월부터 캄보디아 문제를 중심으로 한 인도차이나 평화정착을 위해 베트남과의 대화를 재개하기 시작했다.
◆ 국교정상화 이행절차 방안이 전환점 돼
1991년 4월 솔로몬 미국무성 아태담당 차관보가 베트남에 제안한 국교정상화를 위한 이행절차 4단계안은 미·베트남 관계의 전환점이 됐다.
로드맵은 베트남에 대한 경제제재 완전 해제와 국제금융기관의 차관허가 개시에 이어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최혜국대우(MFN)를 위한 무역관계의 정상화까지 포함하는 포괄적 이행절차를 담고 있다.
1991년 캄보디아에 평화적인 총선체제가 구축되면서 미국은 예정대로 1992년 12월 임시연락사무소를 개설하고, 1993년 7월 국제금융기관의 대베트남 융자재개를 허용하는 등 부분적으로 경제제재 조치를 해제했다.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 등 국제금융기관의 지원이 본격화되고, 세계은행의 주도하에 제1차 원조국회의가 열렸다.
1994년 2월 미국은 베트남에 대한 경제제재조치를 전면 해제한 이후 같은 해 11월 시티뱅크와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하노이 지점인가를 취득했다.
1995년 베트남이 개혁노선을 추진한 지 거의 10년 만에 미국은 베트남과의 국교를 정상화했다. 국교 정상화 이후에도 MFN을 부여하는 무역협정 체결은 상당기간 지연됐다.
미국의 통상법 402조 잭슨․배닉 개정조항은 베트남에 대한 최혜국 대우를 금지하면서 미국시장 우회수출기지로 활용하기 위한 외국인직접투자 유지에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작용했다.
1998년 8월 미국이 베트남에 대한 개정조항 유보를 결정하면서 미국의 해외민간투자공사(OPIC)와 수출입은행이 자국 민간기업의 베트남 진출을 지원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국교정상화 이후 미·베트남 무역협정 체결 교섭이 9차례 추진되면서 1999년 7월 무역협정 체결에 기본 합의를 했지만, 미국의 시장개방을 위한 경제개혁 확대요구에 베트남 측이 반발하면서 공식 합의는 1년 뒤인 2000년 7월에야 이뤄졌다.
기본 합의 이후 비관세장벽 철폐, 투자환경 개선, 통신 및 서비스시장 개방, 지적재산권 보호 등 대부분 쟁점에서 의견이 엇갈리고, 베트남 측은 미국 측의 통신, 금융, 유통부문의 미기업 진출허용 요구에 일방적 양보라며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 2000년 무역협정 극적 타결
1999년 말 미국이 중국의 WTO 가입을 승인해 미․중 관계 개선이 가시화되고, 동아시아 경제위기 여파로 경기침체가 심화되자 2000년 7월 13일 양국간에 무역협정을 놓고 극적인 타결을 보게 됐다.
베트남은 당시 태국발 경제위기로 내수침체와 주변국의 외국인직접투자 감소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미국과의 무역협정 체결을 통해 외자유치에 역점을 둬야 하는 상황이었다.
2001년 9월 초 미 하원에서 무역협정 체결을 승인하면서 410대 1의 압도적 다수로 베트남에 대한 인권법안을 통과시켰지만 베트남 측이 반발하면서 미 상원 비준과정에서 최종적으로 인권법안 처리는 보류됐다.
2001년 10월 상원의 비준이 마무리되고 집권말기에 있던 클린턴 대통령이 협정발효를 차기정권으로 이양하면서 부시 행정부에서 무역협정의 의회 비준이 이뤄지게 됐다.
미국은 과거 중국에 대해 해왔던 것처럼 매년 교역관계(NTR) 지위를 갱신했는데, 이는 시장개방조치 확대뿐만 아니라 정치․외교적 압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베트남은 세계무역기구(WTO) 조기가입을 위해 2005년을 목표로 관련법 개정 및 제정, 국제규범과의 조화 등 개혁․개방 조치를 강화했지만 2006년 4월에야 WTO 가입을 위한 미국과의 협상이 타결돼 가입협상을 마무리했다.
2006년 11월 WTO 총회에서 베트남은 150번째 회원국으로 가입이 확정되고 12월 미 의회도 항구적 정상무역관계(PNTR)를 승인해 매년 받게 되는 MFN 심사가 자동적으로 소멸되면서 베트남의 대미통상관계는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WTO 가입 이후 외국인직접투자가 급증하고 수출이 늘면서 2008년 일인당 국내총생산(GDP)가 1143달러를 기록해 베트남은 저소득국에서 중소득국으로 진입했다.
미국과의 국교정상화를 전후로 9%를 넘어서던 경제성장률은 아시아 경제위기로 급속히 둔화됐지만 2001년 미·베트남 무역협정 체결로 7∼8%로 회복되고,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6% 대의 안정적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과의 수교 이후 도이머이 2단계에 진입하면서 미·베트남 무역협정 체결까지 지속적으로 외국인직접 투자가 증가했다.
무역협정 체결로 대미 우회수출기지로 급부상하면서 수출이 크게 확대되기 시작하고 WTO 가입으로 2008년 이후 외국인직접투자(FDI)와 수출이 급증했다.
미국과의 국교정상화 이후 미·베트남 무역협정을 체결하면서 대미우회수출기지로서의 투자환경과 진출 메리트가 개선되면서 미국은 2014년 이후 베트남의 최대 수출시장으로 부상하고, EU, 일본 등 주요 선진국으로 시장접근이 개선돼 투자진출이 본격화됐다.
WTO 가입 이후 급속히 외국인직접투자가 확대되고 미국과 EU로 우회수출이 크게 증가된 배경은 베트남이 WTO 규범준수를 위해 투자환경을 크게 개선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