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수칼럼] ‘캠코더 인사’의 위험성

2018-02-21 08:46

[사진 = 육정수 초빙논설위원]

[육정수칼럼]

어느 나라,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어떤 사람을 쓰느냐에 따라 성패(成敗)가 좌우된다. 이는 인류 역사상 끊임없이 증명되어온 사실이다. 같은 색깔의 인사들만 기용하느냐, 여러 색깔을 가진 인사들을 골고루 임용하느냐가 곧 그 정권의 역량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최고 권력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다양한 인재의 등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적재적소에 적임자를 잘 고르는 용인술(用人術)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인사권자와 친분이 있고 생각과 이념이 같은 사람에게 관심이 더 가는 것이 인간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그런 선(線)을 넘어설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사람을 국정의 최고 지도자로 선택하는 것은 바로 국민의 몫이다. 결국 나라의 흥망은 국민에게 달렸다고 할 수도 있다.

대기업이나 공기업, 각종 사회단체, 심지어 작은 친목단체의 리더들도 그럴진대, 대통령에게 있어서 인선(人選)은 최고의 책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가운데 청와대 및 정부 각 부처, 공공기관 등의 요직에 색깔이 아닌 능력 위주로 다양한 인재를 비교적 잘 배치한 대통령은 손을 꼽을 정도다.

대한민국은 70년의 짧은 역사에 세계 10위권의 경이로운 경제발전을 이룩한 자랑스러운 나라다. 그 과정에서 최고의 견인차 역할을 한 사람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고, 기업인으로서는 이병철·정주영·박태준씨 등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이들에 의한 고도성장 덕분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발전의 기틀이 마련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선진국 진입을 바로 눈앞에 두고 그 동력이 점점 떨어지는 뼈아픈 현실에 직면해 있다. 문재인 정부는 기존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바탕을 둔 정치체제를 비롯해 경제, 외교, 군사, 사회, 문화 등 전방위(全方位)에 걸쳐 급진적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국민은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불안하고 두렵다.

외교적으로는 한·미·일 3국 동맹에 균열을 초래하는가 하면, 중국에는 저자세를 보이고 북한에 대해서는 ‘민족공동체’와 ‘평화’의 환상에 빠져 대화를 구걸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런 외교노선은 그 어느 나라도 만족시킬 수 없는 결과를 빚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 원인은 자명하다. 장관들을 포함한 고위공직자들이 전문성과 소명의식을 갖고 책임감 있게 정책을 개발,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정권의 이념 성향에만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캠코더(캠프+코드+더민주당) 인맥’이 힘 있는 자리의 대부분을 차지해 과도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조국 민정수석비서관 등 극소수 청와대 실세들 외에는 이견이 있어도 입을 열지 못한 채 몸을 사리는 데 급급한 모양새다.

핵심 권력자들은 국민의 삶과 행복 증진을 위한 ‘생활정치’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이념혁명으로 사회체제를 뒤바꾸는 데 전력을 쏟는 듯한 느낌이 든다.

정부는 지난 9개월여 동안 언론사와 공기업, 공공기관, 각종 이사회 및 위원회 등의 임기가 상당기간 남은 자리들은 노조와 권력의 힘을 동원해 강제로 쫓아냈다. 마치 전리품을 나눠주듯 하며, 그것도 모자라 적폐 청산이란 명분의 보복 수사에 의해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과거의 운동권 및 특정지역 출신과 시민단체 또는 노조 경력자 등에게 집중적으로 자리를 나눠주는 이유가 권력기반을 더욱 튼튼하게 하기 위함인가. 과거 정부에서 당한 희생과 불이익, 반정부 활동에 대한 탄압에 보상을 해주려는 것인가. 이 나라를 다른 이념체제로 몰아가기 위한 전사(戰士)들을 모으려는 것인가.

각 부처나 기관에서 운영하는 각종 위원회의 구성원들조차 천편일률적인 색깔로 이뤄져 있다.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만 채우겠다는 뜻이라면 불과 2, 3명만 해도 충분하지 않은가. 무엇 때문에 막대한 국가예산을 들여 그 많은 사람들을 먹여살리려 하는가. 이는 세금을 내는 국민에 대한 배임행위가 아닌가.

국가 정책을 개발하고 시행하는 정부 부처의 단색(單色)인사는 폐해가 더욱 심각할 수 있다. 가급적 다양하고 창의력 있는 전문 인력을 활용해야 보다 좋은 정책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많은 의견을 제시해 찬반 토론도 활발하게 진행해야 좋은 정책이 탄생할 수 있다. 동종(同種)교배보다는 이종(異種)교배가 더 좋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생물학 분야만의 상식이 아니다.

과거 몇몇 명문 대학에서 다른 대학 출신 교수의 임용을 기피해온 것도 이제는 옛 이야기가 됐다. 학맥(學脈)이 다른 지도교수 밑에서 수학한 교수들을 다수 임용하는 것이 대학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점은 이제 정설이 되어 있다. 공직사회에서도 같은 의견이나 상급자의 의견만 있고 비판과 다른 의견이 없는 풍토가 지속된다면 그 조직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

생각이 다른 공무원들을 소외시킨다면 인재를 낭비하는 꼴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국민 다수를 야당지지 세력이라는 이유로 ‘블랙 리스트’에 올리는 것과 같지 않겠는가.

붕당(朋黨)의 폐해를 막기 위해 탕평책을 도입해 인재를 고루 쓰려고 애썼던 조선시대 영조·정조의 사례는 지금도 유효한 인사의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정조가 그 정신을 머릿속에 깊이 새기기 위해 자신의 침실에 ‘탕탕평평실(蕩蕩平平室)’이란 현판을 내걸었다는 얘기는 본받을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