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미국 북폭에 대한 기업위기관리 관점…맥신코리아 대표 한승범

2018-02-19 09:16

맥신코리아 대표 한승범


<장면 1. 알바니아 소녀와 낡은 구두> 알바니아의 한 소녀가 폭격을 피해 새끼고양이를 안고 도망치는 장면이 미국 뉴스에 보도되었다. 앵커는 인류 역사상 이렇게 참혹한 현장을 목격한 적은 없다며 분노했다. 알바니아군에 포로로 잡힌 전쟁영웅 슈만 미군 상사의 ‘낡은 구두’도 이슈화 되었다. 알바니아 소녀와 슈만 상사에 대한 전국적인 동정여론이 일어 反알바니아 감정이 미국을 사로잡았다.

<장면 2. 쿠웨이트 소녀> 1990년 10월 10일 나이라(Nayirah)라는 익명의 쿠웨이트 15세 소녀가 미국 의회 인권소위원회가 주관한 쿠웨이트 관련 청문회에서 참석했다. 그녀는 큰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로 “이라크 군인들이 쿠웨이트 산부인과에서 수십 명의 미숙아들을 바닥에 내던졌다”고 유창한 영어로 증언했다. 이 증언은 CNN을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 되었으며 부시 미국 대통령도 시청했다. 부시 대통령은 10여 차례 연설에서 나이라 증언을 인용하며 이라크의 인권 탄압을 비판했다. 3개월이 지난 1991년 1월16일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이 사막의 폭풍 작전(Operation Desert Storm)을 개시하여 이라크를 공격했다.

<장면 3. 탈북자의 목발> 탈북자 지성호가 목발을 한 손으로 높게 치켜들고 흔들었다. 마치 총을 든 용사의 모습이었다. 미 의회 모든 사람들은 기립해 존경의 박수를 보냈고, 용사의 눈에는 눈물이 한없이 흘렀다. 지성호는 꽃제비 출신으로 북한에서 석탄을 홈치다 팔과 다리를 잃은 장애인이다. 그런 그가 북한을 탈출했다. 그리고 목발 하나에 의지해 수천 마일의 중국-동남아 루트를 거쳐 자유 대한민국의 품에 안긴 것이다. 목발은 자유에 대한 열망이었고, 북한 인권 말살에 대한 저항이었다. 2018년 1월30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두교서에서의 주인공은 단연 ‘목발’이었다.

폭격속의 알바니아 소녀와 슈만 상사의 ‘낡은 구두’ 이야기는 완벽하게 조작되었다. 대선을 앞둔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을 방문한 걸스카우트 소녀를 성추행했다는 스캔들에 휘말렸다. 여론 조정자 ‘브린’은 대통령 성추문을 덮고자 있지도 않은 알바니아 전쟁을 기획했고 성공했다.

이것은 영화 웩더독(Wag The Dog, 1997)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100% 픽션이지만 모티브가 된 사건이 있었다. 바로 ‘쿠웨이트 소녀’ 이야기이다.

1992년 1월6일 뉴욕타임즈는 ‘쿠웨이트 소녀’가 사실은 쿠웨이트 대사의 딸이고, 그녀의 증언은 조작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전 세계가 충격에 휩싸인 것은 당연했다.

글로벌 홍보회사 힐앤놀튼(Hill & Knowlton)이 소녀의 의회 증언을 주도했다는 것도 밝혀졌다. ‘자유 쿠웨이트를 위한 시민 모임(CFK, Citizens for a Free Kuwait)’은 1990년 8월20일 560만 불을 주고 힐앤놀튼과 계약을 체결하였다. 이에 힐앤놀튼은 미국이 참전해 쿠웨이트의 탈환을 도울 수 있도록 여론을 조성하였고, 결국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이뤄냈다. 홍보회사가 전쟁에 관여한 것에 대해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온라인평판관리를 통한 기업위기관리 전문기업도 ‘브린’과 ‘힐앤놀튼’과 비슷한 맥락에서 일을 한다. 예를 들어 기업 오너 성추문, 본사 갑질, 노동자 사망, 배임 횡령 등과 같이 사회적 공분을 자아내는 사건이 터지면 회사는 일순간에 위기에 빠지게 된다. 의혹에 양념이 더해지면 순식간에 악덕기업으로 낙인 찍혀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진행되기도 한다.

이때 부정적인 이미지를 최소화하고 기업과 제품의 본질적이고 긍정적인 측면을 내세워 기업을 살려내는 작업이 바로 기업위기관리이다. 혹자는 이와 같은 위기대응을 여론 조작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위의 예를 살펴보자. 있지도 않은 전쟁을 조작해낸 여론 조정자 ‘브린’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쿠웨이트 소녀’의 경우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은 그 자체만으로도 악랄하고 야만적인 행위이다.

실제로 쿠웨이트인에 대한 작혹한 학살이 저질러졌다. 문제는 이라크군이 쿠웨이트를 점령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만행을 선명하고 생생하게 전달하는데 명백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쿠웨이트 소녀’가 등장한 것이다.

다시 ‘목발’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기업위기관리 전문가 입장에서 본다면 목발은 인권과 동시에 전쟁을 상징한다. 누구 작품인지는 모르지만 그 의도는 명확하다

미국은 전쟁을 원한다는 것이다.

목발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지속적으로 북한 인권을 이슈화하고 있다. 탈북자의 백악관 초청과 펜스 부통령의 방한 시 행보(천안함 박물관 방문, 탈북자 만남 등)는 북한 공격을 위한 명분 쌓기에 불과하다. 미국에게 ‘명분 없는 전쟁’이란 마치 ‘김치 빠진 밥’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한 손에는 군함, 다른 손에는 인권’을 들고 전쟁을 수행했다. 목발이 무서운 이유이다.