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커스] MB 정부서 시작된 '한식 세계화'…"첫 단추부터 잘못 꿰"

2018-06-25 07:34
전·현직 담당 공무원들 “한식세계화 사업은 SK에서 시작“
"한식재단 설립 목적 되짚어봐야"…"정부가 아닌 민간 주도였다면 달랐을까"

김선국 기자[사진=아주경제DB]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하는 등 K-POP이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다. 덩달아 한국 문화와 음식 등에 관한 세계인의 관심이 크다. 그러나 한식 문화는 여전히 걸음마 수준이다. 과거 정부가 '한식 세계화'를 추진한 바 있는 데도 말이다.  

이명박(MB) 정부에서 시작된 한식세계화 사업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졌다. 한식세계화는 MB 정부가 SK(SK네트웍스) 기업보고서를 넘겨받으면서부터 정부 관심 사업으로 낙점됐다. 이후 김윤옥 여사를 중심으로 한식세계화 사업이 재편됐고, 정부 주도로 한식 재단을 설립해 이 사업을 추진했다. 정부가 민간 주도 사업에 관여하면서 애초 사업비는 2100억원대에서 150억원가량으로 쪼그라들었다. 정부가 참여하자 민간투자기업이 한식세계화 사업에서 한발 뺐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업비가 대폭 줄어들면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해야 하는 한식 '세계화'는 엄두를 낼 수 없었고, 한식 '내국화'로 전락하게 됐다. 정부 예산까지 엉뚱한 곳에 쓰이며 한식 세계화는 요원한 상태다.

최근 한식세계화 사업과 관련이 있는 전‧현직 공무원과 산하기관 임직원들이 9년 만에 이런 내용을 알려왔다. 2008년 MB정부가 들어서면서 SK는 한식세계화 사업보고서를 정부에 제시했다. 보고서에는 한식세계화를 위해 뉴욕과 파리, 도쿄 등 세계 주요 도시의 랜드마크 4곳에 최고급 한식 레스토랑을 입점시킨다는 내용과 사업추진에 총 2100억원가량이 필요하다는 분석결과가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SK는 해외 인프라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막대한 돈을 들여 단독으로 사업을 시작하기엔 무리였을 것으로 분석된다. SK가 초기 사업 투자 지원을 희망하며 관련 보고서를 정부에 넘긴 이유다.

이 보고서는 청와대 제2부속실과 미래기획위원회에 건네졌고, 주무부처인 농림수산식품부(현 농림축산식품부)에까지 전달됐다. 이 보고서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아보고자 당시 담당 식품산업정책관과 주무과장은 최태원 회장을 대면하기도 했다.

출범 초기부터 ‘광우병 파동’으로 곤혹을 치른 MB정부는 이미지 쇄신 차원에서 한식세계화를 적합한 콘텐츠로 꼽았고, 태국 여왕이 태국음식 세계화에 앞장선 것처럼 영부인인 김윤옥 여사가 한식세계화를 선도하는 모양새를 만들어 갔다.

이후 정부 주도의 한식세계화 사업은 명확한 규정조차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시작됐다. MB정부가 김윤옥 띄우기에만 치중한 나머지 관련 예산만 축낸 사업이 많았다. 3억원짜리 ‘김윤옥의 한식이야기’ 책 제작사업, 50억원 규모의 ‘뉴욕 플래그십 식당‘ 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1인당 식사비에만 수 백만원을 지출했다.

‘눈먼 예산’이 많은 탓에 80개에 달하는 농식품 관련 재단·사단 법인과 관련 업계에서는 ‘한식재단 예산을 못 따면 바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정운천 초대 한식재단 이사장은 재단의 설립 목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모습을 보며 사표를 제출했다. 

정운천 바른미래당 의원은 "5대 발효식품을 통해 우리 식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려고 애썼다”며 “그러나 (한식재단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고, 진정성 있는 한식세계화가 정치적으로 활용되면서 감사까지 받으며 그 의미가 퇴화했다”고 아쉬워했다.

농식품부와 한식재단이 한식세계화 사업을 추진한지 1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한식세계화를 정부가 아닌 민간 주도로 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자못 궁금해진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한식세계화의 설립 목적을 되짚어보며 새로운 전략을 세우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