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우 변호사의 리걸테크 바로알기②] 빅데이터와 AI가 가져올 법률시장 변화

2018-06-23 08:00
안진우 법률사무소 다오 변호사

안진우 법률사무소 다오 변호사 [아주경제 DB]
 

2016년 4월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으로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폭로한 '파나마 페이퍼스'가 있다. 파나마의 최대 법률사무소(로펌) 모색 폰세카에서 조세 회피를 위해 유령회사(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것으로 의심되는 내부자료가 유출된 사건이다. 당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 전·현직 국가 정상과 리오넬 메시 등 유명인이 대거 명단에 포함돼 파란을 일으켰다.

이 사건은 저널리즘은 물론 리걸테크(Legaltech)의 필요성을 각인시킨 사건이기도 하다. 당시 ICIJ에서 입수한 파나마 문서는 무려 2.6테라바이트(TB)에 육박하는 1150만건으로, 이는 위키리크스의 1500배에 이른다. 방대한 양으로 파편화된 자료를 기존 방식으로 분석할 경우 수십년이 소요될 것이 분명했다.

리걸테크의 힘은 이때 발현됐다. 빅데이터에서 가치 있는 정보를 추출하는 분석솔루션을 통해 전 세계 정관계 인사들과 금융기관 간의 흐름 등을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면서 관련 보도는 엄청난 충격과 반향을 일으켰다. 

빅데이터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는 빅데이터 자체가 사회를 바꿀 것이라는 기대다. 그러나 빅데이터는 그 자체만으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다. 빅데이터를 구조화해 연관성 높은 검색이 가능한 상태가 되도록 하는 분석기술이 핵심이다.

이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중요 키워드가 될 것이다. 현재 리걸테크 영역에서 빅데이터 분석 기술은 법률정보 수집·관리와 증거자료 검토·판별 분야, 인수·합병(M&A) 과정에서의 기업실사 등 다양한 법적 문제 해결 과정에 널리 이용되고 있다.

M&A에서는 기업 자산가치를 평가하는 업무로 기업실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가상데이터룸(VDR) 솔루션을 이용한다. 기존 M&A 실사는 보안이 확보되는 물리적인 공간에서 기업 자산과 계약 등을 위한 관련 서류를 모아놓고 엄중한 출입 통제 아래 진행한다.

그러나 최근엔 클라우드에서 합병 관련 서류의 데이터룸을 만들고 어디에서나 복수의 합병 사무 담당자가 모든 자료를 동시에 열람할 수 있게 한다. 이를 통해 검토 시간을 줄이면서도 더욱 정확한 작업이 가능하다. 이런 클라우드 데이터룸에 빅데이터 분석 기능을 추가함으로써 자료 조사의 효율을 높이고 있다.

빅데이터 분석 기술을 결합한 VDR 형태의 클라우드 보안 환경은 M&A 기업실사에만 한정되는 게 아니라 주식시장의 기업공개(IPO) 대상 기업평가나 파산기업 자산분석 등 다양한 법률사무에서의 분석에 활용되고 있다.

데이터가 범람하는 지금 시대에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수많은 법령·판례·논문이나 양형기준 등 방대한 양의 법률정보를 효율적으로 수집·관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법률정보 중 변호사에게 필요한 내용을 선별 제공하는 것이 법률정보 데이터서비스이다.

법률정보 데이터서비스는 단순히 키워드가 포함된 문서를 전부 검색하는 기본적인 형태를 넘어, 데이터서비스가 제공하는 알고리즘을 통해 전체 데이터 중에서도 실질적으로 관련된 내용을 조사·제공한다.

변호사가 법령·판례를 검색하고 검토하는 범위를 방대하게 넓힘과 동시에 그 시간을 대폭 줄여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법률업무 중에서도 인공지능(AI)의 첫 번째 상용화 사례가 될 가능성이 가장 큰 것도 바로 재판에 필요한 자료나 정보 수집 등 법률정보 데이터서비스이다.

이미 판례 어드바이스가 가능한 AI 변호사는 실용화되고 있다. 2016년 IMB의 AI인 ‘왓슨’을 기반으로 개발된 AI 변호사 ‘로스(ROSS)’는 뉴욕의 대형 로펌 베이커앤드호스테틀러(Baker&Hostetler)에 도입돼 파산 관련 판례를 수집·분석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2002년 미국변호사협회는 2016년 변호사라는 직업이 없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고도의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는 변호사 업무가 전적으로 AI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주변부에서 변호사 업무를 대체하는 AI가 빠른 속도로 등장하고 있다.

AI는 재판에 필요한 자료 수집 같은 기본적인 사무 처리 외에도 범인의 개인정보를 통해 분석한 재범률을 바탕으로 재판관의 형량 결정에 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기업 재무제표와 유사 부정 사례를 학습한 뒤 장부 데이터를 해석해 부정 의혹 사실을 발견, 회계 담당자에 보고함으로써 범죄와 부정에 관한 사전예방 기능 수행도 가능하다.

AI는 전자증거개시(E-Discovery·이디스커버리)에서도 활용된다. 실제 파나마 문서의 분석과 해석에 사용된 누익스의 검색솔루션은 검색엔진기술에 AI를 도입해 증거가 되는 데이터를 더욱 빠르고 정확하게 추출했다. 

누익스 솔류션은 이디스커버리와 시스템 리뷰 데이터 분석기술을 사용해 카테고리를 통합, 관련성 높은 문서를 추리한다. 이어 예측코딩작업을 통한 문서패턴·사람·장소·목적을 판별한 후 데이터 항목에 식별자를 부여해 링크함으로써 더욱 효율적인 증거 검토와 판별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나아가 AI의 딥러닝 능력을 적용한 이디스커버리는 지금과는 다른 수준의 문서 리포트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AI가 탑재된 이디스커버리 솔루션은 100만건 규모의 내용 분류를 5분 이내에 끝낼 수 있고, 동시에 추출되는 문서 관련성도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다.

카탈리스트가 개발한 ‘TAR2.0’이라는 이디스커버리 솔루션은 전체의 12% 리뷰 단계에서도 관련성 높은 문서 80%를 추출할 수 있다. 여기에 딥러닝 단계에서 변호사의 검토 자료를 반영해 제출할 문서에 관련성 학습을 거친다면 AI 스스로 생각·분석해 만든 문서의 활용도 가능해질 것이다.

2016년 우리나라에서 열린 ‘국제법률심포지엄’에서 AI 활용 리걸테크 기업 렉스마키나의 창업자 조슈아 워커 박사는 “AI는 인간의 편리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서 인간 자체를 대신할 수는 없다”면서 “그러나 AI는 법률가의 적합한 판단을 지원하고 법적 다툼에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AI가 발전하더라도 인간과 기계 역할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 차이는 인간이 기계를 활용하는 리걸테크의 방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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