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일본 기업의 과감한 변신, 시사점 크다
2018-04-16 13:14
- 한국·중국과 무모한 양적 경쟁 지양, 주력업종 전환 서둘러 -
일본 제조업의 자존심, 소니의 부활은 마른 수건도 쥐어짠다는 처절함에서 비롯되고 있다. 한 때 우쭐했던 관료주의적 사고와 관행은 모두 쓰레기통에 집어던졌다. 게임·반도체·금융·음악 등 4개의 축을 중심으로 8개 사업 부문이 흑자를 시현하면서 약진의 발판을 구축했다. TV의 경우는 한국·중국과의 경쟁을 회피하기 위해 프리미엄에만 집중, 이 부문에서 1위를 탈환했다. 이를 두고 소니의 ‘프리미엄 시프트’라는 용어까지 생겨날 정도다. 삼성전자와 맺고 있던 LCD 패널 합작 사업도 접었다. 판매량에만 의존하던 사업은 더 이상 집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디지털 카메라 부문도 고급 기종에만 집중하여 수익을 끌어 올리고 있다. 문제는 한자리수 점유율로 떨어진 스마트폰 사업의 재건이다. 소니의 자존심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는 더 많다. 가전 주력기업인 히타치는 한국·중국에 밀린 전자 부문 사업을 포기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 주력 사업이었던 반도체·디스플레이·TV·HDD(하드디스크드라이브) 등을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기술우위가 확실한 대형 공장설비, 풍력발전, 엘리베이터 등 덩치가 큰 산업을 주력업종으로 선정하였다. 그 결과 연간 8∼9조 엔의 매출에 5000∼6000억 엔의 영업이익을 실현해내고 있다. 파나소닉의 경우도 2017년 상반기 매출액으로 주력인 가전(1조 3274억 엔) 부문보다 차량용 부품(1조 3430억 엔)이 넘어서는 등 주력업종 전환이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잃어버린 20년 기간 중 수천억∼수조억 엔의 적자에 시달렸던 파나소닉·미쓰비시전기·후지쯔 등 가전업체와 도요타·혼다·닛산·스바루·이스즈 등 자동차 기업에 덴소·신에쓰화학·TDK, 무라타제작소·도레이 등 부품·소재 기업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기업이 최근 10년 내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다. 모두가 위기극복의 수단으로 본업(本業)을 포기하는 강수를 둔 것이다. 한국과 중국 기업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는 전략으로 선택한 고육지책인 셈이다. 특히 기술적 우위에 있는 분야를 집중적으로 발굴해 이 부문에 집중적으로 투자, 수익 극대화를 실현해내는 전략적 수정이라고 봐야한다.
중국과의 도토리 키 재기 식의 무모한 경쟁 지양, 선택과 집중 필요
일본 기업의 이러한 변신은 우리 기업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엄청난 속도로 따라오는 중국에 대해 계속 우리 뒤에만 있으라고 하는 것은 가능치도 않고 그렇게 될 리도 없다. 더 이상 도토리 키 재기 식의 무모한 양적 규모의 경쟁은 무용지물이며, 우리에게 유리하지도 않다. 이제부터는 모든 산업 분야에서 중국보다 앞서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선택과 집중을 하여 그들과 일정 수준의 격차를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가는 것이 보다 현명하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전기차 배터리, 프리미엄 가전, 수소차, 해양플랜트, 화장품, K-콘텐츠 등의 분야에 특화해야 한다. 일본 혹은 중국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추가적으로 찾아내는 일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
제조업 강국이 되기 위한 중국의 욕심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반면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은 중국 제조업의 부상을 저지하기 위해 핵심 기술의 유출에 대안 억제력을 더 강화해 나갈 것이다. 갈 길 바쁜 중국의 앞에 장밋빛만 있는 것이 아니고 암초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중국의 의중을 꿰뚫고 있으면 우리의 행동반경이 그만큼 넓어지고, 손해 보지 않는 전략·전술을 구사할 수 있는 폭도 넓어진다. G2 통상 전쟁에 따른 새우등 타령만 하지 말로 철저한 손익 계산을 통해 피해는 최소화하고 반사이익까지 시야에 넣어야 한다. 죽는 길보다는 사는 길에 설 수 있는 큰 안목과 디테일한 지혜가 더 중요해지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