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아시아판 다보스' 보아오포럼 이사장 된다…中 적극 지지

2018-02-23 03:00
글로벌 경제포럼 무대로 민간외교력 발휘 기대
파리협약 공조·전승절 참석 등 中 여론 우호적
올해 총회, 習 참석 관심…한국측 인사 홀대론도

지난 2015년 9월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를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반기문 당시 유엔 사무총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신화사]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아시아판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보아오포럼의 차기 이사장으로 확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보아오포럼 개최국인 중국 측의 적극적인 지지가 인선 배경으로 꼽힌다.

지난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윤리위원장을 맡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쳐온 반 전 총장은 최대 규모의 글로벌 경제 포럼을 무대로 전공인 민간 외교력을 발휘할 기회를 맞았다.

◆ 中 "반기문은 라오펑유(老朋友)" 적극 지지

22일 중국 소식통에 따르면 반 전 총장은 오는 4월 9일로 예정된 보아오포럼 이사회에서 새 이사장으로 추대된 뒤 회원 대회를 통해 공식 선임될 것으로 보인다. 이후 차기 이사회 구성원들과 첫 회의를 갖는다.

보아오포럼 이사장의 임기는 3년이며, 횟수 제한 없이 연임이 가능하다. 1대 이사장인 피델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의 재임 기간은 8년, 2대인 후쿠다 야스오 전 일본 총리는 9년이었다.

이 소식통은 "다수의 중국 측 인사들이 후보로 거론됐지만 결국 반 전 총장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며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등 중국 수뇌부와 반 전 총장 간의 오랜 인연도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실제 반 전 총장에 대한 중국 내 여론은 상당히 우호적이다. 반 전 총장이 동아시아 출신으로는 최초로 유엔 사무총장에 오르는 데 중국이 지원 사격에 나선 바 있고, 재임 기간 중에도 중국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해 왔다.

2015년 말 극적으로 체결된 파리기후변화협약이 대표적 사례다. 당시 반 전 총장의 적극적인 중재로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 중 한 곳인 중국의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지난해 미국이 협약에서 탈퇴한 이후에는 중국의 영향력이 더욱 확대됐다.

이 밖에 중국은 필리핀 등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겪는 과정에서 반 전 총장이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했다고 평가한다.

반 전 총장이 지난 2015년 일본의 반대에도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한 것이나, 시 주석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 등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도 호감도를 높인 배경이 됐다.

반 전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 재임 기간 중 중국을 10차례나 방문했다. 이 때마다 관영 신화통신 등은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가 왔다"며 친근감을 표시한다.

관시(關係)를 중시하는 중국에서 라오펑유는 펑유(朋友·친구)나 하오펑유(好朋友·좋은 친구)보다 한 단계 높은 관계를 의미한다.

중국 언론들은 반 전 총장의 조상이 푸젠성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송나라 때 고려로 건너가 관직을 지낸 뒤 정착했다는 일화를 자세하게 소개할 정도다.

반 전 총장도 최근 중국 참고소식망과의 인터뷰에서 "유엔 사무총장으로 재직하며 힘을 쏟았던 빈곤퇴치나 기후변화 방지 등에 중국이 큰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 習 2기 출범, 올해 보아오포럼 참석하나

지난 2001년 출범한 뒤 이듬해인 2002년 첫 연차총회를 개최한 보아오포럼은 아시아 지역의 국가·기업·민간단체 간의 경제 교류와 협력을 강화하자는 취지의 비영리 민간기구다.

지난해 연차총회에는 48개국에서 1800여명이 참석했다. 17년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경제의 방향성을 진단하는 대표적 행사인 세계경제포럼(WEF)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성장했다.

1971년부터 매년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최돼 일명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세계경제포럼은 미국과 유럽 각국 정상들이 수시로 찾는 무대다.

하지만 중국과 한국,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권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보아오포럼도 그에 못지않은 위상을 갖추게 됐다.

특히 중국 최고 지도자들의 정책 구상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로 유명하다. 시 주석은 집권 이후 2013년과 2015년 두 차례 참석해 일대일로 프로젝트 등을 설명했다.

시 주석이 참석하지 않은 해에는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대신 내외빈을 맞았다. 지난해에는 급이 낮은 장가오리(張高麗) 부총리만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올해 보아오포럼 연차총회는 4월 8일부터 11일까지 나흘 동안 열린다. 시진핑 2기 체제의 원년인 만큼 시 주석이 직접 참석할지에 더욱 관심이 쏠린다.

저우원중(周文重) 포럼 사무국장은 지난달 말 기자간담회에서 시 주석의 참석 여부를 확인해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세계 번영 발전을 위한 아시아의 개방과 혁신'이라는 대주제로 진행되는 연차총회에서 시 주석의 집권 2기 출범과 연계될 만한 다수의 소주제가 눈에 띈다.

개혁·개방 40주년을 기념하는 두 차례의 패널 토론과 시 주석의 역점 사업인 슝안신구(雄安新區) 분석 섹션, '세계화와 일대일로' 토론회 등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자국 우선주의 행보를 의식한 듯 '개방의 아시아'라는 소주제로 보호무역의 폐단을 비판하는 내용의 토론도 이뤄질 예정이다.

이 밖에 블록체인과 자율주행, 전기차, 신재생에너지 등 최근 트렌드와 아시아 경제 추세, 이머징 마켓 발전 현황 등 거시경제를 전망하는 자리도 준비돼 있다.

패널로는 시라카와 마사아키 전 일본은행 총재와 한스 파울 브뤼크너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총괄회장, 인도 타타그룹의 라탄 타타 명예회장, 라이프 요한슨 에릭슨 회장, 칼로스 쿠티에레즈 전 미 상무장관, 스테판 그로프 아시아개발은행(ADB) 부총재, 세계 최대 사모펀드 블랙스톤의 슈테판 슈워츠만 회장 등 굵직한 정·재계 인사들이 나선다.

중국에서도 한창푸(韓長賦) 중국 농업부 부장(장관) 등 정부 인사는 물론 장야친(張亞勤) 바이두 총재, 위안런궈(袁仁國) 마오타이그룹 회장, 왕이린(王宜林) 중국석유 회장 등이 참석한다.

다만 주요 패널 명단에 한국 측 인사는 전무하다. 보아오포럼 상임이사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구속 기간 중 사의를 표한 것으로 전해진다. 베이징 외교소식통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 보아오포럼 행사 준비 과정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며 "민간 외교와 경제 교류의 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손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