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스페셜-친일女 1호 배정자③]김옥균이 이토 히로부미에게 소개한 조선여인
2018-03-20 14:53
일본 경찰학교에서 사격, 수영, 사교댄스, 승마, 변장술을 배우다
# 고종의 머리카락을 자른 남자의 최후
정병하의 사망일은 아관파천이 있던 날인 1896년 2월11일과 같은 날이다. 최후 무렵의 긴박했던 상황이 날짜 하나로도 훤히 짚인다. 그의 드라마틱한 삶을 조금만 더 들여다보자. 이 사람은 김옥균(1851~1894)이 일본을 방문할 때 그를 수행한 뒤 철저한 개화파 추종자가 된다. 1895년 을미사변 당시엔 궁궐 당직자로 근무하고 있었다. 이 계획된 사변에 그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너무나 크다. 게다가 명성황후가 잔혹하게 죽임을 당한 이틀 뒤에 민씨의 폐비를 주장했으며 그 폐비 문서를 만들기도 했으니 말이다.
결정적인 공분을 산 일은, 1895년 겨울에 벌어졌다. 단발령이 선포된 때다. 고종황제가 시범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정병하가 직접 나서 황제의 머리카락을 잘라냈다. 경무청 앞에서 순검들에게 참살되는 것은 그 이듬해다. 시신은 종로에 전시되고 사람들이 몰려나와 시신을 다시 찢어 절단낸다. 그에게로 향한 민심이 어땠는지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배분남에게 정병하는, 끝까지 뒤를 봐주는 아버지의 동지였다.
"분남아, 인사 드려라."
1885년 동래부사 정병하는 분남에게 일본인 무역상 마츠오(松尾)를 소개했다.
"너는 아무래도 조선에서는 일할 수도 없고 어디를 다녀도 불안하기만 할 것이다. 차라리 일본으로 가서 생활을 도모해보는 것이 나을 것 같다."
# 안경수-김옥균-이토 히로부미로 이어진 분남의 길
15세 분남은 일본으로 가는 배에 올랐다. 어린 소녀였지만 태어나면서부터 밑바닥 삶을 전전한 그녀는 어디라도 무서울 게 없었다. 일본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안경수(1853~1900)다. 당시 32세. 나중에 독립협회의 초대 회장이 되는 이 사람은 일찍 개화에 눈을 떴고 일본을 들락거리며 신문명에 대한 감각을 익혔다. (그는 2년뒤인 1887년에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의 주사로 발탁된 뒤 최초의 주일공사 민영준(閔泳駿)의 통역관이 된다.) 안경수는 그녀에게 아주 특별한 한 사람을 연결해준다. 34세의 김옥균이다. 전해인 1884년 12월4일 갑신정변을 일으켰다가 청나라 군대의 궁궐 침입으로 집권 3일만에 물러난 개화당의 실력자였다. 당시 그는 일본에 망명해 있었다. "배분남이라고?" 안경수의 곁에 서있는 소녀를 향해 옥균은 확인하듯 물었다.
배분남과 김옥균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둘 다 명성황후의 적대세력에 속한 사람이었다. 배분남의 키워드는 배지홍과 정병하다. 대원군 정파의 무리들이면서 명성황후 일파에 맞서 항거했던 사람들이기도 하다. 김옥균 또한 같은 정치적 입장을 지니고 있었는데다, 특히 정병하와는 함께 일을 도모해온 '중요한 기억'들이 여럿 있었다.
매력적인 용모.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지독한 불운을 겪으며 여기까지 온 소녀. '동지' 정병하가 보낸 아이다. 그녀를 바라보는 눈이, 슬그머니 애틋해졌다. 대답도 또랑또랑하고 눈매도 맑은 이 소녀를 어찌 하면 좋을까. 옥균은 메이지 정권의 최고 실력자로 부상한 이토 히로부미(1841~1909)에게 분남을 소개했다. 44세인 초대 내각총리대신에게 그는 말해준다. "명성황후를 유독 증오하는 조선의 소녀입니다. 아비가 그 일당에 죽었습니다."
# 다야마 사다코로 다시 태어난 여자
삶은 가끔 이렇게 마치 전광석화처럼 운명을 바꾼다. 안경수-김옥균-이토로 이어지는 이 연결은 '도망자 소녀' 배분남을 천하의 권력 중심으로 옮겨놓았다. 분남을 처음 만난 이토는 딱 꼬집어 표현하기 어려운 매력을 지닌 조선 소녀에게 마음이 끌렸다. 당차면서도 부드럽고, 투명한 표정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센스가 남다른 그녀는, 무엇보다도 스스로가 조선인이라는 '의식'이 별로 없었다.
이쯤에서 대개 배분남에 관한 스토리들은 '상상'으로 치닫는다. 44세의 이토 히로부미가 15세의 배분남에게 깊이 빠지게 되는 19금의 장면들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이 돋기 시작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차갑게 팩트만 말하자면, 배분남이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였는지 첩실이었는지조차도 선명하지 않다. 세간의 상상과는 달리 주종관계(이를테면 하녀)였거나 좀더 복합적이고 애매한 관계였을지도 모른다. 이런 관계 자체가 아예 없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토는 그녀에게 다야마 사다코(田山貞子)라는 일본 이름을 지어주고, 그의 집인 창랑각(滄浪閣)에서 일을 하며 기거하도록 했다. 배분남이 배정자라는 천추에 잊지 못할 이름으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이토의 아내 우메코(梅子)는 사다코를 양녀로 들일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그때 이토에게는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사다코를 딸로 삼고 일본 경찰특수학교에 입학시켜 사격과 수영, 사교댄스, 승마, 변장술을 익히게 했다. 이토는 그녀를 단순히 기생첩으로 여긴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녀를 조선 병탄에 크게 활용할 계획을 세운 것이다. 배정자, 그는 국망의 시절에 온겨레의 생채기를 더욱 키우는 요화(妖花)의 운명을 향해 내달린다. 이상국 아주T&P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