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웅의 데이터 政經] 선거제도 개혁이 노무현 정신이다

2018-06-26 10:58
- 민의를 왜곡하는 정치개혁에 나서야

[최광웅의 데이터 政經]
 

최광웅 데이터정치경제연구원장


6·13 지방선거는 개표결과만 보면 정확하게 2006년 지방선거 데자뷔다. 한나라당 싹쓸이가 12년 만에 더불어민주당 싹쓸이로 바뀌었고 일정한 지지세를 확보한 제3당과 진보정당은 소선거구 상대다수제 아래에서 의석을 거의 확보할 수 없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전국 평균 51.4% 득표율만으로 지역구 시·도 의원 713석(무투표 당선 제외) 가운데 82.5%인 588석을 차지했다. 독일이나 네덜란드와 같은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방식이었다면 유권자 의사를 초과해 반영한 의석이 무려 221석이다. 자유한국당(92석)과 정의당(63석), 그리고 바른미래당(55석) 등 순으로 득표수가 의석에 반영되지 못했다. 이는 민의(民意)를 심각하게 왜곡하는 소선거구 상대다수 제도 때문이다. 2006년에는 한나라당이 초과의석을 161석 가져갔으며,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은 각각 106석 및 72석을 손해 보았다. 호남을 기반으로 한 지역정당인 군소 민주당도 초과의석 7석이 발생했다. 자유한국당은 30년간 특정지역에 기대어 선거제도 개혁을 외면해온 대가를 이번에 톡톡히 치렀다. 정의당은 최근 민주평화당과 함께 공동교섭단체 구성까지 하면서 원내 교섭력을 강화했지만 더불어민주당과의 차별화에 실패하고 여당 2중대 이미지로 굳어진 탓이 크다. 바른미래당은 간판인 안철수 전 대표가 정치개혁보다는 자신의 대권 프로그램 가동에 주력해왔기 때문에 캐스팅보트를 쥐고도 20대 국회 전반기 2년을 허송세월해온 까닭이 가장 뼈아프다.

 

[표=2018·2006년도 지선 정당(광역의원비례대표)투표 개표현황]


한편 지역구 기초의원의 경우도 2~4인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소수정당을 원내로 진출시키는 데 전혀 유효하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수도권 정당 득표율이 52.3%였으나 지역구 기초의원은 62%(무투표 당선 제외)를 가져갔다. 3~4인 선거구에서 2인을 대부분 당선시키고 2인 선거구에서도 1-나 당선자를 상당수 배출했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도 영남권에서 41.4% 정도 지지를 받았으나 지역구 기초의원 의석은 과반수인 51.1%를 차지했다. 역시 2~3인 선거구에서 높은 당선 비율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대신에 바른미래당과 정의당 등 군소정당들이 15% 이상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의석 비중은 겨우 1.3%에 머물렀다. 결국 소수당의 의회진출을 보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된 3~4인 중선거구 제도 역시 두 거대정당의 복수공천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유일한 대안은 비례대표제 확대뿐이다.

소선거구 상대다수제의 폐단은 비단 이번 6·13 지방선거 결과뿐만이 아니다. 총선 때도 소선거구제가 부활한 13대 총선 이후 초과의석 발생과 유권자 대표성의 문제는 지속적으로 거론돼 왔다. 특히 17대 총선으로 1인 2표의 정당투표가 도입됐으나 연동형이 아닌 병립형이고 그 비중도 매우 작기 때문에 소선거구제 아래에서는 지역기반이 취약한 정당은 살아남기 힘들다. 이때부터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계열 정당 모두 오히려 평균 20석 이상 초과의석을 확보해온다. 다만 이 시기에도 지역구도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어서 지역기반이 튼튼한 정당의 경우는 정당투표 득표율과 상관없이 의석을 더 얻는 현상이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특히 지난 20대 총선은 더불어민주당이 정당투표 득표율 3위에 그쳤음에도 지역구 의석은 110석으로 1위를 차지했다.

“지역구도는 반드시 해소되어야 한다. 내년 총선부터는 특정정당이 특정지역에서 3분의2 이상의 의석을 독차지할 수 없도록 여야가 합의하셔서 선거법을 개정해 주시기 바란다. 이 제안이 17대 총선에서 현실화되면 저는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 또는 정치연합에 내각의 구성 권한을 이양하겠다.”(2003년 4월 2일, 국정연설) “정치개혁 방향은 이미 나와 있는 것이다. 선거제도를 고쳐서 지역구도를 반드시 극복해야 된다. 의원 여러분들의 각별한 결단을 촉구한다. 저는 확신한다. 지역구도가 결코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2003년 10월 13일, 2004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 “지난 총선에서 지역별 의석은 지역별 득표수를 반영하지 못했다. 각 당이 불리한 지역에서 받은 득표는 의석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선거구 제도가 지역주의를 오히려 강화한 것이다. 이 제도는 바로잡아 주시면 좋겠다. 국회의원 수를 늘려서라도 지역구도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지역구도는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국민들의 이해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2005년 2월 25일, 국정연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중 세 차례나 국회를 직접 찾아 연설을 했다. 한 번은 2004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이고 나머지는 국정연설이다. 공통분모는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주문이었다. 취임 직후 한 달 만에 행한 첫 국정연설에서 심지어 내각 구성 권한을 이양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까지 들고 나왔다. 2005년 7월 한나라당을 상대로 한 이른바 대연정 제안은 이렇듯 이미 2년도 훨씬 전에 이루어진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예고한대로 지역구도는 서서히 종말을 향해 가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을 향해 애가 타도록 결단을 촉구한 선거제도 개혁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데자뷔는 반복될 수도 있다.

최 광 웅(데이터정치경제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