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스페셜-임시정부의 맏며느리 수당 정정화⑲] 등장인물:해공 신익희·만오 홍진·소해 장건상

2018-04-19 09:52

[해공 신익희]

해공(海公) 신익희(申翼熙, 1894~1956)
해방후 국회의장 3회 역임… 민주당 창당

경기 광주 출신으로, 1913년 와세다대학 수학을 마치고 귀국해 중동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18년 상해로 건너가 해외독립운동과 연락을 맡으며 만세운동에 일익을 담당했다. 상해임시정부에서 초대 내무차장에 임명된 것을 시작으로, 외무차장, 내무총장, 법무총장, 문교부장, 외무부장 등을 두루 맡았고, 국무원 비서실장과 의정원 부의장을 겸임했다.
해방 직후 여운형 등이 주도한 조선인민공화국의 내각 체신부장에 선임되었으며(귀국 전), 귀국해서는 백범과 노선을 달리해 미군정 하 남조선과도입법의원 의장을 거쳐,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되고, 국회의장을 세 번 연임했다. 1955년 장면, 조병옥 등과 민주당을 창당하고, 이듬해 야당 대통령후보로 출마했으나 선거운동 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중장(重章)이 추서되었다.

 

[만오 홍진]

만오(晩悟) 홍진(洪震, 1877~1946)
대한제국 판사 … 임시정부 의원장 의장

충청북도 영동 출신으로, 법관양성소(法官養成所)를 졸업(1898)하고, 대한제국에서 판사 및 검사로 일했다. 경술국치 직후 검사직을 사임하고, 서울에서 변호사로서 독립운동가들의 변론에 진력했다. 만세운동에 가담한 뒤, 한성임시정부를 조직해 법무차장에 선임되었다. 상해로 망명, 임시정부 법무총장, 내무총장, 외무총장, 국무령으로 활동했다.
1927년 말 임시정부 대표로 만주지역에 파견되어 신민부, 정의부, 참의부 및 교민단 지도자들을 설득해 한족자치연합회를 결성했고, 한국광복단체연합회(1937.7)를 출범시키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1940년 통합 한국독립당 창당에 참여, 중앙감찰위원장에 선임되었고, 1942년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에 피선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소해 장건상]

소해(宵海) 장건상(張建相, 1883~1974)
초기 공산당 지도자… 해방 후 혁신당의 이끌어

경북 칠곡 출신으로, 유년 시절 한학을 하고, 신학문에 입문해 게일(J. Gale) 목사로부터 영어를 배웠다. 와세다대학 정치학과에 입학했으나 독립군 투신을 모색하며 미공사관 무관에게 군사훈련을 받다 발각되어 퇴학당하고, 게일 목사의 주선으로 미국에 유학했다. 대학 졸업 뒤 1917년 상해로 가서, 예관 신규식이 설립한 동제사(同濟社)에 가입했으며, 임시정부 외무차장에 임명되었다.
1921년 이르쿠츠크 고려공산당대회에 참석해 정치부위원으로 선출되어,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3인터내셔널 3차대회에 참석, 레닌과 만났다. 코민테른과 이르쿠츠크 고려공산당 사이의 연락업무를 담당했고, 의열단으로 활동했다. 해방 후, 여운형과 노선을 함께 했고, 1950년 총선에서는 옥중출마로 전국 2위 최다득표로 당선되었다. 이승만-박정희 정권 기간 혁신당 운동을 이끌며, 수차 투옥되었다. 1986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