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제조업 현장의 혁신 없이는 또 다른 한국GM 나온다
2018-02-22 09:41
- 4차 산업혁명·보호무역·국가이기주의로 글로벌 생산기지 재편 가속화 -
이를 통해 한국을 보는 미국의 시각 변화를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트럼프 방식의 일방적 밀어붙이기로만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 전통적으로 보호무역보다 자유무역을 선호하는 미국 공화당 정권이 이런 강력한 무역 제재 카드를 꺼내들고 있는 이유를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 트럼프 개인의 성향도 있겠지만 미국의 국내 분위기가 이에 대해 묵시적인 동의를 하고 있는 것도 일조를 하고 있다. 미국의 위상이 과거와 같지 않고, 특히 경제력 면에서는 가까운 장래에 중국에 역전 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된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미국의 힘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고, 중국으로부터의 협력도 그리 신통치 않다는 점이 미국을 초조하게, 그리고 더 이기적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을 대상으로 통상 보복이라는 강력한 압력 카드를 꺼내든 것이 한국과 같은 나라에도 불똥이 번지고 있는 것이다. 같은 동맹국이지만 우리보다 대미 무역흑자가 더 많은 일본, 독일, 캐나다 등은 봐주고 오직 우리에게만 치명적인 칼날을 들이대고 있는 것도 새겨볼 필요가 있다. 한국과는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협상 과정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가능한 수단들을 모두 동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참에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는 한국에 대해 어느 편에 서는 것이 유리한지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의지도 충분히 엿보인다. 북핵 문제 해법을 두고 한·미 간의 미묘한 갭이 통상 분야에도 적용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거제·울산·창원→군산에 이어 또 다른 지역으로의 도미노 전염 우려
역사적으로 패권 국가들은 주변국들을 자기편에 줄을 세우려고 하는 것이 지극히 일반적이다. 이들은 동맹국과 적국 혹은 감시대상국으로 구분하여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한다. 이런 국제관계를 감안하면 우리에게 분명히 딜레마가 있기는 하다. 안보적으로는 미국과의 절대적인 동맹 관계가 필요하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중국과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안보와 경제 간의 괴리가 생겨버린 것이 원인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 정권들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정쩡한 입장을 견지한 것이 약이 아니라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이 시점에 안보, 통상과 관련한 우리의 외교력과 협상력이 과연 존재나 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이 시점에 주변국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우리에게도 유익하다. 미국의 보호무역과 중국의 패권 공세 사이에 어느 편에 설 것인지를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해 보인다. 하지만 최근에 분명한 변화 기류가 나타나고 있다. 미국에 대해서도 호의적이진 않지만 중국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더 확연하다.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높지만 자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미국과 함께하는 게 더 유리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호주가 그 대표적인 나라이지만 동남아 국가들도 이에 대체적으로 동조한다. 중국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되고 있다. 중국의 지역 주도권 견제를 위해 미국, 일본, 호주, 인도 등이 별도의 인프라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길 태세다.
최근의 글로벌 경제는 4차 산업혁명, 보호무역, 국가이기주의 등으로 엄청난 변화가 진행 중이다. 이 변화 속에 가장 크게 도전을 받고 있는 분야가 제조업이다. 제조업 생산기지의 글로벌 재편은 필연적인 현상이다. 차제에 우리 제조업 환경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환골탈퇴의 혁신이 필요하다. 완성차 업계 등 노동자의 귀족 임금, 나만 살겠다는 기득권 노조의 구조로는 제2의 한국GM이 나올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은 노동유연성이 보장된 시장으로 움직이는 추세다. 제조업 현장의 개혁이 당장 진행되지 않으면 거제·창원·울산과 군산에 이어 또 다른 지역으로 도미노처럼 번질 가능성이 높다. 개혁 없는 제조 현장에 국민의 혈세를 투입하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대응은 더 이상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