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의 하이브리드角] 4월의 제주와 남북정상회담

2018-03-27 17:09

 


서울내기 육지 사람, ‘뭍것’에게 제주올레길은 축복이다. 서울 김포공항에서 1시간여 만에 도착해 올레길 위에 설 때마다 ‘이게 실화냐’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치유의 길에서 육체의 고통은 낙(樂)이 된다. 간단치 않은 삶을 되돌아보며 하는 되새김질은 약(藥)이다. 길을 걸으며 숙성(熟成)된다.

축복이자 위로, 즐거움인 제주올레에 피와 슬픔이 깃들여 있는 건 아이러니다. 제주올레 18코스는 ‘제주의 부엌’ 동문시장 근처에서 시작해 제주시민들의 뒷동산인 사라봉을 지난다. 사라봉과 이웃한 별도봉을 휘휘 지나면 시야가 탁 트인다. 바닷길이 시원하다.

하지만 시원함은 이내 사라지고 가슴이 서늘해진다. 발걸음도 무겁다.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 때문이다. 제주시 화북동 4440번지 일대. 한라산에서 흘러내린 화북천이 짙푸른 바닷가와 만나는 양지 바른 언덕. 한 눈에 봐도 참 좋은 땅이다. 그러나 돌담만 덩그러니, 집터만 남았다.
 

4·3 사건 당시 마을 전체가 불타 없어진 곤을동 마을 집터에 잡초만 무성하다. 곤을동은 항상 물이 고여있는 땅이라는 뜻으로, 고려 충렬왕 26년(1300)에 별도현에 속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유서 깊은 마을이었다. [이승재 기자]


1948년 4월 3일, 이른바 제주 4·3 사건 당시 이 마을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이 곳 표지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4·3이 일어나기 전 별도봉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안곤을’에는 22가구, 화북천 두 지류의 가운데 있던 ‘가운데곤을’에는 17가구, ‘밧곤을’에는 28가구가 있었다.” 그러나 집은 모두 불타 사라졌고 사람들은 죽임을 당했다.

대한민국은 ‘제주 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2조에 4·3사건을 이렇게 정의한다.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이 법을 통과시키기 전 만들어진 진상규명위원회는 ‘4·3 사건은 남로당 제주도당이 일으킨 무장봉기가 발단이 됐다. 단, 강경진압으로 많은 인명피해를 냈고 다수의 양민이 희생됐다’는 진상보고서를 확정했다.

극우진영이 말하는 ‘빨갱이 토벌’은 극히 일부에 그쳤고 무수히 많은 양민학살이 있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정부가 파악한 희생자는 1만4232명, 유족 5만9426명 등으로 모두 7만3658명이 피해자다. 그러나 제주사람들은 죽은 이가 3만여명, 당시 제주 인구 10명 중 1명이라고 본다.

올해는 제주 4·3사건 70주년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4월 대선 후보 자격으로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을 찾아 참배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방명록에 ‘제주가 외롭지 않게, 제주의 언덕이 되겠다’고 적었다. 4·3 유가족들을 만나 70주년 추념식 참석을 약속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이 이 약속을 지켜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바로 4월말 예정된 남북정상회담 때문이다. 분단과 좌우 이념갈등 과정에서 빚어진 참극인 제주 4·3 사건의 희생자, 유족들을 대통령 자격으로 다시 위로해주기 바란다. 그리고 20여일 뒤 남북정상회담에서 만날 김정은 위원장에게 제주4·3을 한반도 평화의 ‘화두’로 던져보면 어떨까. “내가 귀하를 만나기 앞서 제주도를 다녀왔습니다. 70년 전 우리 한반도의 보석인 제주도에서 벌어졌던 이념갈등의 참상, 참극을 다시 직접 봤습니다. 우리 앞으로 싸우지 말고 남과 북, 핵 없는 한반도에서 평화롭게 삽시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제주올레 18코스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