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연’한 리뷰] 연극 ‘리차드 3세’ 100분간 몰아치는 황정민의 광기

2018-02-27 00:02
방대한 대사 양 너끈히 소화...극 몰입 방해한 일인다역은 아쉬워

배우 황정민이 연극 ‘리차드 3세’로 10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왔다. [사진=샘컴퍼니 제공]



10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온 황정민의 모습엔 어색함이 없었다. 방대한 대사 양에도 막힘없이 흘러가는 극의 전개는 ‘베테랑’ 배우다운 품격을 보여줬다. 누구보다 연습실에 일찍 나와 불만족스러울 땐 벽을 보며 스스로에게 욕할 정도로 자신에게 엄격했던 그의 고된 노력이 무대 위에서 온전히 빛을 본 순간이었다.

연극 ‘리차드 3세’는 개막 전부터 황정민의 연극 복귀작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황정민뿐 아니라 정웅인, 김여진 등 한동안 연극 무대에서 볼 수 없었던 배우들이 의기투합해 어느 때보다 관객들의 기대감이 높았던 작품이다.
 

[사진=샘컴퍼니 제공]



막상 뚜껑을 열어본 ‘리차드 3세’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고전미를 충실하게 담아냈다. 영국 장미전쟁 시대의 실존 인물 리차드 3세를 바탕으로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쓴 초기 희곡인 이번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에 포함되진 않지만 그가 탄생시킨 캐릭터 중 가장 매력적인 악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황정민이 연기한 주인공 리차드 3세는 볼품없이 못생긴 얼굴과 움츠러든 왼팔, 곱사등을 가진 신체적 불구자이지만 뛰어난 언변과 권모술수, 유머감각, 탁월한 리더십으로 권력의 중심에 선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 비극적으로 그려지지만 극 중간마다 나오는 능청스러운 기질은 관객의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사진=샘컴퍼니 제공]



하지만 배우들의 원 캐스트(한 배역에 한 명의 배우가 캐스팅 되는 것)에 대한 자부심과 달리 때론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웃음이 나와 극의 몰입을 방해하기도 했다. 특히, 왕자들과의 신의를 지키는 헤이스팅스 역을 연기한 배우 김병희가 갑작스럽게 티럴 역으로 나와 왕자들을 죽이는 부분은 일인다역의 단점으로 부각돼 아쉬움을 남겼다.

그럼에도 이번 ‘리차드 3세’는 그동안 고전 연극을 갈망해왔던 관객들에겐 새로운 만족감을 줄만한 작품이다. 시(詩)적인 대사와 어우러진 세련된 무대, 의상은 작품을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한다.

셰익스피어 고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철학적 메시지 또한 분명하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리차드 3세를 보면서 관객들은 인간의 욕망에 대해 묻는 리차드 3세의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나의 죄를 묻는 그대들의 죄를 묻고자 한다.” 공연은 오는 3월 4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사진=샘컴퍼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